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셰스쿠의 만행과 몰락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실존하는 루마니아의 흡혈귀이자 악마. 미치광이 차우셰스쿠의 사진.



 차우셰스쿠는 1918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30년대부터 공산당 활동에 돌입했으며 감옥에 있을 때 만난 역시 공산당원인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를 만나 그의 심복이 되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정적들을 제거하며 루마니아 공산당 서열 2위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1965년 게오르게가 죽은 후로는 루마니아를 통치하게 된다.

 그는 공산권에 속한 루마니아의 지도자였음에도 소련 등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규탄하고,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도 참가하며 미국, 영국, 일본 등을 순방하며 국가원수들과 회담을 가지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물론 바보는 아닌지라 소련에게 아부를 떨 때는 떨었고 아프리카 내전에도 개입하기도 했다. 사실 이 정도면 평범한 공산국가의 지도자라고 보여질 수 있겠지만... 실상을 전혀 아니었다. 개념인의 가면 속에는 악마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파일:CeausescuKim1971.jpg

두 악마가 만나는 순간 jpg.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 중국을 방문하게 된다. 이 때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우상화작업을 시작한 상태였고 중국은 문화대혁명이란 초유의 개삽질로 말미암아 사회가 획일화된 상태였다.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은(간단히 말해서 악마들이 동맹을 맺었다.) 그는 이에 감명을 받고 자신을 우상화시키고 사회를 획일화시키는 작업을 단행했다. 그는 자신을 '지도자', '카르파티아의 천재'라고 칭하고 아내에게는 '인민의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칭호를 주는 등의 개인 우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우상화 작업을 단행하고 사회를 원활히 통제하기 위해 강력한 감시 정책을 펼쳤다. 인구가 2천만인 나라에 설치된 도청기가 300만개에 도청 센터는 1000여개에 달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거기에 고아들을 모아 결성한 비밀 경찰 조직 세쿠리타테를 만들었는데 차우셰스쿠는 군대보다 이들을 더 우대했으며 이들로 하여금 국민들을 감시하게 하였다. 말 그대로 빅 브라더의 현실화. 그 외에도 토론 수업을 빙자해 아이들이 부모가 한 반 차우셰스쿠 발언을 발설하게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루마니아 인들은 집에서도 말 제대로 못하는 처지였다.

 이러던 중 1978년 자신의 심복 중 한명이 미국으로 도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차우셰스쿠는 엄청난 족벌 정치를 행했다. 장남인 일리에를 후계자로 만들어버리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삼았으며, 차남은 비밀 경찰 총 책임자. 삼남은 국가경제기획원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자신의 부인 엘레나는 공산당 서열 2순위였다. 거기에 동생들이 경찰 책임자, 국방부 차관 등을 차지했고 며느리는 학생 친위대 책임자, 그 외에도 수많은 친척들이 주요 요직들을 독점했고 차우셰스쿠 자신도 수많은 요직을 직접 차지했다. 

 그리고 차우셰스쿠는 마음껏 막장 행각을 벌였다.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 등이 저지른 막장 행각은 대략 이렇다. (단 출처가 필요한 것도 있다.)

 1. 차우셰스쿠는 한 번 입은 양복은 절대로 다시 입지 않았다. 이 양복들은 하인들이 불태웠다고. 석숭과 왕개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2. 자신에 세균에 감염되거나 독으로 인해 죽을 것을 매우 우려해 엘리자베스 여왕과 악수한 후 그 자리에서 손을 알콜로 소독했다.

 3. 80년대의 일인데 영아들의 건강을 위해 영아들로 하여금 수혈을 받게 했는데 피 검사를 제대로 안 해서 영아들이 단체로 에이즈에 걸렸다.

 4. 공원 하나가 지하철 공사로 파헤쳐졌는데 그 공원을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하루만에 원상 복귀...

 5. '인민의 자애로운 어머니(라고 쓰고 인민의 무자비한 착취자라고 읽는다)' 엘레나 여사 왈 : "국민들은 마치 벌레와 같다. 아무리 먹여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6. 아들 일리에가 어떤 미녀랑 결혼하고 싶어했는데 엘레나는 그녀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마침 일리에가 해외로 잠시 나가게 되자 부하들로 하여금 그녀를 윤간하게 하고 그 사진을 일리에의 책상에 올려놨다고...

