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몰락. 스페인은 왜 쇠락하였는가?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스페인 제국의 최대 판도. 단 여기서 서사하라 및 모로코 해안지대 다수는 20세기 가서야 획득한 영토임

 
 스페인은 원래 유럽에서 그렇게 강한 나라는 아니었다. 이베리아 반도는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라, 포르투갈, 그리고 이슬람세력으로 분열되어있었고, 기독교 세력은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주로 이슬람교도와 끝없이 항쟁하기 바빴다. 그러나 1469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공주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자가 결혼하므로써 스페인이 성립되게 됩니다. 스페인은 이후 레콩키스타를 통해 1492년 나스르 왕조를 멸망시키고 같은 해 신대륙을 발견하며 스페인은 열강의 반열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곤살로 데 코르도바란 명장이 창안해낸 테르시오와 신대륙의 은은 스페인을 부강하게 만듭니다. 이 덕에 스페인은 16세기 전통적인 유럽의 강자였던 프랑스를 꺾고 전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은 17세기 중엽 사실상 몰락하고 다시 강자의 자리를 프랑스에게 내주게 됩니다.(물론 프랑스가 유일의 강자는 아니었습니다만) 일천한 실력으로나마 그 이유를 밝혀보고자 합니다.


 1. 종교

 사실 이베리아반도는 종교에 관대한 땅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다른 곳에서는 탄압받던 유태인들이 귀족들과 혈연적으로 연계가 되기도 할 만큼이었습니다. 워낙 유태인들이 많아서 스페인 계 유태인들은 세파라딤이라고 따로 불릴 정도였죠.(물론 이 이유에는 유태인들의 능력과 부, 거기에 더해 섣불리 추방했다가 남부의 이슬람교도들에게 튀면 매우 골치아파진다는 점이 많이 작용했습니다만) 그러나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결합으로 스페인이 성립되자마자 스페인은 놀라울정도로 종교에 있어서 꽉 막힌 국가가 되고 맙니다. 대표적인 예는 종교재판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종교재판소는 재판소장의 성향이나 기타 여건에 따라 탄압의 정도가 수시로 바뀌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상징으로는 부족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이런 종교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열망은 사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사실상 카스티야와 아라곤이라는 두 이질적인 왕국의 연합체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더군다나 아라곤은 또 세부적으로 아라곤, 카탈루냐, 발렌시아로 나누어지고요. 이런 이질적인 지역들을 통합시킬 매개체로서 종교를 강조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이질성을 극복하고 스페인(에스파냐)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시킬 필요가 있었거든요.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과도한 종교적 열망은 독이 되었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중 첫번째는 유태인 문제였습니다. 본래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들은 유태인에게 관대했으나 흑사병이나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15세기에는 반유태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나스르 왕조가 멸망하며 이제 유태인들이 가까이 있는 적들에게로 도주할 가능성은 없어지게 됩니다. 레콩키스타의 승리로 도취된 감정을 더욱 고취시키며 종교적 승리도 안겨주고 지지도도 올릴 겸 유태인들은 나스르 왕조가 멸망한 지 약 3주 후 대대적인 추방령이 내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스페인은 부유하며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또 열심히 일하는 자들을 영원히 잃게 됩니다. 비록 개종자들은 제외되었다지만 그들의 빈 자리는 너무나 컸습니다. 더군다나 그 빈자리를 메운 독일인, 플랑드르인, 이탈리아 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챙기는 데만 열중했기 때문에 스페인의 경제, 재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유태인 추방령이 내려진 후 20년 후에는 스페인 내에서 "외국인들이 우리의 부를 도둑질해간다." 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가 됩니다.

Archivo:La Expulsión de los Moriscos.jpg

추방당하는 모리스코들

 두 번째는 모리스코. 즉 무어인 문제였습니다. 사실 무어인 문제는 초반에는 상당히 낙관적이었습니다. 그들의 개종을 맡은 탈라베라 대주교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무어인들을 개종시킨 덕이었습니다. 무어인들 사이에서 탈라베라는 평이 좋았고 그들은 탈라베라를 신뢰하게 됩니다. 그러나 탈라베라의 개종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한 종교적으로는 매우 열정적이나 머리가 꽉 막힌 자들이 탈라베라를 대신하여 개종을 맡게 되면서 일이 꼬입니다. 그들은 무어인들의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개종을 압박했습니다. 반란이 있었지만 이는 진압되었고 남아있던 무어인들은 개종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만을 가진 채 몰래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옹호하던 텐디야 백작 등의 소수 유화파마저 점차 힘이 약해지자 그들의 불만은 폭발. 1568년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강제이주됩니다. 그리고 강제 이주된 곳에서 농업 노동자등으로 종사하지요. 그러나 이 이질적인 집단을 골치아프게 여겨졌고 결국 1609년 추방조치가 내려집니다.

 물론 이 추방조치가 긍정적인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네덜란드와의 휴전 날짜에 이를 공표함으로써 치욕적인 패배를 감출 수 있었고 동시에 절망과 좌절에 빠져있던 스페인인들에게 일시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들의 공백으로 인한 손실은 컸습니다. 모리스코인 노동자들을 잃은 세비야는 경제가 쇠락했고 아라곤 연합왕국은 상당수의 비옥한 토지가 황폐해지는 경지에 이릅니다. 이는 1630년대에 왕실 고해사제가 모리스코 추방을 후회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물론 후회할 때는 이미 한참 늦었지요.

