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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사건의 진정한 진실은 무엇인가 - 천고사설 비판

 이번에 영화 사도가 흥행하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준익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이덕일식 사관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고, 오히려 이덕일의 대척점에 있는 정병설 교수나 박시백 화백의 영향을 받은 티를 팍팍 내고 있다는 겁니다. 이준익 감독의 두번째 천만관객 작품이 되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 이덕일의 핵심 주장인 사도세자 당쟁 희생설...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9> 비극의 그 날 그 이후.

“이미 이 보고를 들은 후이니, 어찌 30년에 가까운 부자간의 은의(恩義)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세손(世孫)의 마음을 생각하고 대신(大臣)의 뜻을 헤아려 단지 그 호(號)를 회복하고, 겸하여 시호(諡號)를 사도 세자라 한다. 복제(服制)의 개월 수가 비록 있으나 성복(成服)은 제하고 오모(烏帽)·참포(黲袍)로 하며 백관은 천담복(淺淡服)으로 한 달에 마...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8> 운명의 그 날.

"아버님, 아버님잘못하였습니다.이제는 하라시는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마소서." - 한중록 중에서-  <히스테리>  나경언의 고변이 있은 후로 사도세자는 거의 매일 시민당 월대에서 대명하였다. 물론 하루종일 대명만 한 것은 아니었다.(1) 그는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한중록에 의하면 이...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7> 나경언의 고변

"사모를 쓴 자들은 모두 나를 속였으니 나경언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 영조실록 영조 38년 5월 22일자 기록에서 영조의 발언 - <고변>  5월 22일. 결국 폭탄이 터졌다. 나경언이 환시가 불궤한 모의를 꾸미고 있다고 고변한 것이다. 환시란 내시등을 일컫는 말. 즉 이 고변 내용대로 하...

경종 독살설에 대한 생각.

<죽음에 이르기까지> 1724년 8월. 경종은 크게 앓아눕게 됩니다. 사실 이는 놀라운 것이 아닌게 경종은 작년에도 한번 크게 앓아누울정도로 몸이 약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해 여름은 상당히 더운 편이었기에 약한 몸에 무리가 간 거였습니다. 이미 8월 이전에 약방에 누워 문안인사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8월 들어와 경종의 상태는 ...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5> 관서유람.

그리고 천리(千里)를 갔다가 돌아오는 예체(睿體)인데도 아직까지 지척(咫尺)에서의 진현(進見)하는 예(禮)를 행하지 못했으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말을 타고 달린 예후(睿候)인데도 약원(藥院)에서의 기거하는 의절(儀節)을 걷어치우지 못하시니, 사람들은 모두 이것으로 저하의 뉘우침과 깨달음이 미진(未盡)한 뉘우침과 깨달음이라고 의심을 합니다. -...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4> 300년 종사는 세손에게 달려있다.

“지금 세손(世孫)을 보니, 진실로 성취(成就)한 효과가 있다. 한없이 많은 일 가운데 이보다 나은 것은 없으니, 3백 년의 명맥(命脈)이 오직 세손에게 달려 있다.”   영조실록 영조 37년 1월 5일 자 기사 중에서   <노세 노세 이 기회에 노세>  1760...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3> 폭풍전야

“전하께서 동궁에게 항상 엄격한 위엄을 가지고 주로 대하셨기 때문에 저하(邸下)가 지나치게 스스로 두려워하고 조심합니다. 어 젯밤의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더라도 저하께서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조심하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 영조실록 영조 34년 7월 8일자 기사 중에서 -  <세자의 두려움> &...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2> 돌이킬 수 없는 길.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한중록 중에서  <김상로> 11월의 대대적인 소동. 그리고 낙상으로 말미암아 사도세자는 병을 얻어 자리보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어의와 약방 도제조가 사도세자를 찾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약방 도제조였던 김상로의...

임오화변 최악의 비극 <11> 11월은 가장 잔인한 달

 “동궁께서 평일에 너무 엄하고 두려운 까닭에 우러러 말씀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빨리 위차(位次)로 들어가시어 신 등을 불러 조용히 하교하소서.”  - 영조실록 영조 33년 11월 11일자 기사 중에서 -  <여색>  1756년 경부터 사도세자의 광증은 매우 심각해지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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