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불운장군 이광.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장면 1

이광은 진나라 이신의 후손으로 무장의 가문 출신이었다. 한문제 시기 이광은 황제를 근처에서 모시게 되었는데 맹수를 잡는다던지 하는 무용을 많이 보였다. 하지만 한문제 시기면 흉노가 가끔 넘어오는 것 말고는 평화로웠던 시기. 한문제는 이광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아깝구나. 그대는 때를 잘못 만났구나. 만일 그대가 고조 시절에 태어났으면 족히 만호후에 봉해졌을것을!"

이정도야 시대를 잘못 탄 나름 유능한 무장들은 다 듣던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장면 2

문제가 죽고 그 아들이 황제에 오르니 바로 경제였다. 경제 시기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광은 주아부 휘하에서 여러 전공을 세웠다. 특히 창읍에서 반군의 군기를 탈취하는 공을 세웠고, 그의 무용에 감탄한 양왕이 그에게 장군의 인을 내렸다.

문제는 이 행동은 엄연한 양왕의 권한남용으로 불법행위였다는 것이다.

통상 이 경우 한 조정은 일반적으로 양왕의 행동을 문제삼아 봉토를 삭감하는 등의 벌을 양왕에게 내려야했다. 하지만 그런 봉토삭감에 대한 반발로 제후왕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바로 오초칠국의 난이었다. 거기다가 조정에서 양왕을 함부로 벌을 못 줄 사유는 너무나도 많았다.

1. 양나라는 오초칠국의 난 당시 반란군을 상대로 정말 열심히 싸웠다. 특히 주아부가 작전상의 이유로 양나라를 구원하지 않았고, 이 작전상의 이유때문에 조정의 양나라 구원 명령까지 무시했기때문에 양나라는 반란군을 상대로 악전고투를 해야했다. 양왕이 그 고생을 한 것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2. 죄만 지었다 하면 봉지를 마구 삭감당한 다른 제후왕들은 경제와의 관계가 몇촌 정도가 기본인 그런 관계였지만 달리 양왕은 경제의 친동생이었다. 벌을 주기엔 황제와 너무 혈연이 가까웠다. 

3. 황태후가 양왕을 너무나도 아꼈다. 어느정도냐면 경제에게 엄연히 아들들이 있는데도 양왕을 후계자로 삼아야한다고 경제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사실 이게 어찌 보면 결정적인 이유였다. 양왕을 벌주자고 하면 일단 황태후와 맞서야했고, 황제는 황태후에게 꼼짝도 못하는 형편이니 말이다.

이러니 조정에서 양왕에게 어떠한 벌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정은 이광에게 제대로 포상을 하지 않는 것으로 퉁쳤다. 결국 이광은 양왕의 월권행위때문에 공을 세우고도 상을 받지 못 했다.

장면 3.

그래도 이광은 변경의 태수직을 역임하며 여러 전공을 세웠다. 그 중엔 중귀인의 일도 있었다. 그러다 한무제가 즉위하였는데 한무제는 마읍으로 흉노를 유인해 섬멸하는 대규모 작전을 구상했다. 이광은 효기장군이 되어 작전에 참가했는데 선우가 유인에 걸려드는 듯 하다가 눈치채고 돌아가는 바람에 작전은 대실패했다. 이 여파로 책임자가 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고 이광은 공 하나 세우지 못 하고 말았다. 

장면 4.

4년 후 한무제는 다시 대대적인 흉노 원정을 계획했다. 4로군이 편성되었고 이광은 그 중 1로를 담당했다. 이광은 하필 선우가 이끄는 흉노 주력군과 정면으로 맞붙어버렸고 당연히 대패했다. 거기다 이 대패의 와중에 이광 본인도 부상을 입고 흉노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광은 선우에게 끌려가다가 운좋게 좋은 말을 탄 소년을 발견하고 말을 빼앗아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이광은 패배한 죄로 사형당할 처지에 놓였지만 속죄금을 내고 풀려났다. 대신 그는 관직을 박탈당하고 야인신세가 됬다.

당시 이 4로군 원정은 전반적으로 실패였다. 이광이 가장 처참하게 당했지만 다른 방면의 군대들도 패배하거나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이광에겐 너무 불운하게도 한무제가 자기 애첩 생각해서 낙하산으로 임명했던 애첩의 여동생 위청만이 흉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이미 명성이 높고 경력도 많은 이광도 대패한 판국에 낙하산으로 임명된 초짜 젊은이가 흉노를 상대로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장면 5.

