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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사건의 진정한 진실은 무엇인가 - 천고사설 비판

 이번에 영화 사도가 흥행하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준익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이덕일식 사관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고, 오히려 이덕일의 대척점에 있는 정병설 교수나 박시백 화백의 영향을 받은 티를 팍팍 내고 있다는 겁니다. 이준익 감독의 두번째 천만관객 작품이 되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 이덕일의 핵심 주장인 사도세자 당쟁 희생설...

몇 가지 역사 잡담.

1. 세간에는 정조가 개혁군주네 뭐네 하는데.... 뭐. 정조가 나름 능력이 괜찮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건 인정하고 들어가야 된다. 그런데 딱히 제대로 된 민생 대책이네 그런게 있었던가? 공노비 혁파를 생각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거 말고는 영... 2. 뭐. 정조의 정치 중 확실히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건 그의 탕평 방식이었다. 정조는 자신이 정후...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4> 300년 종사는 세손에게 달려있다.

“지금 세손(世孫)을 보니, 진실로 성취(成就)한 효과가 있다. 한없이 많은 일 가운데 이보다 나은 것은 없으니, 3백 년의 명맥(命脈)이 오직 세손에게 달려 있다.”   영조실록 영조 37년 1월 5일 자 기사 중에서   <노세 노세 이 기회에 노세>  1760...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3> 폭풍전야

“전하께서 동궁에게 항상 엄격한 위엄을 가지고 주로 대하셨기 때문에 저하(邸下)가 지나치게 스스로 두려워하고 조심합니다. 어 젯밤의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더라도 저하께서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조심하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 영조실록 영조 34년 7월 8일자 기사 중에서 -  <세자의 두려움> &...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2> 돌이킬 수 없는 길.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한중록 중에서  <김상로> 11월의 대대적인 소동. 그리고 낙상으로 말미암아 사도세자는 병을 얻어 자리보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어의와 약방 도제조가 사도세자를 찾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약방 도제조였던 김상로의...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6> 다사다난

“내가 시를 읽을 것인데, 네가 눈물을 흘리면 효성이 있는 것이므로 내 마땅히 너를 위해 내렸던 전교를 반한(反汗)하겠다.”-영조실록 영조 28년 12월 14일자 기록- <새 후계자의 탄생> 1752년 3월 3살밖에 안 된 세손이 죽었지만 당시 혜경궁은 임신 상태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혜경궁은 아이를 낳았다. 왕실 입장...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5> 부자유친

* 부자유친  1. 유교의 가정윤리인 삼강오륜 중의 하나로 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는 뜻  2. 오태석이 1987년 초연한 연극.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을 토대로 인간관계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참고로 연극의 제목은 반어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소조가 덕이 없어 이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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