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망국기 <5> 소용돌이치는 하남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시작은 좋았다.>

유방이 막 거병할 무렵은 아직 진승의 세력이 강했을 때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중원 곳곳에 진나라의 영향력이 남아있었다. 특히 유방이 거병한 패현이 속해있던 사천군 역시 아직 진나라 조정에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유방이 호릉, 방여 일대를 평정하자 위협을 느낀 사천군감 평이 유방의 본거지인 풍읍을 공격했다. 하지만 유방은 곧바로 반격을 가해 평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사천군감(1) 평의 군대를 격파한 유방은 아예 사천군 일대를 평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본거지인 풍읍을 지켜야했다. 유방은 여기서 조금 의외의 선택을 한다.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 아닌 옹치란 인물에게 풍읍을 맡긴 것이었다.


- "젠장. 내가 왜 유방 밑에 있어야 하는 거야!" -


옹치. 그 역시 일종의 유협, 혹은 건달에 속하는 부류였다. 하지만 패현 출신임에도 유방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되려 그는 유방도 형님으로 모셨던 왕릉과 친한 사이였다. 문제는 이 무렵 왕릉이 모종의 사정으로 남양군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것이다. 즉 유방의 패거리가 아닌 그는 끈 떨어진 연 신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옹치는 유방을 따르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유방은 안심할 수 있는 친한 사람이 아닌 옹치에게 본거지 풍읍을 지키는 일을 맡겼다. 유방이 그의 충성심을 시험해보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수비에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던가.

여튼 유방은 군대를 이끌고 설현으로 나아가 그 곳에서 사천군수 장의 군대와 격돌한다. 장의 군대는 대패했고, 장은 척현까지 도주한다. 하지만 유방의 휘하에 있던 조무상이 척현(戚縣)까지 추격을 해서 장을 잡아죽였다. 이후 유방은 항보를 거쳐 방여로 나아갔는데 방여가 위나라에 투항해버렸다. 유방은 중연(2) 벼슬에 있던 조참으로 하여금 방여(산둥성 위타이현 서남쪽)를 치게 하였다. 

방여의 배반은 곧 위나라가 유방의 세력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안 그래도 유방의 거점인 사천군, 특히 패현은 일단 초나라 땅이지만 위, 제의 영역과도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런만큼 위나라의 세력이 미치기도 쉬운 상황. 불길한 일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뒤통수>

위구의 밑에서 위나라 재상의 자리를 얻었던 주불은 이 무렵 위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풍읍이 눈에 들어왔다. 풍읍은 본래 초나라 영역이었지만 제, 위와도 가까운 곳. 가까우니만큼 위나라의 영향력이 미치기 좋았다.


- "현시간부로 풍읍은 내가 접수한다." -

주불은 바로 풍읍을 지키던 옹치에게 "풍읍은 본래 위의 도읍이었다. 지금 위 땅이 된 성이 수십여성이다. 항복하면 옹치를 후에 봉하고 풍읍을 지키게 해주겠지만 거절하면 짓밟아버리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안 그래도 유방과 불편하다면 불편한 관계였을 옹치는 옳다구나 하고 바로 위나라에 항복했다.


- "야! 이 옹치놈아!!! 여기서 배신을 때리냐!!!" -

경악한 유방은 바로 방여에서 풍읍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풍읍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옹치는 이를 성공적으로 막아내었다. 유방은 울화통이 터져버렸는지 병까지 나고 말았고 결국 철수했다. 유방은 자신들의 병력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다른 세력에 의탁, 그 세력의 병력을 빌리기로 결정한다. 



- 이쯤해서 다시 보는 반란군지도. 경구의 세력이 유방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마침 근처에 위나라에 대적할 수 있다고 평가할만한 세력이 있었다. 바로 동해군 일대를 평정한 경구의 세력이었다. 독자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던 진가, 주계석, 영군(3) 등이 진승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초나라 방계 왕족인 경구를 가왕으로 추대한 세력으로 실질적으로는 경구를 추대한 진가가 우두머리였다. 유방은 바로 진가에게 달려가 충성을 맹세하였다. 

