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역사 이야기 34. 폴타바 전투 - 복수전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폴란드, 작센 탈락>

 

 1700년 나르바의 패배 이후 표트르는 절치부심했다. 마침 칼 12세가 이끄는 군대가 폴란드쪽으로 군대를 돌리자 그 틈을 타 그는 잉그리아를 점령하고, 에스토니아 및 리보니아를 공격했다. 하지만 스웨덴 군대는 이 공격을 무시하고(1) 폴란드를 공격했다.


Stanisław Leszczyński par Girardet.PNG

 

 - "무능한 독일인 국왕은 꺼져라! 내가 왕이다!" -

 

 그 결과 1704년 폴란드에서 내전이 발발한다. 1702년 클리수프 전투에서 12000명의 스웨덴군이 2배나 되는 폴란드-작센 연합군을 대패시키자 아우구스트 2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귀족들이 바르샤바 연합을 결성한 후 1704년에 스타니슬라프 레슈친스키를 폴란드 왕으로 옹립한 것이다. 그러자 아우구스트 2세도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들을 끌어모아 산도미에시 연합을 결성한다. 


 당장의 상황만 두고보면 산도미에시 연합이 훨씬 유리했다. 산도미에시 연합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군대 75%가 가담해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나르바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지지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바르샤바 연합은 바로 스웨덴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미 폴란드 깊숙히 진격해있던 스웨덴은 바로 바르샤바 연합을 지원한다. 1705년 7월 31일 스웨덴군 2천명은 바르샤바 외곽에서 산도미에시 연합 및 작센 선제후국의 군대와 충돌한다. 스웨덴군은 2천명에 불과했지만 4배 가까이 되는 연합군을 상대로 일제 사격을 퍼부어 그들을 제압한다. 


 

 

Regementets kalk by Gustaf Cederström

 

- 프라우슈타트 전투 직전 승리를 기원하고 있는 스웨덴 병사들 -

 

 

 그렇게 바르샤바를 장악한 스웨덴군대는 1706년 2월 폴란드 서부 프라우슈타트에서 러시아-산도미에시-작센 연합군과 격돌한다. 스웨덴군대는 꽤나 불리했다. 그들은 대포는 하나도 없었고(2) 숫적으로도 열세였다. 하지만 스웨덴 군대는 연합군의 돌격을 막아낸 뒤 바로 보병대가 한 차례의 일제 사격 후 검을 들고 돌격하면서 연합군을 포위, 대패시켰다. 그러고는 베스트팔렌조약 당시 슐레지엔 신교도 문제를 위해 신성로마제국 영토에 군대를 진입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있음을 근거로 들어 작센으로 쳐들어갔다. 그러고는 아우구스트 2세에게 알트란슈타트 조약을 강요했다. 이 조약의 내용은 아우구스트가 폴란드의 왕위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3)

 

말버러 공작의 초상화.아드리안 반 데르 베르프의 유화.


 - "스웨덴 군대가 쳐들어온다면 우리에게는 답이 없다. 그 상황은 막아야 한다!" -

 

 

 이러자 유럽의 정세는 혼돈 속에 빠져들었다. 당시 서유럽은 스페인왕위계승 전쟁 때문에 오스트리아-영국-네덜란드 연합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었다. 이 상황에서 오스트리아 영토 근처에서 강력한 스웨덴 군이 알짱거리는 상황이 벌어지자 반프랑스 연합은 아연실색한다. 이들은 스웨덴 군대가 갑자기 오스트리아를 치면 자신들은 끝장이라는 공포감에 빠져든다. 실제로 말보로 공작은 스웨덴 군대가 헝가리(4)에 진입하면 오스트리아는 끝장날거라는 말을 했다. 반 프랑스 연합은 칼 12세에게 제발 자신들이 아닌 러시아를 공격해달라며 필사의 외교전을 전개했다. 이 외교전은 효과를 보았다. 칼 12세는 러시아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군대를 동진시킨 것이다! 


<가자 러시아로!>


잠깐 시계바늘을 과거로 돌려 1706년 1월 경 스웨덴 군대는 당시 러시아 군이 주둔했던 그로드노를 포위했다. 러시아군은 물자 부족으로 고통받다 8천명이 죽었다. 결국 러시아군대는 후퇴했다. 이들은 다행히도 칼 12세가 후퇴방향을 동쪽이라고 잘못 판단한 덕에 남서쪽으로 무사히 후퇴했다. 러시아 군대는 칼 12세가 작센 방향으로 이동한 틈에 그로드노를 다시 장악했다.


