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 내전. 돌궐은 어떻게 호구가 되었는가.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 초기 돌궐제국의 강역 -


돌궐 제국. 552년 부민 카간이 동생 이스테미와 함께 유연을 몰아내고 알타이 산맥을 거점으로 세운 이 돌궐 제국은 급속하게 성장한다. 이 돌궐 제국은 분열되어있던 북중국을 위협하고, 중앙아시아를 호령하던 에프탈족을 멸망시켜버린 후 비잔틴제국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한다. 그 결과 570년대 경에 이르러서는 고구려에서 비잔틴 제국 사이에 존재하는 스텝지대는 사실상 돌궐이 다 차지하는 형국이 된다. 


당연히 상황이 이러니 돌궐제국은 아주 기고만장해서 떵떵거리게 됩니다. 비잔틴제국에 큰소리를 치고, 페르시아를 위협하고, 북중국에 있는 북주와 북제를 위협하면서 타스파르 카간은 "남쪽의 두 아이(북제와 북주)를 효순하게 하면 물자 걱정 할 이유가 없도다."란 말을 했다. 훗날 수 문제 양견도 북주와 북제가 돌궐에게 잘 보이려고 세금 등을 과중하게 거두어 돌궐에게 갖다바쳤다고 말할 정도였다. 


577년 북제가 북주에 의해 멸망하면서 상황이 좀 바뀌나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돌궐이 북제의 부흥운동을 지원하자 북주가 장손성, 하약의 등으로 하여금 천금공주를 호송해 타스파르 카간에게 시집보내고, 뇌물을 바치며 돌궐을 달래야 했기 때문이다. 뭐 그 대가로 북주는 북제의 황제를 자칭하던 고소의를 넘겨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다 581년 북주가 멸망하고 수나라가 들어선다. 돌궐은 북제의 영주자사였던 고보녕을 앞세워 한바탕 수나라를 휩쓴다. 수 문제는 당연히 돌궐 때문에 골머리를 썩인다.


그런데 같은 해 타스파르 카간이 사망한다. 그는 형이었던 무칸 카간의 아들 탈로핀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우라고 유언을 남기는데 이를 두고 분란이 생긴다. 탈로핀의 모친이 천하다는 이유로 2대 카간의 아들이었던 이식 카간의 아들 샤폴루 등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샤폴루는 타스파르의 아들 암로가 카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탈로핀 파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기에 결국 일종의 타협안으로 애당초 후계서열이 높았던 샤폴루가 카간이 되었다. 그는 이쉬바라 카간이라고 자신을 지칭했다. 



이쉬바라 카간은 자신이 대카간이 된 후 불만을 품은 아시나 씨족의 유력자들을 달래야 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유력 친척들을 지방을 통치하는 소카간으로 임명했다. 그는 암로를 서열 2위이지만 후계자 자리라고는 할 수 없는 이킨지 카간에 앉히고, 동몽골을 담당하며 후계자 자리인 퇼리스 카간의 자리에는 자신의 동생 카라초르, 탈로핀은 알타이 산맥을 담당하게 하고 아파 카간에 봉했다. 이 과정에서 돌궐 서부를 담당하던 이스테미의 아들 타르두는 완벽하게 소외되었다. 거기다 이쉬바라 카간은 자신의 동생을 후계자 자리에 앉혀놓고는 동생을 불신하고 경계했다.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보던 한 사내가 있었다. 바로 장손성이란 사내였다. 그는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잡았다는 고사가 전해질 정도로 명궁이었지만 동시에 책략에도 뛰어났다. 천금공주를 호송하기 위해 돌궐로 갔다가 1년간 돌궐에 머무르고 돌아온 그는 돌궐의 내부 사정에 밝았다. 그는 중국으로 돌아온 후 양견에게 상소를 올렸다.


"현재 중원 지방은 안정을 찾았지만 북방의 돌궐이 소동을 일으키려 합니다. 하지만 대규모 출병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갈수록 소란을 더 피울 것입니다. 따라서 치밀한 계획 아래 적절하게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돌궐에 있을 때 파악한 상황에 따르면 현재 돌궐은 몇몇 칸들이 사방으로 나뉘어 강력한 군대를 통솔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내부적으로는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단합을 과시합니다. 따라서 힘으로 제압하긴 힘들어도 서로 갈라서게 하는 것은 쉬운 편입니다. 그 중 사발략이 지위가 가장 높고 세력도 가장 큽니다. 그 삼촌인 칸 달두(達頭)는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위가 높지 않아 표면적으로는 사발략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모순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숙부의 불만을 부추기면 틀림없이 내분이 일어날 것입니다.