 마지막 문제는 카톨릭의 수호자 타이틀이었습니다. 때마침 불어닥친 종교개혁 탓에 종교에 열을 올리던 스페인은 자연스럽게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신교도들을 적대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이들은 독일, 프랑스의 종교 내전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종교내전 개입은 군비만 축낼 뿐 스페인에게 그다지 국익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신교도의 탄압은 결과적으로 스페인을 궁극적으로 몰락시키게 될 네덜란드 독립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어땠을까요? 프랑스는 격렬한 종교 내전을 치루었지만 그 결과 종교적 관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반포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고 덕분에 프랑스는 스페인이 종교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는 동안 착실히 내전의 피해를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프랑스는 1610년에 다시 한번 스페인과 유럽의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룰 만큼 성장하고 이후로도 대내외적으로 강건함을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프랑스도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1685년 파기해버리자 내부적으로 쇠락하기 시작합니다.


2. 따로놀기

  종교 부분에서 설명했지만 스페인은 성립 당시 이질적인 지역들의 연합체였습니다. 주도적 역할을 하던 카스티야는 농업과 목양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가진 봉건 귀족들이 주축인 봉건 국가였고 아라곤은 상업 중심의 상업 귀족 혹은 해양 부르주아지들이 주축이 된 자유주의적 국가였습니다. 비록 카스티야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다른 환경 탓에 아라곤은 상당한 자치를 누렸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스페인의 왕 역시 아라곤의 자유주의적인 법을 존중해야 했으며, 아라곤 연합 왕국은 스페인이 치루는 전쟁에 협조하지 않아도 스페인 왕은 속앓이만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발렌시아, 아라곤 지역은 상대적으로 협조적이었지만 아라곤 왕국의 중심지였던 카탈루냐는 툭하면 뻐팅기는 등 골치 아프게 굴었기에 더더욱 속이 끙끙거렸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카스티야는 독점적으로 아메리카를 관리할 수 있었고 아라곤 연합 왕국 지역 사람들은 간접적인 무역 자체는 몰라도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것은 불허되었습니다. 대신 이탈리아는 아라곤의 관리구역이었지만... 이후 합치게 되는 포르투갈도 사실상 아라곤과 같은 상태에 놓여 전쟁에 딱히 협조하지 않아도 되고 식민지는 독자적으로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정부는 점차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합니다. 아라곤과 포르투갈 등 따로 노는 지역에 어떻게든 중앙 권력을 강화시켜서 하나 된 스페인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그럴만도 했습니다. 사실상 이런 따로 놀기로 인한 행정 상의 비효율성의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전쟁으로 툭하면 파산 선언 할 만큼 재정이 궁핍해진 스페인으로서는 아라곤과 포르투갈의 재정적 지원은 절실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하게 이들 지역을 통제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이런 구상은 올리바레스 공작 백작이 재상으로 있을 때 본격적으로 구현되려고 하나 이에 대해 카탈루냐, 포르투갈 등은 강력히 반발합니다. 안 그래도 카스티야지역 혼자서 이베리아 연합(아라곤 입장에서는 스페인)을 주도하면서 점차 그들의 권리,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자유, 권리에 대한 침해를 좀 더 노골화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특히나 적어도 16세기 경에는 민족주의 적인 감정이 유럽에서 어느정도 생겨났기에 자신들을 카탈루냐인, 포르투갈인들로 생각하기 시작한 이들은 카스티야인의 압제에 대한 불만이 커져갑니다. 결국 해당 지역 사람들은 그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기회만 엿보게 되며 대망의 1640년. 참다 못한 카탈루냐와 포르투갈에서 대대적인 봉기가 일어나버리고 맙니다. 두 지역 모두 스페인으로서의 이탈을 선언하며 카탈루냐의 경우 아예 프랑스에 신속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나마 카탈루냐는 12년 후 프롱드의 난으로 프랑스가 혼란스러울때 제압했지만 결국 포르투갈은 놓쳐버리고 맙니다.

 반대로 그들의 적 프랑스는 상당히 일체화된 편이었습니다. 남방의 툴루즈는 민족주의적 개념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프랑스의 군사력 앞에 굴복했고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키텐도 자신들을 프랑스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프랑스 본토와 가장 이질적이던 브르타뉴 조차도 오래전부터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안에 들어간 상태라 그 이질성이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차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은 지방 통제나 국력 발휘의 측면에서 플러스적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3. 전쟁