 하지만 이걸 능가하는 막장이 세가지가 있다. 바로 빚, 사람 수 늘리기, 루마니아판 아방궁 되시겠다.

 먼저 빚부터 설명하겠다. 차우셰스쿠는 농업 국가인 루마니아를 공업화시키겠다며 무리하게 공업화를 추진했다. 거기에다가 워낙 호화롭게 사치를 하다보니 경제가 견뎌낼 리 없었다. 결국 루마니아는 111억 달러의 부채를 지게 되었다. 당연히 부채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가 된 상황. 그런데 차우셰스쿠의 대응이 정말 기발했으니...

 복지 정책을 축소하는 한편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농산품과 공업품을 대량으로 수출했고 그 결과 혁명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인 1989년 여름에 111억 달러의 부채를 모두 갚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루마니아는 식료품점에 식료품이 없는 등 생필품이 부족해지고 난방, 가스, 전기는 수시로 끊기는 막장 상황이 연출됬다. 산유국 루마니아에서 전기가 끊기는 상황이 올 정도로 경제 기반이 망가진 것.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하락한 건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차우셰스쿠는 국영 방송에서 식료품으로 가득찬 식료품점을 순찰하며 인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찬양하며 피폐한 경제를 부정하는 선전만 일삼고 있었다.

파일:Propaganda poster Ceausescu.jpg

차우셰스쿠 선전물. 자신을 영웅시화 하지만 실상 그는 흡혈귀였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차우셰스쿠의 삽질 사람 늘리기의 진행 과정은 이렇다. 차우셰스쿠가 집권할 당시 루마니아는 낙태율이 꽤 높고 출산율이 낮았다. 그런데 차우셰스쿠는 인구=국력이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인 출산율 늘리기 정책을 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심히 골때렸다.

 처음에는 낙태와 피임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그래도 효과가 안 나타나자 40세 이하의 여성은 무조건 5명 이상의 아이를 낳도록 하고, 자식의 수가 5명보다 못하면 엄청나게 무거운 세금을 때렸다.(지금도 그런 주장 하시는 분이 이 대한민국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로 가서 낙태하려는 여성들이 속출하자 국경에서 쏴죽이는 짓을 벌였다.

 그 결과 일단 출산율은 2배로 늘었다. 그러나 신생아 사망률도 같이 급증했고 버려지는 아이들도 급속도로 증가했다. 거기에 무조건적인 출산 장려만 할 뿐 기반을 닦아놓지 않아 아이들의 학업성취도 같은 것도 매우 낮아졌다. 한마디로 막장이었다. 그나마 일부는'세쿠리타테'로 뽑혀갔지만 그 수는 극히 적었고 대다수의 삶은 비참했다. 이 시기 루마니아 아동들 중 일부는 아동 포르노 같은 것에 나오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훗날 차우셰스쿠 시대에 태어난 이 불쌍한 아이들을 가리켜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라고 불렸다.

 마지막 대삽질은 인민궁전이다. 차우셰스쿠는 정말로 호화롭기 그지없는 궁전을 1983년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궁전 건설 지구에서 강제 철거가 자행된 건 두말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궁전 내부의 장식이 참으로 호화로웠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모든 건축 재료는 루마니아의 국산 재료를 썼는데. 3,500 여 톤의 수정, 480개의 샹들리에, 1,409개의 천정용 전구와 거울을 만들었고 70톤 이상의 철과 청동을 만들었다. 그리고 상당수의 목재가 들어갔는데 그 중 95% 이상은 루마니아산이었다. 거기에 20만 제곱미터의 양모 카펫과 문직으로 짠 커튼, 금은으로 장식된 벨벳 등이 있었고 방의 개수는 1000여개에 달했다. 이것이 끝이 아닌게 집무실과 연회장은 모두 대리석으로 꾸몄고 벽, 천장, 심지어 화장실도 금을 도금하는 식으로 치장을 했다. 거기에 저격수의 사거리까지 계산되어 자신이 저격되는 일이 없도록 했다. 