게다가 사발략의 동생 처라후(카라초르)도 딴 마음이 있습니다. 세력은 약하지만 인심을 많이 얻고 있는 편이어서 사발략이 늘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존재입니다. 사발략의 형 칸 아파(阿波)도 세력은 보잘것없지만 쥐새끼처럼 누가 되었든 강한 쪽에 달라붙을 위인입니다.


이런 상황에 근거하여 저들에게 '원교근공'과 '이강합약'의 모략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 모략에 따라 사발략의 숙부인 달두와 관계를 맺어 아파와 힘을 합치게 함으로써 사발략의 병력을 서쪽으로 분산시켜야 합니다. 동시에 사람을 보내 처라후를 비롯하여 거란 등 여러 부락과도 연계함으로써 사발략의 병력을 동쪽으로 투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발략은 양쪽에서 적을 맞게 되는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고, 우리는 기회를 봐서 공격하면 단번에 상대를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 상소에서 돌궐의 내부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돌궐 내부가 단합된 듯 하나 속은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라고 하며,'강해지면 흩어지게 하고 약하면 합하게 한다'는 이강합약의 책략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돌궐을 내분으로 약화시킨 후 돌궐을 제압하자는 안을 건의한다. 수 문제는 당연히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실행한다. 수나라는 바로 타르두, 카라초르와 결탁하기 시작했다. 특히 카라초르는 장손성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장손성이 직접 가서 결탁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되자 이쉬바라 카간은 다른 소카간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단 아직까지는 돌궐의 단합은 공고한 듯 했다. 이듬해인 582년 이쉬바라가 수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다른 소카간들도 모두 합류했기 때문이다. 40만에 달하는 돌궐 군대는 고보녕을 앞세우고 수나라 국경지대를 싹쓸어버리며 노략질을 자행했다. 


그러나 이 원정이 돌궐 내부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됬다. 갑자기 사산조 페르시아가 돌궐을 습격하자 타르두는 바로 자신의 병력을 철수시켜버렸다. 거기다 장손성이 철륵 등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자 이쉬바라 카간은 철수해야했다. 그런데 정작 몽골 초원으로 돌아와보니 장손성이 퍼뜨렸던 거짓 소문은 사실이 되어있었다.



투르크계 부족들이 진짜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기다 돌궐은 비슷한 시기 벌어진 고구려나 키르기스와의 충돌에서도 대패하고 말았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초원에 자연재해가 들이닥치고 기근이 겹치며 돌궐 내부는 흔들거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쉬바라의 통치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부의 혼란을 해결할 방법은 좋은 방법은 자고로 외부와의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이쉬바라는 이 말에 충실하기로 하고 583년 수나라 침공을 재개한다. 하지만 타르두가 병력 차출을 거부하며 침공은 흐지부지 끝난다. 아니, 오히려 수나라 군대가 같은 해 4월 대대적인 역공을 개시한다. 수나라 군대는 곳곳에서 돌궐군을 대파했다. 고보녕은 거란으로 도망치다가 살해되었다. 수나라의 완벽한 승리였다!


더군다나 이 수나라 군대에 끼어있던 장손성은 비밀리에 탈로핀, 즉 아파 카간과 내통한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이쉬바라 카간은 아파를 공격, 그의 모친을 죽여버리고, 부락을 박살내버린다. 아파 카간은 타르두에게로 도망치고, 타르두는 그에게 병력을 지원해 이쉬바라와 싸우게 한다. 그러자 이쉬바라 카간의 사촌 동생이 아파 카간에게 투항하는 등 아파 카간의 세력이 커졌다. 결국 아파 카간은 자립해 서돌궐을 세워버린다. 돌궐이 둘로 분열된 것이다. 