 사실상 스페인 제국은 15세기 말 ~ 1669년 까지 전쟁의 연속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시겠다고 말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많은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죠. 아즈텍, 마야, 잉카는 논할 필요도 없을 정도고 이후에도 멕시코에서는 치치멕족, 칠레에서는 뛰어난 전사들인 마푸체와 기나긴 혈전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치치멕은 어떻게 복속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마푸체는 형식적으로 복속시켰다가 반란 발발로 일곱 도시가 쑥밭으로 개조당하고 마푸체는 재독립할만큼 엄청난 출혈을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제국에게 엄청난 출혈을 가져온 전쟁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유럽의 전쟁이지요. 초기의 레콩키스타, 15세기 말 ~ 1559년의 이탈리아 전쟁. 그리고 1568년 ~ 1648년 까지의 네덜란드 독립 전쟁, 1635~1659년의 프랑스와의 전쟁. 1640~1669년까지의 포르투갈 왕위 계승 전쟁 등 유럽에서도 수많은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이런 전쟁들로 인한 재정적 손실은 엄청났습니다. 시작은 이탈리아 전쟁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이미 이탈리아 전쟁으로 인한 군비 손실로 말미암아 1557년에 한 번 파산을 선언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탈리아 전쟁은 소득이 있던 전쟁이었습니다. 장기간의 전쟁이었지만 덕분에 남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슈콩테를 확보하고 이탈리아 전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다들 아시겠지만 네덜란드였습니다. 스페인의 압제, 전횡 및 종교 갈등까지 겹쳐 발발한 이 반란은 네덜란드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엄청난 부를 자랑하던 네덜란드의 반란을 스페인은 재빨리 진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용맹스러운 테르시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진압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학생님의 표현대로 하자면 운하, 요새 등등으로 도배된 네덜란드의 전장은 야전 대신 시간이 질질 끌리는 공성전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반란의 빠른 진압은 수 많은성 떨어뜨려야 된다는 점 때문에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스페인은 스페인 본토보다 3~4배나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끝낼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스페인의 재정은 피폐해져갔습니다. 알렉산더 파르네제가 총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그래도 어떻게 거의 진압하는데 성공했으나 위그노 전쟁에 대한 섣부른 개입으로 상당한 손실을 맛보면서 진압의 희망은 거의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지루한 밀고 당기기... 이미 1600년대부터는 네덜란드 전쟁을 끝내야 된다는 여론이 강해졌고 12년간의 일시적 휴전이 맺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네덜란드에서 너무나도 많은 재원이 소모되었고 스페인 제국은 대략 20년에 한번 꼴로 파산 선언을 해야 할 만큼 재정 상황이 심각해지고 말았습니다.

 간혹 네덜란드에서의 상황이 유리해지는 경우도 있기는 했습니다. 1580년대 알렉산더 파르네제 시절과 1620년대 스피놀라 시절이었죠. 하지만 스페인의 정치가들이 이런 상황에 초를 쳤습니다. 1580년대에는 나사우의 마우리츠가 등장하여 전열을 재정비하는 데도 프랑스의 앙리 4세를 몰아내는 일에 더 열중한다는 결정을 내려 진압의 기회를 날렸고, 1620년대에는 북이탈리아의 공국에서 벌어진 분쟁 해결을 더 중시하기로 결정하여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의 유리한 상황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만약 그들이 철저하게 네덜란드에 치중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아마 진압, 내지는 더욱 유리한 조건의 협상으로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스페인은 카톨릭의 수호자란 타이틀과 북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잇는 '스페인 길(스페인 로드)'의 유지 때문에 유럽의 종교 내전에도 개입해야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스페인은 30년 전쟁에 말려들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프랑스와도 기나긴 전쟁에 돌입합니다. 거기에 포르투갈과의 다툼도 추가되고... 결국 네덜란드와의 전쟁이 끝남에도 엄청난 전비가 한동안 지출되었고 이런 전비 지출이 끝났을 때 스페인은 너무나도 가난한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위그노 전쟁 이후 전쟁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간혹 반란이 터지기는 했지만 반란 진압 비용은 스페인이 전쟁에 치루는 비용보다 적었고 재정에도 큰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30년 전쟁 당시 여러 나라들에 재정 지원을 하며 자신도 직접 전쟁을 수행할 만큼 재정적으로 풍족해지게 됩니다. 물론 루이 14세가 자주 전쟁을 일으키는 테크를 타면서부터는....

파일:1000oz.silver.bullion.bar.underneath.jpg


 4. 은

 사실 이것만으로도 거의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내공의 한계 때문에 대략적으로 다뤄볼까 합니다.

 16세기 세계는 은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은과 관련된 사건이 많았습니다. 조선에서 회취법, 혹은 연은법이라고 불리는 은 제련법이 발견되고, 유럽에서도 수은아말감법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이와미(지금의 시마네), 멕시코, 포토시에서 대량의 은이 발견됩니다. 스페인은 이런 세계적인 추세 속에 수은을 이용한 제련법과 멕시코, 포토시의 은광을 통해 엄청난 은을 벌어들입니다. 물론 여기에 사용되는 노동력은 현지 원주민들과 노예들. 네... 당연히 착취당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착취를 통해 스페인은 너무나도 많은 은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창 은을 채굴하는 데 열중하는 동안 스페인 인들은 그 은이 스페인을 몰락시킬 줄 몰랐습니다.

 스페인으로 흘러들어온 은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스페인의 물가를 폭등시켰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스페인에서 생산되는 생산품들은(그것이 농산물이던 공산품이던간에) 너무나도 비싸진 가격 탓에 가격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이는 생산자들의 생산 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생산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게 되고 스페인 사람들은 놀게 됩니다. 그들은 스페인 정부가 전비 마련을 위해 외국 상인들에게 발행한 공채 '후로'를 사서 그 이자로 먹고 사는 기식자들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그 정도는 매우 심각하여 1550년대에 이미 '쟁기로 땅을 갈아 벌어먹는 법을 다 까먹었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7세기쯤 되면 상황이 더 악화되어 '1명의 성실한 사람에게 30명의 기식자가 붙어있다'는 말도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네덜란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스페인의 은은 스페인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외국 상인들에게 수많은 채무를 지고 있었고 그 채무를 해결하는데 은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들어오는 은도 모조리 전쟁 비용으로 가버리고..... 한때 포토시 은광의 발견으로 이런 은으로 인한 문제를 어떻게 불식시키는 듯 했지만 결국 은은 스페인의 파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서 비교할 만한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이지요. 중국 역시 은의 시대가 됨에 따라 엄청난 양의 은이 유입됩니다. 이와미 은광, 멕시코의 은광, 포토시 은광의 은들의 궁극적 목적지는 사실상 중국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중국은 '은의 블랙홀'이란 말까지 듣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은으로 인한 문제점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어째서였을까요? 그것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경제 규모입니다. 당시 명나라의 인구는 대략 1억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스페인 제국은 이베리아연합 시절 기준으로 유럽 영토에 사는 인구가 대략 1천만명이었습니다. 네.. 인구 수가 약 10배 정도나 차이가 납니다. 만약 화폐로 은을 사용한다고 하면 자연히 중국쪽의 은 수요량이 스페인보다 압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스페인은 멕시코와 포토시의 은만으로도 국민들의 연금생활자화가 진행된 반면에 중국은 이와미 은광의 은까지 더해졌음에도 끄떡없었던 것입니다.