이 때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광 자신의 명성과 경력이 있었기에 몇 년후에 다시 복직했다. 기원전 123년 이광은 후장군이 되어 대장군이 된 위청을 따라 종군하게 됬다. 위청은 이 시기 처음은 낙하산이었지만 흉노 상대로 성과를 여러 번 거둔 덕에 이광의 상관이 된 것이다. 이광은 자신은 불운한데 낙하산으로 임명된 자가 성과를 여러 번 거두더니 자기 상급자가 된 걸 보고 속이 타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이걸 달래려면 이광은 공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이 원정에서 위청은 여러 성과를 거두었다. 당연히 휘하 장수들도 이런저런 공들을 세워 상을 받았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광의 부대만이 공을 세우지 못했다.

장면 6.

2년 후 이광은 4천의 기병을 이끌고 출전하게 됬다. 장건이 다른 길에서 1만 병력을 이끌고 출격했다. 이광은 얼마 안 가서 흉노 좌현왕의 4만 군대에게 포위당했다. 이광은 자기 아들 이감에게 돌격하고 돌아오라고 명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친히 대황이라 불리는 쇠뇌를 쏘며 악전고투했다. 다음날 뒤늦게 도착한 장건의 군대 덕에 포위는 뚫렸지만 이광의 군대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장건은 뒤늦게 도착한 죄로 참형에 처해질뻔했다가 속죄금 내고 풀려났다. 이광의 경우 악전고투하긴 했지만 군공과 과오가 서로 같다며 포상 하나 받지 못했다. 

장면 7. 

이광에겐 사촌동생인 이채가 있었다. 이채는 본래 이광보다 능력이나 공적, 인품이 못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즈음 이채는 승상이 되었고 열후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능력, 인품 등에서 이채보다 낫다는 소리를 듣던 이광은 열후도 아니었고, 따라서 봉읍도 없었으며 관직도 구경에 못 미치는 판국이었다. 거기다 골때리는 건 이광의 휘하 장수나 병졸이었던 자들 중에선 이미 열후가 된 자들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면 8. 

기원전 119년 한무제는 곽거병과 위청에게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북진하게 했다. 이광은 출전시켜달라고 요청하나 연로하다며 거부당했다. 그러나 계속 간청하자 참전을 허락받고 위청 휘하에 배속되었다.

이 때 원래 흉노 선우의 군대는 곽거병이 상대하기로 되어있었다. 흉노도 이걸 들었는지 한나라 군대를 멀리 유인하는 쪽으로 작전을 잡았다. 그런데 위청이 포로를 통해 선우의 위치를 알게 되었고 위청은 선우를 잡기 위해 출전했다. 위청은 이광에게 동쪽길로 가라고 지시했는데 동쪽길은 멀리 돌아가는데다가 풀과 물이 부족해 병사들을 결집시키고 이동시키기 불리했다. 당연히 이광은 반발했지만 위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럴만한게 위청은 출전 전에 무제한테서 이광은 연로하고 운수가 사나워 선우와 맞서다 일을 망칠 수 있을까 두려우니 선우와 싸우게 하지 말라는 밀명을 받은 상태였다.

황제가 직접 이광은 운수가 사납다고 말한 걸 보면 당시에도 이광의 불운은 꽤나 화젯거리였고, 다들 이광은 운을 달아나게 만드는 사람이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정말 안습이 따로 없다. 

결국 이광은 동쪽길로 가게 됬다. 문제는 안 그래도 동쪽 길이 빙 도는 길인데다가 이광의 부대에 길잡이가 없어서 이광군이 헤맸다는 것이다. 어찌어찌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이미 위청의 군대가 선우의 군대를 격파한 뒤였다. 선우는 도망친 상태였다. 

위청은 이광에게 왜 늦었는지 물었으나 이광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위청은 휘하의 장사를 보내 이광을 질책하고 심문하려고 했는데 이광은 도필리에게 심문받는 수모를 받을 수 없다며 자결하였다.

추신 1: 위청의 군대가 선우의 군대와 교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곽거병의 군대는 우주 끝까지 뚫을 기세로 진격하고 있었다. 결국 곽거병의 군대는 바이칼호까지 도달해 거기서 거창하게 제사까지 지냈다. 당연히 전공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이 원정의 상은 곽거병과 그 휘하들에게만 쏟아졌고 위청은 별다른 포상을 받지 못했다. 아니. 아예 위청 휘하에 딱 한명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곽거병 밑으로 소속을 옮겨버렸다. 

추신 2: 이광의 불운은 당대에도 유명했고, 이광 그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자기보다 변변치 못한 자들이 자기보다 더 출세하고 있으니 이광 입장에선 속에서 열불이 터질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시 유명한 점쟁이였던 왕삭을 찾아가 왜 자기는 운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왕삭은 혹시 후회되는 일이 없었느냐고 물었고 이광은 오초칠국의 난을 진압한 이후 농서 지역의 태수로 있을 때 항복을 권유해 투항받은 강족 800명을 그날로 죽여버린 적이 있는데 그것이 후회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왕삭은 그 말을 듣고 이미 항복한 자들을 죽이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다며 그런 짓을 했으니 제후가 못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하였다. 