 

 

 

 - 1709년 이전까지 대북방전쟁 상황도 -

 

그러다 1708년 칼 12세는 4만명에 가까운 군대를 러시아로 진격시키기 시작한다. 먼저 스웨덴군대는 30명의 병력으로 야습을 걸어 러시아군대를 몰아내고 그로드노를 점령한다. 이렇게 되자 러시아군은 당연히 칼 12세가 일반적인 길인 그로드노-민스크-스몰렌스크를 거쳐 모스크바로 진격할 줄 알고 그 쪽의 방어를 강화한다. 그럴만한것이 그 길로 가면 강들을 건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 12세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드루트강과 베레지나강을 도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708년 7월 홀로프친에서 보리스 셰르멘테프가 이끄는 러시아군대가 칼 12세가 이끄는 스웨덴 군대와 격돌한다. 당시 스웨덴군대는 부교 건설에 실패해 곤란을 겪었지만 강둑에 포격을 가하며 도강에 성공, 러시아군대를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 승리한다. 다만 이 전투에서 러시아 군대는 전력을 상당부분 유지한 채 후퇴한다. 하여튼 스웨덴 군대는 이 전투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러시아 국경을 지나(5) 러시아 영토로 진격하기 시작한다. 초기 스웨덴 군대는 파죽지세로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다. 러시아 군대는 자국 영토에서 청야작전을 벌였고, 이로 인해 칼 12세의 군대는 보급에 곤란을 겪었다. 그래서 칼 12세는 6월에 레벤하우트 인솔하에 리가를 출발한 보급대와의 합류해야 했다. 다만 합류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늦어지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안 표트르 대제는 칼미크, 코사크 병력들과 함께 9월 28일(그레고리우스력으로는 10월 9일) 레벤하우트가 이끄는 보급대를 레스나야에서 공격한다.

 

 

 - "예..옛날의 그 오합지졸 러시아 놈들이 아니다!" -


 레벤하우트의 군대는 러시아군을 얕잡아보고 결전을 벌이기로 하지만 정작 전투가 벌어지자 때이른 눈보라가 그들을 덮쳤다. 거기에 표트르가 직접 전장에 나타나자 러시아군의 주력과 충돌해버렸다고 생각한 그는 보급품을 버리고 도망치기로 결정한다. 그는 일단 사람이라도 살릴 생각으로 보급품을 불태우고 떠났다. 상당한 양의 도강장비와 식량이 불타버렸다. 거기다 그러는 과정에서 스웨덴 군대 내에 혼란이 일어났고, 스웨덴 군대 내에서는 물건을 약탈하거나 탈영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만명이 넘던 병력 중 3천명이 하루만에 증발해버렸다. 결국 레벤하우트는 6천명의 병력만을 이끌고 칼 12세에게 합류한다. 칼 12세는 물자가 증발해버려 엄청난 곤란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서인지 훗날 표트르는 이 전투를 폴타바 전투의 모태라고 했을 정도로 레스나야 전투의 여파는 큰 셈이었다.


설상가상이라고 1708년의 겨울은 너무나 가혹했다. 레스나야에서 있었던 때이른 눈보라는 그 전조였던 것이다. 그 해 겨울 혹한으로 스웨덴군은 벌벌 떨면서 병력의 1/5를 잃었다. 결국 모스크바 진격은 무리인 셈이 되어버렸다.


<폴타바 전투>

 

Portret Mazepa.jpg


 - "정교회를 위협하는 차르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스웨덴하고는 얼마든지 손잡을 수 있다!" -

 

이 무렵 러시아 내에서는 반표트르 감정이 상당히 강했다. 그의 급진적인 서구화정책 때문에 그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자포로제 코사크의 헤트만 이반 마제파도 차르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표트르 떄문에 정교회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 이반 마제파는(놀라운 건 아닌게 실제로 표트르를 적그리스도라고 여긴 자도 있던 판이었다.) 병력과 물자 부족으로 고통을 겪던 칼 12세에게 자신이 그를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는 상당한 규모의 병력(6)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칼 12세에게 우크라이나로 진격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칼 12세가 우크라이나로 진격해보니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반 마제파 편에 선 코사크는 고삭 3천명이었다. 나머지 자포로제 코사크들은 이반 마제파의 명령을 거부하고는 그를 탄핵, 새로운 헤트만을 선출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표트르는 숙영지에 있던 스웨덴 군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칼 12세는 계속 군대를 움직여 1709년 이반 마제파의 군대와 함께 폴타바를 포위한다. 그러자 표트르도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폴타바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한다. 나르바의 패전 이후 절치부심해 양성한 신식 군대를 잔뜩 데리고 말이다. 한편 폴타바를 포위하던 와중에 칼 12세는 러시아 수비병의 저격으로 다리에 부상을 입어 직접 지휘를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그의 부하 칼 구스타브 롄셀브가 지휘를 맡게 된다. 이제 폴타바에는 2만 4천(실제 움직일 수 있는 병력 17,000)의 스웨덴군대와 4만 9천명의 러시아 군대가 충돌하게 된다. 