 두번째는 은의 유입 방식입니다. 스페인의 은은 순전히 착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대가 없이 그냥 쥐어짜면 되는 거였습니다. 반면 중국의 은은 무역을 통해 얻었습니다. 은을 받을려면 무언 가를 건네줘야 했습니다. 당연히 은을 얻는 비용 자체는 스페인이 쌌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스페인이 은으로 허덕이고 중국이 은의 유입에도 멀쩡했던 이유였습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은을 얻기 위해서 물품을 건네줘야 했고 이로 말미암아 서양인들이 원하는 차, 도자기, 비단 등의 생산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관련 산업의 발전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산업들의 발전도 견인하며 경제 발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반면 스페인은 은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원주민이나 흑인 노예를 쥐어짜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무대가성으로 말미암아 스페인은 자국 산업을 키울 필요가 없었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자국의 산업을 몰락시킵니다. 결국 세상에 공짜란 없었던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내공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심도있는 주제를 다뤄봤습니다. 정말 많은 시간을 소모했고 자료도 많이 참고했으나 내공이 약하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에 대한 좋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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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대공 2011/07/03 23:55 #

    사회의 폐쇄성과 기본 경제력의 취약약함이 두가지 포인트가 되는군요.
    근데 은의 유입이 물가상승 요인이 되는건 왜인지..
  • 漁夫 2011/07/04 00:23 #

    당시 은/금으로만 화폐를 만들 수 있었기 땜에 갑자기 은/금 유통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바로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 대공 2011/07/04 00:56 #

    은본위제였죠 참;
  • 로자노프 2011/07/04 17:52 #

    대공// 어부님이 설명하셨지만 은을 통화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은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바람에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 벌어졌고 이것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어부//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 漁夫 2011/07/04 22:06 #

    http://sunho1007.egloos.com/2154836 강희대제님의 포스팅(주인장께서는 보신 듯함)이 약간 다른 관점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엎어치건 메치건' 결과적으로 화폐가치 하락을 가져온 것은 마찬가지인 듯.
  • 漁夫 2011/07/04 00:23 #

    파르마 공 얘기는 '아르마다'에서 잘 나와 있었습니다. 대단히 뛰어난 무장으로 묘사되더군요.
  • 로자노프 2011/07/04 17:52 #

    파르마 공작 알렉산더 파르네제는 그 당시의 뛰어난 무장들 중 한명이었죠. 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위인이럭ㅂ니다.
  • 카니발 2011/07/04 00:42 #

    덕분에 유로파 유니버셜스에서 함부로 금광!금광!하면 인플레이션이 미친듯이 치솟죠 orz.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7:52 #

    감사합니다.
  • Aydin 2011/07/04 00:47 #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잘 정리해 주셨군요.

    이베리아에서 세 개의 종교가 공존하던 시기에 모사랍인(mozárabe)들이 이루었던 예외적인 문화적 성취를 떠올리면.. 개인적으로 레콩키스타가 끝나고 스페인 종교 정책이 배타적이 된 게 너무 안타깝더군요. ㅠㅠ
  • 로자노프 2011/07/04 17:52 #

    확실히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으로 변한 스페인의 종교 정책은...
  • 앨런비 2011/07/04 01:27 #

    어익후 개념글.
  • 로자노프 2011/07/04 17:52 #

    감사합니다.
  • 불별 2011/07/04 02:02 #

    페르시아 만 주변에도 저렇게 스페인의 식민도시가 많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7:54 #

    아... 지도에 미처 설명을 못드린건데 페르시아만의 식민지는 포르투갈령이지 스페인령이 아닙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지도에 대해 더 설명하면 파란색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이지 스페인의 식민지라고 볼 수 없습니다. 동군연합으로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지배하게 되지만 포르투갈은 폭넓은 자치권을 받았고 식민지를 독자적으로 관리했습니다.
  • MessageOnly 2011/07/04 02:54 #

    역시 산업기반 없는 상태에서 금융돌리기만하다가는 경제난을 극뽁하기 어렵군요. 일 잘하고 돈 잘버는 유대인들을 내쫓았으니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고, 바다건너에서 대박터뜨리는 일이 연일계속되니 본토에서 땅파먹기는 것도 유지하기 힘들었을겁니다. 너도나도 배타고 빠져나가는 한탕주의에 빠져 노동을 소홀히 했을 것이니..소는 대체 누가 키우려고 들었을까 싶어요.

