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 7개월 미스터리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초한전쟁 연재를 위해 자료를 모으던 도중 희한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이번 2부작 연재 중 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다룰 용쟁호투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생각이지만 일단 발견한 김에 올립니다.


사기 진초지제월표, 자치통감에 의하면 기원전 205년 4월(물론 음력) 팽성전투가 벌어집니다. 이 전투에서 항우의 3만 정예병력들이 유방을 격파합니다. 이 전투야 다들 유명합니다만... 이 전투 후 기원전 205년 동안 초한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치통감과 진초지제월표를 통해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4월 팽성전투. 항우의 대승.

5월 경색전투. 유방 승리. 유방 일단 한숨 돌림. 위표의 배신. 유방의 진평 의심.

6월 유방 역양으로 돌아감. 폐구 함락. 장한 자살.

6~8월 사이 유방. 역양에서 다시 최전선 형양으로 이동.

8월 역이기의 위표 설득 시도. 실패. 관중에 대기근 발생.

9월 안읍전투. 위표패망. 한신의 대나라 점령.

10월 정형전투. 조나라 멸망. 진여 사망. 연나라 항복

11월 경포가 유방에게 투항.

12월 경포 항우에게 패퇴. 형양성으로 도주. 항우군 형양 포위.


이게 팽성전투와 그 이후의 대략적인 연표입니다. 보시다시피 유방은 팽성전투 패배 이후 바쁘게 움직입니다. 일단 경색전투로 항우의 추격군을 격파, 한숨 돌린 후에 얼른 관중으로 가서 전열을 정비하고, 후방의 위협인 장한을 제거해버립니다. 그 뒤에 일단 배반한 위표의 설득을 시도하지만 실패. 그러자 한신에게 위표를 공격하게 합니다. 이로 인해 서위가 멸망해버리죠.


서위가 멸망한 후에는 아예 한신에게 3만 정도의 군대를 떼어주고 하북을 평정하게 합니다. 좀 많이 적은 숫자지만 팽성에서 대패한 직후인데다가 항우의 위협, 관중의 대기근과 잇따른 전란으로 인한 인력고갈(당장 노인과 아이까지 긁어모아서 병력으로 편성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을 감안하면 정말 쥐어짤대로 짜내서 준 병력입니다. 이 병력으로 한신은 단기간에 대,조를 멸망시키고 연을 복속시켜버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방이 원정군을 쥐어짜내가면서까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항우는 딱히 움직임이 없습니다.





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록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전횡에게 패배한 전가를 죽였다는 기록과, 제나라와 화친했다는 식의 기록은 좀 보이고 자기 친척인 항타를 위나라에 보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긴 하지만 항우 본인의 행적은 그게 다입니다. 초나라 전체로 따져도 경색전투가 끝입니다. 유방이 자신의 역량을 한계까지 쥐어짜내면서 바쁘게 움직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단순히 제나라가 위협적이라 제나라가 걱정되서가 같지는 않습니다. 항우는 유방이 팽성을 공격하기 직전까지 유방의 군사행동을 놔두면서 제나라 평정에만 몰두하던 경력이 있는 자입니다. 거기다 이 제나라 원정 기간동안 제나라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항우가 팽성으로 돌아간 사이에 제나라는 영토를 전부 회복하긴 했지만 원체 국토가 쑥대밭이 된지라 후방을 위협할 여력이 없습니다.