<진현 공방전>

한편 진승이 죽자 그의 부하인 여신이 신양(안시성 타이허현)에서 거병한다. 그의 군대는 머리에 푸른 두건을 둘러서 창두군이라고 불렸다. 여신의 군대는 진나라에 투항한 후 약간의 병력과 함께 진현을 지키던 장가를 공격해 그를 죽이고 진현을 탈환했다. 하지만 남양을 평정하고, 그 곳을 공격하던 송류를 거열형에 처한 진군이 몰려와 진현을 다시 점령했다. 여신은 별 수 없이 도주하였다. 


- "날 무시하지마시라. 이거야!" -

도망치던 여신은 마침 근처에서 북상하고 있던 경포의 군대와 조우한다. 오예와 경포는 좁디좁은 구강군에만 안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경포를 사령관으로 한 군대를 북상시킨 것이었다. 여신과 경포는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하고 청파(허난성 신양시 시현)에서 진군을 격파한다. 그 뒤 이들은 진현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진의 주력인 장한군이 위나라 방면으로 이동한 덕에 가능한 성과였다. 동시에 경포의 도움이 지대하기도 했다. 

이 때 경포는 어떤 소식을 듣는다. 바로 항량이 장강을 넘어 북상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거짓말>

중원이 혼란스러울동안 항량은 강동 지역을 평정한 후 가만히 앉아서 병력을 양성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해를 넘기며 항량은 힘을 비축하고만 있었다.

1월이 되었을 무렵 강 건너 광릉에서는 진승의 잔당인 소평이 이끄는 군대가 광릉을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잔당들만으로는 광릉을 함락시킬 수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소평은 진나라 군대가 광릉으로 진격해 자신들을 칠거란 소문까지 접했다. 진나라의 대군이 몰려오면 소평이 이끄는 잔당 따윈 순식간에 뼈와 살이 분리될 것이 뻔했다. 소평은 이제 한시가 급해졌다.

이 때 소평은 바로 강 건너에서 힘만 키우고 있던 항량이 떠올랐다. 그는 대담한 선택을 하였다. 바로 진승의 명령을 사칭해 항량의 군대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진승의 사절로 위장해 회계로 간다.

회계로 간 소평은 바로 항량을 만난다. 그는 항량을 초의 상주국으로 봉한다고 진승 명의의 거짓 칙서를 내린 후 강동을 이미 평정했으니 북상하란 말도 같이 전했다. 항량은 바로 명을 받들어 8천의 병력을 이끌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 "소평의 말이 거짓이든 아니든 이건 기회다! 전군 출전하라!" -


여기서 문제는 항량이 소평의 말이 거짓인지를 알았는가이다. 진승이 이미 죽고, 그를 죽인 자가 진나라에 투항했으니 죽었다는 소문이 나긴 했겠지만 진승이 죽은 건 12월이고 항량이 이 소식을 들은 건 1월이다. 즉 시기상 얼마 안 된 상황이라 진승의 죽음을 확신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평이 너무 뜬금없이 나타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진승의 생사여부는 둘째치더라도 소평이 칙사가 아니라는 의심은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진승이 죽었다는 소식 자체를 이미 들었다는 건 기정사실일 상황에서 항량이 그 소식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찌됬든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던 항량에서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소위 진승의 어명(?)은 좋은 북상명분이었다. 더군다나 나름 반진의 맹주격인 진승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어도 자신을 초나라에서 최고의 군사 관련 지위에 있는 상주국에 봉했으니 자신의 권위도 어느정도 세워지는 것이었다. 즉 항량에게 소평이 전한 말이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상관없이 그 말 자체가 항량에겐 큰 이득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소평은 분명 자신이 한 말이 거짓말이었음이 들통이 나고도 남았을 시점까지 멀쩡했을뿐더러 나중에 나름 높은 관직까지 제수받는다. 

<몸을 일으키는 호랑이>

여튼 소평의 거짓말을 듣고 강동 8천자제를 이끌고 북상하기 시작한 항량은 근처 동양현(장쑤성 화이안시 진후현)이 진영이란 사람에게 접수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진영이 이끄는 병력이 2만여명에 달한다는 정보도 듣게 된다. 물론 2만명이래도 진영의 군대는 어중이떠중이일 공산이 크고, 반대로 항량의 8천은 그래도 몇달간 꾸준히 훈련한 나름 정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숫자상으로 2배가 넘게 차이가 나니 항량으로써도 상당한 피해는 각오해야했다. 어차피 진나라에 대항하는 목적이 서로 같기도 하니 항량으로썬 그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게 더 이득이었다. 따라서 항량은 진영을 설득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

진영. 기록에 의하면 그는 원래 동양현의 영사(4)로 하급관리였다. 하지만 진중한 성격이라 나름 명망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동양현 사람들이 현령을 죽여버린 후 냅다 그를 수령으로 추대하더니, 스스로 푸른 두건을 머리에 둘러 창두군(5)이라 칭하고, 아예 진영을 왕으로 추대하려고까지 하였다.