File:Casa Poporului.jpg


 루마니아 판 아방궁인 인민궁전. 정말로 화려하지만 정작 차우셰스쿠 자신은 저 궁전에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지금은 국회의사당 등등의 용도로 사용된다고



 그러나 아무리 감시를 하고 공포 정치를 펴도 인민들의 불만을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하는 법. 1987년 브라소브에서 이미 반차우셰스쿠 운동이 벌어졌었고 1989년 동유럽에 자유와 민주화의 바람이 물어닥치며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모두 체제가 붕괴되고 민주화와 자유화가 실현되자 루마니아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File:Tőkés László 2007.JPG

차우셰스쿠의 붕괴 단초를 제공한 퇴케스 라슬로 목사의 2007년 모습


 루마니아의 서부.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도시 티미쇼아라. 그 곳은 본래 1차대전 이전까지 헝가리가 점유하던 땅이라 마자르족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차우셰스쿠 치하에서 그닥 대접을 받지 못하고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역시 마자르 족이던 퇴케스 라슬로 목사는 이런 차별 대우와 민주화, 인권 개선을 요구해왔는데 1989년 12월. 루마니아 정부는 그를 국외로 추방시켰다. 그러자 티미쇼아라에서 곧장 마자르족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 시위는 진압되었으나 세큐리타테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왔고 이 시체들이 도둑맞고는 매매되고 있다는 소문이 나오기 시작됬다. 그러자 루마니아의 민심은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은 차우셰스쿠는 당시 해외 순방 차 체류하고 있던 이란에서 귀국한 후 12월 21일 부큐레시티에서 관제 집회를 열었다. 자신의 정권이 건장함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이 관제 집회는 생방송 됬는데 이게 독이 되었다.

 12월 21일 12시 30분 경에 차우셰스쿠는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는 자화자찬을 일삼으며 티미쇼아라 시위를 격하하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관제 집회 도중 "티미쇼아라! 티미쇼아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정말 용기있게 터져나온 자유의 외침이었다. 이 외침이 확산되며 곳곳에서 차우셰스쿠의 연설에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차우셰스쿠는 야유를 막아보려고 "여러분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이 장면은 생방송으로 루마니아 전역에 퍼졌다. 더군다나 당시 시청률은 70%. 곧 전국적인 반차우셰스쿠 집회가 시작됬다.

 차우셰스쿠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세큐리타테를 동원하는 한편 정규군까지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소 세큐리타테만 편애하는 데 반감을 단단히 품던 군부는 시위 진압에 미온적이었다. 더군다나 시위 진압을 반대하던 바실리 밀레이 국방장관이 다음날 아침 시체로 발견되면서 군부의 불만은 폭증하였다. 군인들은 이 날부터 시위대에 하나 둘 합류하기 시작했고 군대가 합류한 시위대는 속속 부큐레슈티의 대부분 지역들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국영 루마니아 방송을 장악하고 자유 루마니아 방송으로 개칭하는 한편 공산당 관저까지 장악했다. 거기에 엘레나의 추천으로 시위를 진압하라며 임명한 신임 국방장관 빅토르 스탄굴레스쿠는 처음엔 국방장관이 안 되려고 꾀병을 부리더니 나중에는 정규군에게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지 말고 원대복귀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를 시위대로 합류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대령 이상의 고위장교까지 포함된 정규군이 시위대에 대대적으로 합세해버리면서 전세는 급격히 시위대 쪽이 유리해지게 된다.

 상황이 이미 글러버린 것을 안 차우셰스쿠는 북한으로 도주하기로 했다.(단 리비아, 소련 중 한 곳으로 도주하려 했다는 설도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다량의 헬기를 관저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 헬기들은 모두 중도에 도주하고 딱 1대의 헬기만이 관저에 도착했다. 도주하고자 하는 이는 많았으나 1대 밖에 오지 못한 관계로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부인과 경호원 등 소수만을 태우고 도망쳐야 했다.(이 장면 역시 생중계되었다.)

File:Romanian Revlution 1989 3.jpg

도주하는 차우셰스쿠.

 그러나 일단 차우셰스쿠 궁까지 오기는 했던 헬기 조종사 빅토르 마우탄 중령은 더 이상 차우셰스쿠와 연관되기 싫었다. 그는 헬기를 이리저리 흔들며 대공사격을 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차우셰스쿠는 별수없이 헬기를 포기하고 육로를 통해 외국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물론 빅토르 마우탄 중령은 차우셰스쿠가 육지에 내리자마자 도망쳤다.