    제국의 성장과 몰락 모두 '종교적 열정'에 원인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통일 왕국이 탄생하게 되고 이슬람세력을 북아프리카로 몰아내고, 돈되는 유대인(산업력)을 죄다 쓸어내버렸죠. 카톨릭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대서양을 건너간 모험자들을 통해 많은 귀금속이 제국으로 유입되면서 제국이 부를 누리며 커질 기회도 있었지만.....인플레는 둘째치고, 유입된 금은보다 많은 지출을 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종교전쟁'의 첨병에 서서 모처럼 들어온 수입도 죄다 탕진해버리고 오히려 빚더미에 앉게 된 것부터가 비정상으로 보입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게된 원인도 '카톨릭 수호자'같은 쓸데없는 종교적 열정때문인 것이겠지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돈관리만 좀 제대로 했어도 카톨릭 수호자가 로마를 털어버리는 재난은 없었을것입니다.

    '이게 다 카톨릭 때문이다. 이렇게 될때까지 카톨릭은 대체 뭘했나'
  • 로자노프 2011/07/04 17:54 #

    그러나 신대륙 개척 자체는 세속적 동기도 많았고 전반적으로 종교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면도 많습니다. 특히나 저 따로 놀기는 더더욱이요.
  • 누군가의친구 2011/07/04 03:20 #

    스페인이 거둔 은은 거의 대부분이 국외로 빠져나갔으니 말입니다. 약탈에 의존하다보니 영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이 상인계층에 의한 경제발전은 기대할수도 없었고 말입죠.
  • 로자노프 2011/07/04 17:54 #

    그렇습니다. 약탈 경제의 한계라고 해야 되나...
  • 2011/07/04 05:3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7:55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개조튀김 2011/07/04 05:57 #

    은이 곧 통화였던 시대 였기때문에, 은의 채굴이 결국 돈을 찍어내는것과 같은 꼴이였죠.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플레는 호환 마마와 맞먹는 무서운 존재...
  • 로자노프 2011/07/04 17:55 #

    1차 대전 이후의 독일, 2차 대전 직후의 헝가리, 그리고 현재의 짐바브웨가 인플레의 무서움을 잘 보여주죠.
  • 피그말리온 2011/07/04 06:24 #

    재밌게 읽었습니다. 생각할것도 많이 얻어가게 되네요....
  • 로자노프 2011/07/04 17:55 #

    감사합니다.
  • 소시민 2011/07/04 06:33 #

    스페인령 아메리카 식민지 내에서 아라곤 출신도 외국인 대우를 받았다는 걸 보고 놀랐었죠 ㄷㄷ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7:56 #

    사실상 같은 스페인 왕국 소속인데도 조사하면서 느낀 건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이질성이 너무 크다는 것일 겁니다. 너무 달라요.
  • ㄴ3 2011/07/04 06:54 # 삭제

    지금 중동의 많은 국가들이 겪는 문제와 비슷하네요. 자국에서 석유 생산->산업기반도 가져본적이 없는 나라에 석유생산과 비슷한 수준의 가치를 갖는 노동따위 있을리가 없으니 일을 안함->정부에서 당장 돈은 많으니 세금을 요구하긴 커녕 역으로 먹여살려줌->무한 실업자

    아마 그 뒤엔 '결국 ㅈ망'이 되겠죠?
  • ㅃㅂ 2011/07/04 10:49 # 삭제

    중동과는 다른게...
    석유는 자원이고 재화라서
    이걸 수출하는 건 다른 천연자원 수출하는거랑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은은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없고 오직 화폐로서의 가치만 가졌다는 거죠
    오히려 은과같은 국제공용화폐인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는 미국에 비견될수있겠네요
  • 한국 짱 2011/07/04 12:40 #

    미국과 당시의 스페인과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죠.
    인구도 인구일 뿐더러(지금 미국보다 인구가 많은 국가 자체가 몇 없죠) 농업, 서비스업, 제조업과 같은 것들이 극도로 발달된 나라가 미국이니깐요.

    본문에서는 은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농사를 짓는 법을 잊어 버렸다고까지 한탄하지만, 미국은 달러로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들었다고 해서 공장을 돌리고 농사짓는 법을 잊은 것은 아니니 비교하기가 어렵죠
  • 한국 짱 2011/07/04 12:44 #

    차라리 은과 달러를 비교하는 것 보다는 스페인이 벌였던 전쟁과 현재 미국이 벌였던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투입되는 막대한 전비를 비교하는 것이 그나마 비슷할 것 같네요
  • 로자노프 2011/07/04 17:57 #

    ㄴ3// 어쩌면 스페인의 모습은 현대 자원으로만 먹고 사는 나라들과 비슷하기도 하죠.

    ㅃㅂ// 미국은 스페인과 달리 기본 산업은 매우 탄탄합니다. 그것이 1차 산업이든, 2차 산업이든, 3차 산업이든간에요.

    한국 짱// 맞는 말씀입니다.
  • 들꽃향기 2011/07/04 18:24 #

    사실 스페인은 신대륙 발견이전에도 언급하신대로 '원자재수출 의존경제'에 가까웠습니다. 영국이나 아일랜드와 같이 목초가 풍족한 환경이 아니었었던 스페인에서 목양업은 원래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었지만, 북아프리카에서 들어온 메리노 종(種)의 양은 우수한 품질의 양모를 보다 많이 확보하게 해줌으로서 스페인 목양업에 가격경쟁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양모->모직물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스페인은 이미 발전하고 있던 플랑드르 지역의 모직물업에 시장통합이 되어버립니다. 때문에 비베스 비센스의 표현을 빌자면 스페인은 '중세의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위치를 가지게 되었죠.