 

 

 


- 폴타바 전투 당시 양측 배치를 보여주는 지도 -

 

그레고리우스력으로 7월 8일 전투가 시작되었다. 스웨덴 군대는 늦저녁에 러시아군 보루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기습 효과 덕인지 최전방 보루들은 곧 스웨덴 군 손아귀에 들어간다. 하지만 멘시코프가 이끄는 러시아군대는 질서있게 후방 진지로 후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다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러시아군대가 반격을 개시해 일부 보루들을 탈환한다. 레벤하우트가 러시아군 중앙을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더군다나 칼 12세가 부상으로 지휘를 못하면서 스웨덴 군대의 공격을 유기적이지 못하고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이미 작정하고 단단히 준비한 표트르의 군대를 스웨덴 군대가 당해낼 수 없었다. 특히 롄셀브의 돌격이 천명 이상의 희생자만 내면서 실패하자 스웨덴 군의 전열이 붕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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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르바의 복수다!" -


 

이제 주도권은 완벽하게 러시아 군대로 넘어간다. 러시아 군대는 좌우익에 배치한 기병들을 보내 협공을 개시한다. 스웨덴 군 우익이 붕괴되었고, 곧 좌익도 붕괴된다. 스웨덴 군대는 패주하고 러시아 군대는 그들을 추격한다. 패배를 깨달은 칼 12세는 후퇴 명령을 내리고 이반 마제파와 함께 후퇴한다. 스웨덴 군대는 남쪽으로 무질서하게 도주한다.

 


 - "분...분하다.. 내가 패하다니..." "일단 도망쳐서 훗날을 도모합시다..." -

 

칼 12세는 마제파 및 1500명의 근위대 병력들과 함께 페레볼치나에서 드네프르 강을 넘어 오스만투르크 영토인 벤데라로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이반 마제파는 벤데라에 도착한 후 얼마 안 되서 죽어버렸지만... 다만 후퇴 과정에서 배가 부족해 대부분의 병력은 도하를 하지 못했다. 이 병력들은 레벤하우트가 지휘하고 있었는데, 곧 멘시코프가 이끄는 러시아 군대가 페레볼치나에 들이닥친다. 이미 전의를 잃은 병사들을 데리고 러시아 군대와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한 레벤하우트는 러시아 군대에 투항한다. 한 때 강력했던 스웨덴 군대가 이렇게 소멸해버린 것이다.(7)




 

 - 대북방전쟁 당시 참가국들이 누구 편에 서서 싸웠는가를 보여주는 도표. 폴타바 전투의 패배 소식을 들은 덴마크와 작센, 폴란드가 확실하게 러시아 편에 서버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이 전투의 여파는 컸다. 당장 작센 선제후 아우구스트 2세가 스타니슬라프를 몰아내고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위를 되찾는다. 그는 바로 스웨덴에 대한 전쟁을 재개한다고 선언했다. 거기에 덴마크도 전쟁을 재개한다고 선언한다. 이제 스웨덴에 대한 대대적인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1) 실제로 이 당시의 리보니아 공격은 일종의 약탈전, 병력 분산을 위한 목적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스웨덴 수비대가 이들을 격퇴한 전투도 상당히 되는 편이다. 


(2) 반대로 연합군은 32문의 대포가 있었다. 


(3) 한편 이렇게 되자 반러시아 전쟁 계획을 짰던 망명자 파트쿨은 스웨덴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처형된다.


(4) 반 오스트리아 반란이 발생했던 상태였다.


(5) 홀로프친이나 그로드노는 그 당시 아직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영토였지만 전쟁 와중에 러시아군이 일시적으로 장악했던 상태였다.


(6) 이야기가 다 다른데 무려 10만의 병력을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7) 우여곡절끝에 5천명 정도가 스웨덴으로 귀환했지만 레벤하우트는 1719년 모스크바에서 죽고 이 때 잡힌 만명이 넘은 병사들은 대부분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그 중 일부는 준가르족에 잡혀가기도 한다.


덧글

  • 까마귀옹 2015/08/16 09:18 #

    나무 위키에서 일명 '차르 돌격'의 예시로 나오는 그 전투이군요. 스웨덴 군의 공격에 밀리자 "이렇게 된 이상 내가 간다!"라며 표트르가 직접 말타고 돌격해서 러시아군이 반격에 성공했다고 묘사. 뭐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 로자노프 2015/08/16 10:29 #

    폴타바라면 차르가 실제로 돌격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지휘했다면 모를까..
  • 2015/08/16 09:4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8/16 10: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8/17 17:3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8/17 20: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비틀매니아 2015/09/28 16:14 #

    정말로 스웨덴 대군이 허무하게 무너졌네요 ㄷㄷㄷㄷ 카를 12세를 따라 나르바-폴란드-작센-러시아-폴타바를 거친 병사들중 살아남아 고향에 돌아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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