덧글

  • 까마귀옹 2017/10/09 17:39 # 답글

    1. 바닥 밑에 바닥이 있다고,이광만큼이나 불운한 그 다음 세대의 장수가 생각나는군요. 태사공께서 '영 좋지 않은 꼴'을 당하게 된 일과 연관된 이릉 말입니다.

    2. 왕삭의 말을 들은 이광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당대의 이광이었다면 백기의 그 유언을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 위장효과 2017/10/10 09:37 #

    1. 이릉은 한 큐에 일을 확!!! 당했지만 이광은 겹치고 또 겹치는 불운이 진짜 답답하게 쌓였죠...그러고보니 3대에 걸쳐 쌓인 불운이네요-이광도 끝이 저 모냥이고 장남 이당호는 젊어서 죽었고 손자 이릉까지...이당호의 다른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고...
    아무래도 이신부터 내려오는 불운인 듯. 이신이 역사에 유명한 게 바로 그 왕전의 "60만은 있어야 초나라 깰 수 있습니다!"라는 상신을 "그거 영감님 기우입니다. 신이라면 20만으로 해 보이겠습니다!"라고 기세등등하게 나섰다가 그냥 항연에게 캐발려버린 사건이니 말입니다. 돌아와서 "아무리 따져봐도 60만은 있어야됩니다."라고 상주하는 이신의 쫀심은...
  • 까마귀옹 2017/10/10 09:40 #

    아.....그러고 보니 이릉이 이광의 손자였죠. 그걸 깜빡했습니다.
  • 로자노프 2017/10/10 20:54 #

    까마귀옹//

    1. 손자인 이릉도 확실히 불행하죠. 진짜 조상 이신부터 시작해서 저 집안은 뭔 불운이...

    2. 아마 그랬을 것 같긴 합니다.

    위장효과// 진짜 조상 이신부터 해서 저 집안은 뭔가 운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 5thsun 2017/10/10 08:44 # 답글

    위청이 낙하산으로 온 장군이긴 해도 실력은 탁월했나 보네요.

    아니면 운이 탁월했던가
  • 위장효과 2017/10/10 09:48 #

    덤으로, 위청이나 곽거병이나 둘 다 정식 결혼으로 태어난 자식들이 아니란 겁니다. 한무제의 누이 평양공주집에서 일하던 하녀의 아들이자 외손자...그리고 그 하녀의 딸-이자 위청의 누이-이 한무제의 두번째 황후인 위자부였고 덤으로 위청도 출세하게 된 거죠.

    첫 출전은 분명 운도 작용했는데 그 이후는 확실하게 공을 세웠고, 뭣보다 곽거병은 그 시절에 바이칼호까지 진격하는 미친(!!!) 짓을 성공했으니 뭐...
  • 로자노프 2017/10/10 20:55 #

    데뷔전은 분명 운적 요소가 강합니다. 하지만 이후 전과등을 봤을 때는 실력 역시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일설에는 위청이 이런 식으로 성공하고, 역시 나중에 낙하산으로 임명한 곽거병은 위청보다 더 대단한 성과들을 거둬대니 한무제가 자기가 장수 보는 눈이 있는 줄 알고 자뻑하고 낙하산에 취미가 들렸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곽거병 이후론 낙하산이 안 통했다는 거였지만요.
  • 함부르거 2017/10/10 15:02 # 답글

    이광은 비교되는 상대가 위청과 곽거병이었으니 더더욱 그 불운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장면8 다음에 막내 아들 이감이 위청을 두들겨 패는 사건이 벌어지죠. 위청은 그를 용서했지만 곽거병이 이감을 쏴 죽여 버립니다. 이광의 집안과 위청 곽거병의 관계는 그야말로 악연이라고 밖엔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로자노프 2017/10/10 20:55 #

    그러게 말입니다.
  • 야채 2017/11/05 07:21 # 삭제 답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광은 일신의 무용은 뛰어났지만 군을 통솔하는 장수로서의 능력은 심하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광이 세웠다는 전공들은 모두 개인의 용맹함으로 세운 것들이지 통솔력이나 전략전술을 보여주는 일화는 없습니다. 전쟁에 나가면 '왠지' 대군을 만나서 패배하고, 유리할 때는 '왠지' 적을 만나지 않아서 공을 세우지 못하고, '왠지' 길을 잃고... 한 번이라면 우연이나 불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적의 상황이나 지형을 살피는 기본적인 사항들조차 소홀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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