-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수나라의 심정 -


이렇게 갈라진 두 세력은 서로 싸우며 수나라에 지원을 요청한다. 특히 아파와 타르두 연합에 밀리기 시작한 이쉬바라 카간은 꽤나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는 수 문제를 아버지, 장인 어른 등에 지칭하며 수나라에 원조 요청을 하고 귀부를 요청한다. 수 문제는 이제는 이쉬바라의 부인이 된 천금공주를 대의공주로 고쳐봉하고 자신의 양녀로 삼는 등 이쉬바라의 귀부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쉬바라는 아파와 타르두에게 대패, 몽골 초원에서 쫓겨나 수나라 국경지대로 옮겨야 했다. 이제 아파카간이 몽골초원을 차지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니 수나라는 아파 카간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마침 아파 카간과 타르두가 서로 반목하기 시작했다. 이 틈에 이쉬바라의 뒤를 이어 카간이 된 동생 카라초르는 바가 카간을 칭한 후 수나라의 지원을 받아 아파 카간을 생포, 낙양으로 끌고 가 죽게 한 후 몽골 초원을 차지한다. 하지만 카라초르는 타르두와 싸우다 전사하고 이쉬바라의 아들이 투란 카간으로 즉위한다. 투란 카간은 수나라에 공물을 바치며 투르판 등 타르두의 세력권을 공격한다. 한창 사산조 페르시아의 공세에 시달리던 타르두는 파미르 고원 동쪽의 땅을 전부 투란 카간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투란 카간은 어느 정도 힘이 강해지자 이제 수나라에 반항하는 기미를 보였다. 수나라도 투란 카간의 세력이 너무 커졌다고 판단, 견제하기 시작한다. 마침 수나라에서 일어난 반란 사건에 대의공주, 그리고 돌궐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됬다. 수나라는 일단 대의공주부터 처리하기로 하고는 투란을 구슬리면서, 바가 카간의 아들 에르켄이 수나라와의 혼사를 요청하자 대의공주를 죽이면 혼사를 들어주겠다고 답한다. 결국 에르켄의 이간질로 대의공주는 죽고, 수나라는 종실 여인을 안의공주로 책봉하고 에르켄에게 시집보낸다.


그러다 599년 경 에르켄은 투란 카간을 몰아내기로 하고 수나라에 지원을 요청한다. 수나라는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만 이걸 눈치챈 투란카간이 적이었던 타르두와 연합해 에르켄을 공격한다. 에르켄은 대패하여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에르켄은 초기에는 타르두에게 의탁하려고 했지만 마침 같이 있던 장손성이 이걸 알고 수나라 국경 요새에서 거짓으로 봉화가 피어오르게 한 후 추격병이 가까이 있는 것으로 속여 수나라로 망명하게 했다. 수 문제는 에르켄을 네이멍구 자치구에 있던 대리성을 세력 거점으로 삼게 해주고계민 카간으로 책봉하니 그가 곧 야미 카간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이다. 



이 무렵 투란 카간이 부하에게 살해된다. 그러자 타르두가 빌게 카간으로써 돌궐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타르두는 에르켄을 위험하다 여겨 대대적인 공세를 가한다. 하지만 그놈의 장손성이 물에 독을 풀어버리는 바람에 병사들 상당수가 중독됬고, 타르두는 대패한다. 하지만 601년 안의공주가 죽고, 수 문제가 다른 종실 여인을 의성공주로 책봉해 1만명의 병사의 호송을 받으며 야미 카간에게 시집가게 하자 타르두는 이 군대 중 절반을 몰살시키고, 야미 카간이 다시 오르도스로 도망치게 된다. 


602년경 수나라는 몇 차례 타르두에게 함락됬던 대리성을 보수해 정양성으로 고치고 금하성을 새로 쌓아 이 두 개 성을 야미 카간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야미 카간은 타르두 휘하의 투르크계 부족들에게 반란을 선동한다. 결국 타르두는 세력기반을 모두 잃고 603년 경 토욕혼으로 도주한 뒤 기록에서 사라져버린다.



- 모든 것이 종결된 후 장손성의 표정 -


이후 서돌궐은 아파 카간의 손자 헤샤나 카간이 차지하고 동돌궐은 야미 카간에게 귀속된다. 아직 다른 소카간들이 좀 존재했지만 내전은 일단 이렇게 일단락됬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니 돌궐은 분열됬고, 그 힘이 약화됬으며, 내전의 진행 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장손성을 대표로 한 수나라가 굉장히 깊숙하게 개입했다. 돌궐, 특히 동돌궐은 수나라에 귀속됬다. 그래서인지 야미 카간은 후손들이 퀼테긴 비문에서 비판할 정도로 지나칠 정도로 수나라에게 비굴하게 굴었다. 이렇게 스텝을 호령했던 돌궐은 1세대만에 둘로 쪼개지고 과거 자신들이 호구로 알았던 중국에게 역으로 호구취급 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돌궐이 호구 신세가 된 것을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사례는...



(아버지 그림이 없어서 아들인 장손무기 사진으로 대체)


(돌궐을 호구로 만든 사나이)장손성: 어이쿠. 이 풀은 좋은 향기가 나나 봅니다.




(역시 적당한 이미지가 없어서 아무거나 땜방)


야미 카간: 냄새 같은 거 안 나는데요?



