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 조선의 대 중국 외교와 관련한 짧은 이야기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원래는 쓸 계획도 없었던 글이지만 어제쯤에 뉴비밸에 올라온 모 글을 보고 개탄스러워서 언급을 안 할 수가 없군요.

일단 먼저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저런 식으로 대접하는게 아주 특별한 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웬만한 나라들도 중국의 사신을 맞이할 때 엥간하면 다 저렇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중국 천자에게 서신을 보낼 때도 공손하게 예를 갖춰서 쓴 경우도 많습니다. 당장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하며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공포에 떨게 만든 정복자 티무르도 몇몇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주원장에게 '천자의 덕이 지극하고 위엄이 넘쳐서 사방 만국이 복속하였고, 그 광명이 세상을 비추는 잔과 같나이다.'라는 아부성 편지를 보낸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그 글에서 찍힌 스샷을 보니 해당 기사는 1419년. 저 시기가 언제냐면 명나라 황제는 정복욕이 넘쳐나는 영락제가 즉위해서 군사활동 마구 벌일 때고, 실제로 베트남은 이 시기에 영락제에 의해 점령됬습니다. 이 상황에서 함부로 개기면? 안 그래도 조선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시당초 국경지대의 지형이 엄청나게 험준한 것도 아니고, 지척이 정치적 중심지인 베이징 일대인데 이러면 알아서 기어야죠. 일본이 중국에 뻣대고 다닌 건 뭐냐고 할 수 있겠는데, 일본은 중국과 바다로 떨어져있습니다. 한국처럼 딱 붙어있는 형국이 아니다 이거죠. 그럼 어느정도는 기어야죠.

그리고 그 와중에도 중국 행동이 좀 아닌 것 같다 싶으면 은근슬쩍 개기기도 했습니다. 정난의 변 무렵 중국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실패한 자들이 대거 조선으로 망명한 사건이 있었는데, 영락제는 즉위 직후에 이들의 송환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조서를 받을 때 대놓고 마음에 안 든다고 조서를 받아야 할 때 할 예절도 제대로 안 하고, 복장도 제대로 안 갖춰입었습니다. 이 상황을 바로 눈 앞에서 본 중국 사신은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냈지만, 이게 외교 문제까지 비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토목보의 변 무렵에 원병을 요청했을 때도 조선은 차일피일 미루며 무시했고, 세조 때도 여진족과 조선의 분쟁을 중재할 사신이 왔을 때 잘 대접하면서도 사신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사신들이 투덜대며 돌아가는 틈을 타 여진족들을 처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뒷담화 성격이 강하지만 베트남이 독립했을 때 중국을 신나게 욕하고, 영락제가 죽을 때 상당수 비빈들이 순장당했다는 게 알려지자, 대놓고 비판한 게 조선입니다.

그리고 조공 물품이라... 일단 금과 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인 적이 있는 건 맞습니다. 다만 문제는 애시당초 조선 자체가 금과 은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즉 적극적으로 개발하려고 한다고 해도 당시의 기술로 채굴할 수 있는 양으로는 자체적으로 통화체계 구축하고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지금의 시마네현에서 초대형 은광(이거 하나로 16세기 당시 세계 은 채굴량의 30%를 달성했다는 사기적인 수준이었습니다)이 터져서 가능했습니다만. 

조공 물품은 뭐랄까. 일단 중국에서 태조 이성계 때 제발 3년에 한번씩만 와달라고 하고, 조선에서는 우리 마음이 있고 거리도 가까운데 3년 에 한 번은 무슨, 1년에 3번 간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1년에 3번 갔고. 중국에서 대놓고 3년에 1번만 오라고 한 이유가 뭘까요? 사은품으로 조선쪽에서 받아가는 양이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조공을 바치면 그 답례품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왔습니다. 그 글 덧글들 보니 책 따위 그러는데 당시 책이면 꽤나 비싼 물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책만 받은 것도 아니고 비단 같은 것도 왕창 받아왔고요. 아. 책 이야기 해서 말인데 조선에서는 아예 대놓고 무슨 무슨 책 사신으로 갔다 오면서 가지고 오라고 지시도 했고, 고려시대때도 고려 사신들이 책 달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소동파가 고려 놈들에게 책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그 당시 중국은 기본적으로 책봉을 받아야 자기들과 무역을 할 수 있다는 기조였습니다.(일례로 1608년 러시아가 중국에 무역 목적으로 처음 사신을 보냈는데, 그 때 중국의 답은 짐에게 조공을 바쳐라였습니다.) 실제로 여진족이고, 일본이고, 중국과 무역하려는 나라들 모두 책봉을 받고, 무역하려고 했습니다. 일본은 아예 무로마치 바쿠후만이 책봉 받고 무역할 수 있게 조치를 해놨는데 바쿠후가 맛이 가는 틈에 오우치 가문 등 몇몇 가문들이 바쿠후 사칭하며 중국과 조공무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진족도 조공무역을 하려고 안달이 났고요. 당장 오이라트도 조공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사기도 엄청 쳤습니다.(참고로 조선도 비슷한 종류의 사기를 명나라 상대로 친 적이 있습니다.) 이 사기 치는 문제가 토목보의 변으로 연결됬고요. 아. 서역쪽은 나중으로 가면 갈수록 가관이었습니다. 16세기쯤 되면 사마르칸트에서 왔다는 왕(혹은 그의 사신)이 53명이나 되었다가, 몇 년 후에는 150명으로 폭증하는 괴기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연히 조공물품이랍시고 조금 바치고, 왕창 뜯어내려고 수작부리는 거였습니다. 근데 관대한 명나라는 욕을 왕창 하면서도 줄 건 다 줍니다. 이러니 다들 조공무역 하려고 난리가 날 수 밖에요.