 한때 루마니아를 무력과 공포로 통치했던 차우셰스쿠지만 이제는 그 무력과 공포로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기 위한 차량을 탈취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첫번째 차량의 운전자는 엔진이 과열됬다며 얼마 못 가서 차우셰스쿠가 내리게 했다. 두번째 운전자는 차우셰스쿠를 태워준 후 어느 도시의 농업박물관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현지 주민들과 짜고 그를 감금시킨 후 시위대에 넘겨주었다. 그렇게 차우셰스쿠는 민중들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당초 차우셰스쿠 부부는 형사 재판으로 심판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구국 전선 위원회는 반군으로 저항한 세큐리타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차우셰스쿠를 형사 재판으로 처리했다가는 전세가 역전되어 역으로 자신들이 재판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거기다가 미군이 차우셰스쿠를 구출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헝가리와 소련이 루마니아 정국 안정을 위해 군대를 보내겠다고 루마니아측에 제의하면서 구국 전선 위원회는 한껏 자극되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결국 후환을 제거하고자 체포 전에 군사재판으로 사형시켜버리기로 하였다. 

 문제가 있는 재판이기는 하였다. 그리고 실제 진행 과정도 그랬다. 일단 변호인측은 차우셰스쿠에게 정신 이상으로 밀고 갈 것을 권하였으나 차우셰스쿠에게 거부당했다. 그러나 변호인측의 변호 노력은 그게 고작이었다. 아니.. 오히려 변호인이라는 사람이 검사가 되었다. 변호인이 법정에 자신이 보호해야 될 사람들의 사형 선고를 요청했다. 물론 원래 있던 검사도 마찬가지로 사형을 구형했다. 당시 검사의 발언이 일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므로 상관없다. 나는 너희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대망의 사형 집행장. 구국 전선 위원회는 차우셰스쿠를 죽이기 위해 8명의 병사들을 차출한 후 그들에게 차우셰스쿠 죽이는 데 자원할 사람을 물었다. 그리고 전부 손을 들었다. 결국 대위 1명, 상사 1명, 하사 1명이 각각 선발되었다. 보통 총살형은 집행하는 사람의 죄책감을 덜고자 공포탄과 실탄을 섞는 게 보통인데, 이 경우 저 3명은 1인당 30발. 즉 90발 전부를 실탄으로 장전했다. 결국 차우셰스쿠 부부는 총알 90발을 맞고 죽었다.

File:NicolaeCeausescumormant2.JPG

차우셰스쿠의 무덤. 살아 생전에는 호화롭게 살았으나 죽은 후의 무덤은 정말로 초라하기 그지 없다.


 사실 재판 과정 자체는 무리가 있었다. 처형 집행인 중 한명이고 훗날 변호사가 된 도린마리안 키를란(당시 계급은 하사)는 훗날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우셰스쿠는 단죄해야 했지만 재판 자체는 졸속이고 불법이었다고 말했다. 다수의 루마니아인들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 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최소한 루마니아 국민들은 1989년 크리스마스에 참으로 좋은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파일:Muammar al-Gaddafi at the AU summit.jpg

이제 너도 저 꼴 나는게 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곧 차우셰스쿠의 뒤를 따를 것 같은 자의 사진과 함께 이 글을 마칩니다.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1/09/03 01:25 #

    그래서 독재는 해롭지 말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9/03 01:40 #

    그러고보니 사상 최초 10점 만점으로 유명한 체조선수였던 나디아 코마네치의 경우 장남이 찝쩍거려서 망명했다죠?
  • 로자노프 2011/09/03 20:42 #

    뭐.. 장남 놈이 성폭행했다는 루머도 있습죠. 쩝.
  • LVP 2011/09/03 01:41 #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가리봉...아니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1동 136의 35번지에 사는 차우셰스쿠라고 합니다!!!! (!?!?!?)
  • 로자노프 2011/09/03 20:42 #

    비슷한 일이 시리아에서는 잘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 대공 2011/09/03 02:08 #

    언제 북한은 저꼴 나려나 해도 군이 3부자 편이고....
  • 로자노프 2011/09/03 20:42 #

    거긴 무리. 김일성은 그런 면에서 차우셰스쿠보다는 천재입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1/09/03 06:03 # 삭제