일단 당시 상황상 항우는 유방보다 다른 모든 면에서 우위에 서있다고 해도 됬습니다. 경색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이건 예상치못한 반격에 당한 놀라서 당한 형국이라 피해가 딱히 크지는 않았고, 이전 제나라와의 전쟁도 단순히 제나라가 절대 항복하지 않아서 시간을 질질 끈 형국에 가까웠기에 병력 피해가 유방보다는 커보이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유방은 팽성에서 입은 피해가 크다는게 확실하게 묘사됩니다. 일단 유방은 최소 10만이 팽성에서 수장당했고,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병력들이 죽거나 달아나고, 제후들이 줄줄이 이탈했습니다. 당장 관중에서 인력이 고갈되어 노약자를 끌어오는 경지에 이르렀고, 그걸로도 부족해서 대기근까지 드는 개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방은 이 상황에서 가만히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힘을 쥐어짜내서 행동을 하고 있었고, 그 결과 하북을 평정했습니다. 항우는 조, 연, 대가 평정되고 나서야 조나라에 별동대를 보내 찔러보는 수준의 행동을 합니다. 그 자신이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벌이는 건 11월에 경포가 배신하고 나서고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항우가 진작에 군대를 움직였다면 서위가 유방에게 망하는 건 못 막았다고 해도 대나 조나라가 망하는 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팽월이란 변수를 고려해야겠지만 적어도 당시까지 팽월이 항우의 발목을 제대로 잡거나 하지는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항우는 유방에 비해 꽤나 우세했습니다. 병력피해도 적고 적어도 이쪽은 대기근이 들었다는 묘사는 없으니까요. 만약 팽월이 거슬린다고 해도 적어도 7~8월에는 군대를 움직여 팽월을 밟아놓고, 그 다음에 유방을 공격해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우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항우가 가만히 있던 저 7개월동안 유방은 한신을 통해 하북을 평정했고, 측면의 위협을 완벽하게 제거했습니다. 하북을 통해 팽월을 지원할 수 있는 간접적인 통로를 확보한 건 덤이고요. 하북이 아직 친항우성향의 세력들 손아귀에 있었으면 유방이 형양에서 작정하고 버틴다던지, 팽월을 지원한다던지 하는 일을 하기는 힘들었을겁니다.


그 점에서 항우가 저 7개월동안 뭘 했길래 움직이지 않은건지 희한합니다. 저 4~11월 사이의 기간 동안 항우는 충분히 군사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군사를 움직였다면 최소한 팽월은 제거했고, 한신의 조나라 점령은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초한전쟁의 향방도 바뀌었을 겁니다.


이런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이 7개월동안 항우가 움직이지 않은 것이 초한전쟁의 향방을 가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저 7개월간 가만히 있던 것이 항우가 해하에서 죽게 만든 셈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저 항우가 왜 7개월간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게 참 궁금합니다. 


덧글

  • 위장효과 2017/07/14 22:28 # 답글

    사기 항우본기쪽 기록은 어떠한가요? -아무래도 찾아봐야겠다-
  • 로자노프 2017/07/14 22:54 #

    그건 진작에 확인해봤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팽성전투 후에 제후들의 배반 기록이 나오고 바로 한3년 형양을 공격했다는 문구로 들어갑니다.
  • 네비아찌 2017/07/14 23:35 # 답글

    한신이 묘사한 항우의 성격상 제깐놈들이 설쳐봐야...근데 어디부터 족쳐야 하나... 하면서 머리만 굴리고 있었지 않을까요?
  • 로자노프 2017/07/15 20:38 #

    고려해볼만한 가설이긴 합니다만...
  • 하니와 2017/07/14 23:41 # 삭제 답글

    그때가 우미인이 적령기가 될 때죠. 아무 생각이 없었을 수도.
  • 로자노프 2017/07/15 20:38 #

    우미인의 나이는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기에서 우미인은 해하전투에서만 등장하거든요.
  • 하니와 2017/07/16 08:41 # 삭제

    아, 그런가요.
    시바료타로 가 로리코닉하게 묘사한게 너무 기억에 남아서 ...
  • 셰이크 2017/07/15 01:45 # 답글

    유방따위는 언제든지 요리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보다도 유방의 팽성점령 전의 여론을 생각해 새판짜기를 생각하며 인을 주조해서 이 녀석, 그 녀석 줄까말까 생각하다 다 닿아버려 다시 주조해서 줄까말까 고민하다 또 닿아버려서 다시 주조하고...
    의외로 이렇게 나름대로는 뇌 속에서 초조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지도요.
  • 로자노프 2017/07/15 20:39 #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다만 한신을 치려면 어찌됬든 형양을 신경서야하는 상황이고 팽월이 눈엣가시가 된 건 형양전투가 본격화되면서부터라...
  • 까마귀옹 2017/07/15 13:34 # 답글

    그래서인지 소설 초한지에서는 그 사이에 가칭 '형양성 전차전'이란 허구의 전투를 끼워넣더군요. 한신의 전차 부대에 휘말려서 초군이 대패하는 것은 물론이고 항우 본인도 쇠뇌에 맞아서 중상을 입었다는 이야기.
  • 로자노프 2017/07/15 20:39 #

    확실히 그런 전투가 있었다면 항우가 가만히 있던게 이해가 가긴 합니다. 개연성때문에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2017/07/17 10: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7/17 14: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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