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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역사 이야기 16. 공포의 차르

<그로즈니>  - 이반 4세의 초상 -  이반 4세. 흔히 이반 뇌제로 불리는 그가 그런 별칭으로 불리는 것은 일본이 러시아에서 그로즈니(Grozney)를 뇌제로 의역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그로즈니란 단어는 무서운, 공포란 뜻도 있지만 준엄하다는 뜻도 있어서 무언가 조금 해석이 ...

러시아 역사 이야기 15. 제 3의 로마

<리투아니아와의 악연>  - 바실리 3세의 초상 - 1505년 11월. 이반 3세가 죽고 그의 아들 바실리가 모스크바 대공으로 즉위했다. 그는 대공위를 얻기 위해 리투아니아와 동맹을 맺고 아버지와 투쟁을 벌이면서, 겨우겨우 후계자의 자리를 보장받았었다. 즉 어찌 보면 리투아니아에게 신세를 좀 진 셈이었다. 하지만 정...

러시아 역사 이야기 14. 날아오르라 쌍두독수리여.

<카심 전쟁>  - 17세기 경에 그려진 이반 3세의 초상 -  1462년. 맹인 바실리 2세가 죽고, 그의 아들 이반이 모스크바의 대공이 되었다. 모스크바 대공 자리를 둘러싼 내란으로 격동적인 유년기를 보냈던 그이지만, 대공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에게 도전한 자는 한명도 없었다. 그 자신감 때문일까. 이반...

러시아 역사 이야기 13. 두명의 바실리.

<영토 확장>   - 바실리 1세의 초상화 -  1389년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죽자, 그의 장남인 바실리가 모스크바 대공이 되었다. 그는 일단 토크타미쉬에게 복종하며 그를 위해 일했는데(1) 그 대가로 1392년 니즈니 노브고로드 공국을 모스크바가 합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

러시아 역사 이야기 12. 드미트리 돈스코이

<내우외환>  - 이반 2세의 초상 - 1353년 시메온이 죽자 그의 동생 이반이 이반 2세로써 대공이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리투아니아와 동맹을 맺고 킵차크 칸국에 대항하려 했지만 곧 마음을 바꾸어 사라이에 복종하고 리투아니아에 대항했다. 그러나 그는 1359년 겨우 9살 된 아들 드미트리만을 남기고 병사했다. 꼬...

러시아 역사 이야기 10. 모스크바의 부상

<촌구석 모스크바>   - 모스크바 공국 초대 대공 다닐을 묘사한 그림 - 모스크바는 1147년에 건설되었지만 아직까지는 블라디미르 공국에 속해있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이 곳은 정말로 작았고, 중요하지 않은 소도시였다. 당시 블라디미르 공국에서 중요한 도시는 수도 블라디미르, 수즈달, 로스토프 등이었다....

유럽의 유목민들 9-3. 몽골족-러시아의 멍에.

<카잔 칸국 - 마이 프레셔스> 1437년. 사라이에서 궁정 반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당시 킵차크 칸국의 칸이었던 울루 무하마드는 칸의 자리에서 쫓겨나 아들 마흐무데크와 함께 도주하는 신세가 되었다.(1) 하지만 그는 새 칸에게 굴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카잔으로 도주, 그 곳에서 칸을 칭했다. 이 나라가 바로 카잔 칸국이다. 카잔...

유럽의 유목민들 9-2. 몽골족-킵차크 칸국

 <베르케-몽골제국의 분열>- 킵차크 칸국의 최대 강역 - 금박을 입힌 의자에서 루브룩을 접견하기도 했던 바투가 1255년 사망했을 때 그의 후계자이자 네스트리우스교도였던 사르탁은 몽골에 있었다. 그는 뭉케로부터 바투의 후계자로 정식 책봉된 뒤 서둘러 볼가강으로 귀환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병으로 죽었다. 친기독교적이고 알렉산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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