    차수령에게 그나마 좋은 점을 찾는다면, 외채를 조기 상환했다는 점(지가 진 빚 지가 갚은 것이지만)과 국산품 애용?
    혹부리 수령님이 노인네한테 쓸데없는 바람을 넣는 통에 애꿎은 루마니아 국민들만 고생했군요.
  • 로자노프 2011/09/03 20:43 #

    그 외채상환도 알고보면 막장... 그리고 인구부양정책 보면 혹부리영감 탓만은 못할 듯 합니다.
  • 메이즈 2011/09/03 08:20 #

    차우세스쿠의 출산정책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볼 때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를 증가시키는 건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라고 할 수 있으며 애당초 인간 자체가 없는 상황과 다소 부족하게나마 인간이 있는 상황은 국가 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국력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이 점에서 경제정책이나 인민궁전 건설 같은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바보짓과 달리 이쪽은 어느 정도 변호할 만한 여지는 있습니다.

    물론 방법은 잘못됐죠. 차우세스쿠의 불임 금지 정책, 무조건 4명 낳아라 정책 자체가 인권침해인 건 말할것도 없고, 어쨌든 인구는 늘었으니 좋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증가한 인구에 대한 대책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일단 늘리고 보면 장땡이라고 생각한 거고 그 결과가 '차우세스쿠의 아이들' 이죠. 언론에서 보도하는 게 좀 과장된 측면은 있습니다만 이들의 교육수준 등 인적자원으로서의 자질이 전 세대보다 떨어지는데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경우도 꽤 많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전형적인 후진국의 특성이죠.

    결론을 말씀드리면 차우세스쿠의 다른 정책은 말 그대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정책이나 차우세스쿠의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그와는 달리 '의도는 좋았으나 방법은 잘못됐다' 는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로자노프 2011/09/03 20:43 #

    분명 인구 부양 정책 취지는 좋았습니다만 문제는 인프라가 전혀 없었다는 거죠. 차우셰스쿠는 그 인프라 깔 생각은 안 한 듯 하고요.
  • 사과향기 2011/09/03 09:14 #

    잘봤습니다. 그나저나 북쪽에서도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 로자노프 2011/09/03 20:43 #

    솔직히 거긴 무리입니다. 군부 내 젊은 장교들이 홰까딱 미친 척 하고 쿠데타 일으키지 않는 한...
  • Cicero 2011/09/03 10:02 #

    1. 카다피에 대한 최후통첩시한도 지난걸로 알고 있는데, 이제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네요.

    2.빅토르 스탄굴레스쿠는 정권교체후, 결국 티미쇼아라에서 있었던 잔혹행위에 대한 책임으로 옥살이하게 됩니다. 작년에 관련해서 썼던 포스팅이 생각나는군요.

    http://flager8.egloos.com/2536159
  • 로자노프 2011/09/03 20:44 #

    1. 일단 연장은 했다더군요. 두고봐야..

    2.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a 2011/09/03 20:33 # 삭제

    차씨의 막장 행각 1번에 등장하는 사람은 석호와 왕개가 아니라 '석숭'과 왕개가 맞습니다.
  • 로자노프 2011/09/03 20:44 #

    수정하겠습니다.
  • 오스왈드 2011/09/04 18:36 # 삭제

    저는 사형제 폐지론자 이지만 저런 사람들은 예외로 두고 싶다는....
  • 로자노프 2011/09/04 21:43 #

    저 검사도 비슷한 말을 했죠. 확실히 차우셰스쿠의 행각은 치를 떨리게 만들기 충분했고요.
  • 시그마 2011/09/15 17:23 #

    모르는 일이죠.차우세스쿠,벤알리,무바라크,카다피에 이어 김씨도 몰락할지 누가 압니까?
  • 모로 2011/09/30 04:36 # 삭제

    루마니아 여행을 앞두고, 그리고 첫 목적지를 티미쇼아라로 정한 터라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는데 정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놓은 글 읽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잘 읽었어요. ^^
  • 가레스베일 2011/11/14 19:14 # 삭제

    그리고 카다피는 쏘지마를 2번정도 외친후 죽었음 ㅋㅋㅋㅋㅋㅋㅋ 아낰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2011/12/24 15:34 # 삭제

    와우..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병신 2013/03/29 20:03 # 삭제

    엔하위키의 날조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어떡합니까
  • 전위대 2014/06/03 17:48 #

    아프리카 원숭이 중의 최고봉도 결국 같은 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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