장손성: 아니! 그래서야 쓰나! 이보시오! 천자께서 오실 때는 풀들을 전부 뽑아야 되는 법이오! 단 향기나는 풀만은 그냥 놔두지. 그래서 난 저게 좋은 향기가 나는 풀인 줄 알았수다!



야미 카간: 어...얼른 시정하겠습니다! 당장 제초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카간이 직접 제초작업을 한다.)





추신




수 양제: 동돌궐 카간 제초하는 거 봤지? 너희도 얌전히 꿇어라. 천하의 돌궐 카간도 나한테 잘 보이려고 제초하는 판인데, 너도 꿇지?



영양왕: 싫은데~ 딴 데 가서 알아보시구려~



수 양제: 뭐야? 요하가 깊다 한들 장강보다 깊고 넓겠냐! 오냐! 고구려! 너희들을 확실하게 짓밟아주마!



영양왕: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요동성 철벽 방어에 내호아 격파!



수 양제: 어... 잠깐만... 이게 아닌데... 저 그냥 나갈께요




을지문덕: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그렇게 수나라는 모든 것을 고구려에 꼬라박고 돌궐에 대한 통제력도 상실한 채 36년만에 멸망한다.




 

덧글

  • 진보만세 2016/05/22 22:16 #

    돌궐로서는 분열이 뼈아프군요..

    수양제의 삽질과 돌궐의 교훈이 결과적으로 당고종 때, 고구려 제압의 밑거름이
    되었을 수 있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잘 읽었습니다..
  • 로자노프 2016/05/22 22:38 #

    아무래도 분열이 너무 컸죠.
  • taxonomy 2016/05/22 22:24 #

    이글루스 스킨이랑 제 크롬 설정이랑 안맞는게 있는지 게시물 오른쪽 끝부분이 짤려서 나오네요 ㅠㅠ
  • 로자노프 2016/05/22 22:38 #

    이런.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나인테일 2016/05/22 22:39 #

    저도 오른쪽 끝 잘려서 읽기도구 같은거 써서 읽어야 되는군요. 사파리 유저입니다.
  • 로자노프 2016/05/22 22:41 #

    수정했습니다. 사진을 너무 크게 해서 이런 일이 생겼던 듯 합니다.
  • 까마귀옹 2016/05/23 08:50 #

    '그러나 이 장면이 역사서의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모든 힘을 쏟아낸 수나라는 이어지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
  • 로자노프 2016/05/23 15:38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16/05/23 16:30 # 삭제

    내용상 천금공주는 수계제때문에 카간들에게 대물릴된건가요?
    돌궐 안습..역시 분열크리는 치명타
    근데 돌궐은 구조적 약점이라도? 왜 이리 분열이 쉽거 일어났나요?
    자신만만하던 수나라는 고구려원정으로 국가멸망테크를 타고
    생각해보니 대제국들이 생겼다가 망하는 저 시기는 격변기네요.
  • 로자노프 2016/05/23 23:03 #

    예. 돌궐 풍습에 따라 대물림됬다고 하네요.
  • ㅏㅏ 2016/05/23 18:09 # 삭제

    저기 질문할게 있어요.
    초원의 스텝지대에서 민족성이란것이 매우 희미하고 경계가 불분명했겠지만 그래도 후대의 투르크,몽골의 조상을 따지자면, 흉노발흥이전-흉노-선비,유연-돌궐-위구르로 이어지는 초원패권 변경의 기나긴 시기에서 꾸준하게 몽골계가 동몽골 스텝지역의 다수를 차지했나요? 흉노로 인해서 동호멸망-스텝지대에서 물러나 대흥안령산맥으로 피신-후에 흉노멸망후 선비,유연으로 다시 진출-돌궐의 발흥으로 다시 대흥안령산맥 너머로 쫒겨남-요나라로 인해서 다시 몽골계가 몽골스텝지역 장악 재이주 루트인가요 아님 일부가 동쪽으로 쫒겨나긴 했지만 여전히 훈족-돌궐-위구르 시절에서도 동몰골 스텝지역의 인구 대다수가 몽골계였나요?
  • 로자노프 2016/05/23 23:03 #

    돌궐제국 시기라면 투르크계가 다수고 몽골제국 등장 이전까진 투르크계가 다수였던걸로 압니다.
  • ㅏㅏ 2016/05/24 10:21 # 삭제

    정확히 "동"몽골스텝이요. 혹시 몽골스텝 전체로 잘못 보았을까 씁니다.
  • 요원009 2016/05/23 19:13 #

    그놈의 장손성ㅋㅋ

    근데 참 대단한 사람이네요

  • 로자노프 2016/05/23 23:03 #

    순간적으로 글 쓰다 말고 돌궐에 감정이입이 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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