하지만 진영은 좀 소심한 편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문을 구했다. 현명하다면 현명하고 역시 소심하다면 소심한 그의 어머니는 집안에 귀한 사람이 없었는데 갑자기 귀해지면 상서롭지 못하니 차라리 남의 밑에 있자고 권하였다. 성공하면 제후가 되고, 실패해도 부하일 뿐이니 도망치기 쉽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진영은 어머니의 말에 승복하고 누굴 따라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 "같은 반란군이면 설득해봐야지. 암. "

그런 상황에서 항량이 사람을 보내 합류를 권했다. 진영은 옳다구나 하고 휘하의 창두군들을 설득해 항량에게 귀순했다. 진영이 귀순한 지 얼마 후 이번엔 포장군과 경포까지 합류했다. 포장군은 그 이름을 알 수 없고 성이 포씨인 것만 알려진 인물로 확실치 않지만 근처의 도적이거나, 여기저기 난립하던 반란군 중 그래도 세력이 좀 있었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건 경포다. 경포는 오예의 사위이며, 현재 오예, 여신과 연합한 상태였다. 또한 진현이 속한 진군, 구강군 일대에서 연합세력의 일원으로써 나름 세력을 행사하고 군사적 영향력은 연합세력 내에선 가장 큰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항량 밑으로 들어왔으니 진군, 구강군 일대가 항량의 세력권에 들어온 격이었다. 항량의 세력이 급격하게 커졌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세력을 가진 인물이 들어온 것인만큼 정식 부하보단 객장의 형태에 가까웠겠지만.



- 항량의 진격 당시 정세. 항량의 세력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항량과 경포의 진로도 표시되어있다.-

이렇게 급격히 세력이 불어난 항량은 그 병력이 6~7만에 이르렀다. 항량은 그 군대를 이끌고 하비에 주둔하였다. 하비 근처에는 가왕 경구가 존재했다. 형식상 진승의 신하로 상주국에 봉해진 항량으로썬 경구는 일단 명목상 진승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멋대로 왕을 칭한데다가 실권자인 진가가 진승이 보낸 부하를 살해했던만큼 경구를 역적으로 규정할만한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진승의 역적이란 건 곧 항량에겐 제거대상이라는 뜻이었다. 

항량은 바로 역적 경구를 토벌하겠다며 출전한다. 

(1) 군을 감찰하기 위해 보낸 감독관

(2) 군주의 비서 역할을 하던 관직. 조참, 주발이 초기 유방군의 중연이었다.

(3) 이 영군이란 인물은 진가와 동일인물이란 설이 있으나 사기색은에선 성이 영씨이고 군은 작위라고 보고 있다. 여기선 사기색은의 설을 따른다. 

(4) 영사란 각 군 관청 부서를 조라고 하는데 이 조에 소속된 관리를 말한다. 조사라고 하기도 한다. 

(5) 참고로 창두는 노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정황상 말그대로 푸른 두건을 머리에 두른 자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덧글

  • 위장효과 2017/07/14 08:00 #

    초한전기 볼 때 다른 배우들 보면서는 신삼국 생각만 나는데 진도명씨 나올 때마다 "본인이 세운 나라 다시 무너뜨리겠다고 뭔 개고생이야..."라는 배우드립만 떠오르더라는...^^;;;.

    항상 궁금한 게, 태사공은 도대체 저 급박하고 마구 돌아가는 전국의 상황을 어떻게 다 추적해서 기록할 수 있었던 건지 하는 겁니다. 여불위-여희 불륜및 진시황 출생의 비밀 같은 건 당대의 카더라 소문이다 라는 쪽이긴 해도 나머지 기록들 보면...ㅎㄷㄷㄷㄷ
  • 로자노프 2017/07/14 20:30 #

    뭐 초한쟁패기 관련 기록들은 분서갱유 이후이니 나름 보존이 되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마천 본인이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것도 있을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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