    이렇게 발전하는 목양업을 두고 원료수출에 만족하는 봉건귀족 카르텔과 조금씩 모직업의 역량을 축적해가고 있던 도시민들의 충돌은 공동왕 시기에 가속화되었고, 결국 카를 5세의 즉위를 기해 코뮤네로스의 난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난을 주동하였던 도시민들이 철저하게 패배함으로서 결국 스페인은 원료수출에 만족하고 '자국산업의 양성에 무관심한' 경제정책이 그대로 이어지게 되죠.
  • 댓글돌이 2011/07/05 01:42 # 삭제

    한국짱// 이라크전쟁 전비가 천문학적 수준이긴하지만 미국 총생산과 비교해보면 심각한수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MontoLion 2011/07/04 08:04 #

    저는 전쟁과 은까지는 알았는데 그밖에도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개념글 인증!
  • 로자노프 2011/07/04 17:57 #

    개념글 인증 감사합니다.
  • KittyHawk 2011/07/04 09:02 #

    열성적인 신앙은 개인으로선 권할만하거나 용인할 정도는 되지만 집단의 문제로 넘어가면 참 골 아픈 거군요,.
  • 로자노프 2011/07/04 17:57 #

    개인도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확실히 맞는 말씀입니다.
  • 행인1 2011/07/04 09:47 #

    막대한 금/은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버렸군요. 잘 읽고 갑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7:57 #

    네... 금, 은이 저주가 되버린 것이지요.
  • heinkel111 2011/07/04 10:13 #

    조금 이야기가 틀리지만 예전에본 나우루공화국의 번영과 몰락이 생각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7:58 #

    나우루도 어떻게 보면 비슷하긴 할겁니다만 스페인의 은은 사치에만 쓰인 건 아니니까요.
  • 역성혁명 2011/07/04 10:15 #

    제국도 탄탄한 경제력과 그에 걸맞는 전략없이는 유지할수없다는 진리를 깨달았군요.
  • 로자노프 2011/07/04 17:58 #

    맞습니다. 기초적인 산업이 어느 정도는 기반이 닦여 있어야 제국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로리 2011/07/04 11:23 #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원(?)이라는 것이 언제나 독이 되는 듯 하더군요. 지금은 석유가...
  • 少雪緣 2011/07/04 13:09 #

    지금은 은을 캐는 대신 달러를 찍어내는 시대(...)
  • 로자노프 2011/07/04 17:59 #

    로리// 다행스럽게도(?) 석유는 한동안은 계속 나올것입니다.

    少雪緣// 그 달러 찍어내는 나라님은 스페인과 달리 기반 산업이 매우 튼튼합니다.
  • Peuple 2011/07/04 11:49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7:59 #

    감사합니다.
  • 남극탐험 2011/07/04 13:59 #

    좋은 글 읽었습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7:59 #

    감사합니다.
  • Jimica 2011/07/04 14:33 #

    축복이 사실은 저주였다니... 공짜밝히면 안되는거군요 역시
  • 로자노프 2011/07/04 17:59 #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의 좋은 예시일까요?
  • 앨런비 2011/07/04 14:54 #

    뭐랄까. 여기서 합스부르크가와의 연계까지 넣었어야 할텐데.
    카를 5세의 통치기라는 것 자체가 장기적으로 보면 스페인에 마이너스를 준 것이라능.
    합스부르크가와 연계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이탈리아 정도까지야 아라곤-카탈루냐의 이익 때문이라도 어느정도는 개입할 만 한데.
    독일의 전쟁이 스페인으로 불똥이 튀기도 하면서 스페인이 과하게 개입하게 되었다는 것.
    그나마 카를 5세라는 먼치킨이라서 버틸 수는 있었지만, 반란도 일어나고, 네덜란드인등 외국인에 대한 불만도 계속 쌓여왔으니.
    그리고 펠리페 2세는...
    일단 안구의 습기부터 닦고(....)
  • 로자노프 2011/07/04 18:01 #

    그걸 반영하지 않은 이유는 3가지입니다.

    1. 글 구상 당시에는 미처 생각 못함.

    2. 내공의 일천. 물론 어떻게 쥐어짜서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3. 타국과의 비교가 힘듬. 애초에 이 포스팅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포스팅은 비슷한 상황의 타국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 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분석하려고 했는데 합스부르크의 연계는 딱히 다른 나라와의 비교가 힘들어서요...
  • ㅇㅇ 2011/07/04 15:02 # 삭제

    유익한 글 잘 보고 갑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8:01 #

    감사합니다.
  • 조환 템플라 2011/07/04 15:35 #

    스페인 제국이 대영 제국에게 밀리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저는 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를 중심으로 안주하려는 자세'도 꼽고 싶습니다. 반대로 대영 제국의 경우에는 너무 확장하려고만 해서 독일같은 신흥 열강이 먹을 식민지를 남겨두지 않아 1차 대전으로 패망한 것 같구요. 그래서 현 미 제국은 동맹국을 많이 두지 식민지 같은 건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미국의 식민지라 할 수 있는 곳이 중남미 인 데, 이 곳들도 엄밀히 말하자면 스스로 지켜야 할 게 뭔지 모르고 투쟁해야 할 적이 누군지 모르고 내란으로 휩싸였으니 미국 코 아래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요. 미국이란 세계 최고의 외교력을 가진 나라 옆에서 그러면 솔직히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에 욕심 안 나겠습니까?
  • 로자노프 2011/07/04 18:01 #

    미국이야 자기네 땅에서 뭐든지 다 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듯 합니다.
  • 조환 템플라 2011/07/04 19:50 #

    열강이란 게 다 똑같애요... 일본이든, 미국이든, 영국이든...
  • 로자노프 2011/07/04 22:24 #

    하하 뭐 그렇긴 합지요.
  • mosaan 2011/07/04 16:07 #

    교훈적인 글이긴 합니다만, 현실 정치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배부른 지배자들이 종종 시도하는 자신들의 지배력을 견고하게 만드려는 노력이 역사적으로 그다지 '경제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봉건사회에서 근대적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예상된 미래를 현재에 적응시키는 수준에까지 미국이나 서유럽국가들이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과거'일 뿐이지요. 그렇다고 역사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 글과 같은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지배자'들이 비슷한 짓을 반복할 때는 다른 속셈이 있거나,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에 대한 계산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 로자노프 2011/07/04 18:02 #

    옳으신 지적입니다. 다만 애초에 전 현실 정치적 긴장감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쓴 포스팅입니다.
  • 00 2011/07/04 16:42 # 삭제

    잉카 최고의 무기기 금이라는 가정하에 쓰여진 뭔 이상한 소설도 있었지

    시중에 유통되는 것 말고도 전세계 금 보유고 1/3급 분량이 숨겨져 있어서 이게
    풀리면 경제폭탄이 되서 다 주저앉는다고
  • 로자노프 2011/07/04 18:02 #

    그건 무슨 음모론인지........
  • mosaan 2011/07/05 09:11 #

    00님의 의견은 제가 생각하기엔, 이전에 비해 부유해진 스페인에 닥친 '인플레이션'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유대인들의 '활동'이 사회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배층들의 '인식'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전제하고 쓰신것 같습니다.

    은의 유입은 좋은 것이지만, 인플레이션은 통제를 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이 제거되는 것이 통제를 위해 필요불가결하다는 판단이 스페인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의 배경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에 소요되는 자금이 은의 유입으로 확보되고 있는데, 폭발적 인플레이션 때문에 군비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전쟁지도자가 어떤 종류의 신경질을 부리게 될까요?

    은을 바탕으로 해서 전쟁을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집단과 금융을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집단의 갈등에 대한 대략적 인식이 00님의 댓글에 내재해 있다는 점을 파악한다면, 역사 속의 '지배층의 오류'들을 현실 정치적 긴장감을 가지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아래 에드윈 님과 같은 역사적 지식들에만 반응하는 '학자적' 태도를 00님과 같은 사람들은 우물안 개구리의 안목으로 여기는 것이지요...ㅋㅋ
  • 로자노프 2011/07/05 21:46 #

    흐음...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mosaan님.
  • 에드윈 피셔 2011/07/04 16:54 #

    1- 모리스코 추방은 1580년의 불발한 모리스코 반란 이후 공공연하게 추진되었기 때문에, 1609년의 추방령은 "전쟁에서 졌으니까 이걸 감추려 했다기" 보다는 "전쟁이 끝났으니까 쫓아낼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추방령이 내려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더군다나 쓰신 것과 같이 1568년의 반란이 격파되면서 그라나다 내의 모리스코는 대부분 강제 이주당하면서 영향력을 거진 상실했기 때문에 모리스코들을 추방한다 해도 큰 영향은 없을 터였지요. 그러나 구 아라곤 영토의 모리스코는 그라나다와는 달리 스페인 국왕의 직접적인 손길에서 크게 벗어났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모리스코 인구가 경제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고, 실제로 1582년부터 공론화된 모리스코 추방은 어디까지나 발렌시아 왕국의 모리스코 인구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지 이미 산산히 조각난 카스티야의 모리스코들은 거스름돈 취급이었습니다. 언급하신 세비야만 하더라도 10만명을 넘었던 세비야의 인구 가운데서 추방 직전 모리스코 인구는 7천 5백여명에 불과했던데다가, 대부분의 모리스코 인구는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강제 이주되어 정착하여 곤궁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세비야의 쇠락이 모리스코 추방과 연결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들지요.

    실제로 모리스코 추방으로 피폐화된건 카스티야가 아니라 발렌시아 등의 아라곤 령이었는데, 문자 그대로 나라 안의 나라이니 카스티야 입장에서는 큰 손실일 수 없었던 겁니다.

    2 - 농노제도 없었던 카스티야보다는 아라곤이 차라리 봉건 국가에 가까웠다고 봐야죠. 더군다나 권력이 비교적 중앙에 집중되어져 있었던 카스티야를 봉건 국가라고 부르자면 -ㅅ-; 식민지와의 교역을 세비야로 제한한 것도 이런 중앙화의 맥락으로 볼 수 있겠고요.

    17세기 스페인 내전은 카스티야식 중앙 권력 체제를 아라곤 령과 포르투갈 령으로 팽창시키느냐, 아니면 종전의 특권을 그대로 내버려두느냐를 놓고 벌어진 것이지요. 돈을 더 먹느냐 덜 먹느냐를 놓고 벌어진 싸움이니만큼 당연히 민족주의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카탈로니아의 경우 쓰신 것처럼 프랑스에 귀속되기도 하고 나중에 카를리스트당의 반란이 벌어지면 반동 복고주의자들이 이런 특권을 부활시킨다고 떡밥을 뿌려서 바스크와 카탈로니아에서 지지를 얻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투쟁이 벌어집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8:07 #

    1. 모리스코 추방은 대체적으로 스페인 제국사의 견해를 따랐습니다. 스페인 제국사에서는 모리스코의 추방이 세비야의 경제를 어렵게 했다고 했는데 그걸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모리스코의 손실은 카스티야보다는 아라곤에서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단 이로 인한 스페인의 구성 지역의 큰 손해라느 점이나 인구 손해를 감안해 넣었습니다.

    2. 제가 사용한 봉건의 용어는 자유의 억압적 측면이라는 어찌 보면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아라곤의 경우는 시민들이 상당히 많은 자유를 누렸다는 점에서요. 다만 17세기의 내전은 님의 지적 역시 일리 있다고 봅니다.
  • 에드윈 피셔 2011/07/04 19:47 #

    2 - 사회주의적 관점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ㅅ-;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가 비교적 자유를 만끽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시기 도시가 자유로울 수 있을 만큼이나 자유로왔던 것이고 무엇보다도 스페인이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갈라져 있었듯 아라곤 안에서도 아라곤, 발렌시아, 카탈로니아는 제각각 다른 나라였기에 (...) 세 곳에 의회가 따로 있었으며 풍습과 법이 달랐으므로 특별히 바르셀로나가 어쨌다고 해서 그게 아라곤은 자유로웠다 이렇게 말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지요 -ㅅ-;

    뿐만 아니라 이들 지역이 비교적 자유로왔다는 것도 16세기 말 - 17세기 중반까지 살인적인 징세가 가능했던 카스티야와는 달리 아라곤 령은 강력한 특권으로 보호받은 까닭에 과세 등의 권력 행사조차 쉽게 할 수 없었다는 얘기지 무슨 사회적 구조가 다분히 자유로왔다거나 하는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 카탈로니아에서는 도시와 농촌 간의 싸움이 발생하고 산적 떼가 들끓는 등 사회 충돌이 짙게 이루어지고 있었거든요.
  • 로자노프 2011/07/04 22:26 #

    2. 분명 아라곤, 카탈루냐, 발렌시아는 독자적 의회가 있고 각자의 법이 있었고 자유의 차이는 있었던 듯 합니다. 다만 카탈루냐는 상당히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심지어 왕의 체포 명령이 떨어져도 독자적인 법정의 재판 결과에 따라 그 명령이 폐지될 수 있는) 법을 가지고 있었고 아라곤, 발렌시아도 뒤따라 비슷한 류의 법을 제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15세기 초엽에는 아라곤 연합왕국의 왕이 "유럽에서 니들 만큼 엄청난 자유를 누리는 놈들은 없어"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됩니다.
  • 에드윈 피셔 2011/07/05 17:31 #

    같은 얘기에요. 다만 제가 지적하는건 중앙의 권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특권이 많았다고 해서 카스티야에 비해 아라곤이 비교적 자유로왔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니다라는 거죠. 당장 인용하신 문구만 해도 15세기 초에 나왔다고 하셨는데, 15세기에 카탈로니아 농노제가 그 한계에 도달하면서 귀족들과 대상인들을 상대로 농민전쟁이 터지고 말았잖아요. 더군다나 16세기에 들면 지중해 무역이 침체하면서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들과 '시민'들의 힘도 쇠퇴할 수 밖에 없게 되고요. 한편 카탈로니아와는 달리 발렌시아는 부유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앞서서 언급된 모리스코들의 준 농노제 생활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 로자노프 2011/07/05 21:45 #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 에드윈 피셔 2011/07/06 09:14 #

    가르침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 굽신 굽신
  • 강희대제 2011/07/04 17:37 #

    잘봤습니다.
  • 로자노프 2011/07/04 18:07 #

    감사합니다. 저도 님의 이번 글 잘 봤습니다.
  • aLmin 2011/07/05 02:11 #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군요. (응?)
  • 로자노프 2011/07/05 21:44 #

    뭐... 공짜 좋아하다 나라가 작살난 케이스라고 해야 될까요.
  • 시즈 2011/07/06 12:43 # 삭제

    까치글방에서 나오던 책중 역사분야에서 읽을만한 책이 참 많지요. 엘리엇 경의 스페인 제국사는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때는 그토록 위대했던 스페인이 그 손자들의 시대에는 하는 일마다 안풀리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굉장한 수수께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약탈경제적 측면의 지적은 저는 미처 알고 있지 못하던 점인데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다른 이의 생각에 대한 관용이 사라지고 경직되는 사회라던지 이자생활자의 증가로 인한 경제구조의 기형화는 스페인 제국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네요. 좋은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 로자노프 2011/07/06 18:24 #

    좋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 티아 2011/07/10 03:47 # 삭제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발달사를 생각해 보면

    즤네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갑자기 결혼통일하더니 산업 육성은 움찔만 하고

    신대륙 어택땅으로 금은재보크리만 열심히 타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런식이었군요.

    외부에서 돈을 만들어서 그 돈으로 자기 계발을 하느냐

    돈 있으니 일단 지르고 보느냐가 흥망성쇠를 결정짓는건

    국가나 개인이나 매 한가지 입니다[..]
  • Mr 스노우 2011/07/11 23:12 #

    스페인 제국이 쇠퇴기에도 과거의 군사적 영광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던 것이 결국 탈이 되었지요. 현재의 어려움도 전쟁의 승리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더해지니, 전쟁과 이에 따른 재정악화라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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