덧글

  • 무명병사 2015/02/13 16:16 #

    그냥 '우리가 중국한테 물건을 바쳤다니 부들부들'해서 그렇게 좋아하는 '속사정'은 안 알아보니까 조공이라는 말의 'ㅈ'자만 들어도 까무라치는데 그 실상은 말씀하신 대로 "그래 너 짱먹어라"하고 받을 거 다 받아냈죠. 조선 부자들 중에서 역관들이 괜히 많았던 게 아니라니까요. 고려 말기만 보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겠지만(...).
  • 로자노프 2015/02/13 16:52 #

    솔직히 말하면 그 글 쓴 사람은 그런 거 무시합니다. 설령 알더라도 말이죠.
  • 무명병사 2015/02/13 16:58 #

    뭐 그 사람(으로 추정되는)은 자기하고 같은 생각끼리 잘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조선 = 못난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딱 박혀있으니 뭘 말해도 들을 리가 없겠죠.

    그리고 전 "저것들이 앞에서 추켜올리고 등쳐먹는데 이거 문제다"라는 말이 조선시대(명~청)에 나온 말인 줄 알았는데 그 역사가 오래됐군요? 소동파가 까고 있었다니...
  • 로자노프 2015/02/13 17:00 #

    고려시대 때 고려사신들이 북송 상대로는 끝내주게 했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거의 대놓고 노골적으로...
  • 解明 2015/02/13 22:54 #

    로자노프님이 잘 설명하셨다시피 소식은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고려를 썩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정작 고려인들은 소식을 참 좋아했습니다. 고려의 대표 귀족 김부식의 이름은 소식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고요. 소식은 저승에서 도대체 쟤넨 뭐지 하면서 얼떨떨했을 것 같아요. ^-^;
  • 까마귀옹 2015/02/13 23:17 #

    解明// 여담으로 또 아이러니한 점. 소동파가 남긴 글 중 아주 유명한 글이 바로 이거죠.

    "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
    (번역:"고려에서 태어나서라도 금강산 보고 싶다!")
  • 까마귀옹 2015/02/13 16:29 #

    1. 얼마나 뜯어갔길래 소동파가 저런 발언까지 한 것인지 원. (그런데 그런 소동파도 막상 고려 사신을 접견할 때는 깨갱해야 했죠.)

    2. 조공무역은 외교의 기본 방향 중 하나인 '명분과 실리의 교환'의 극대화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리 몇번 숙여주고 돈 뜯어내는 것과, 수백년 내내 쌈박질 하는 것 중 어느쪽이 더 이득이겠습니까?
  • 로자노프 2015/02/13 16:53 #

    1. 뭐 꽤나 유명한 일화죠. 소동파의 고려 까기.

    2. 당연히 전자죠.
  • santalinus 2015/02/13 16:49 #

    조공책봉관계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만이라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속국이니 사대니 얘기하면서 열등한 조선 부들부들 이런 얘기는 하기 힘들죠.....
  • 로자노프 2015/02/13 16:53 #

    암요. 맞습니다.
  • 2015/02/13 17:3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3 21:1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5/02/13 21:27 # 삭제

    그러고 보니 고려가 송과 요나라 상대로 갑질이 끝내줬다고 하더군요.
    송과 요 사이에 균형추 역할을 하다보니 요나라에 간 고려 사신이 대접이 영 마음에 안 든다고 깽판을 쳐도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니.......
  • 心月 2015/02/13 21:52 #

    5대 분열시기 이후 다극화 국제질서하에 외교상 투트랙 전략도 내재됐던 송대의 조공무역과
    몽고제국의 패권 성향을 동아시아에 국한해서나마 계승하고, 강화된 華夷 개념까지 더해져 왜곡-변질된
    명 전기의 조공무역을 마냥 동일선상에서 비교 대상으로 놓고 보기엔 무리가 있죠.

    주원장부터 해금령 방침을 결정하고, 모든 공식 통상루트를 조공으로 제한(융경연간 복건의 항구를 재개방하기 전까지)시켰는데, 덕분에 국내 재건과 대외원정에 조달할 물자를 다소 과하게 주변국 상대로 요구했던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 로자노프 2015/02/13 22:46 #

    지나가던 과객// 요나라는 오역이란 주장도 있어서요. 이건 확인이 필요할듯요.

    심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길게 잡아도 영락제가 죽을때까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도 조금 관계가 나아졌다 싶었던 무렵에는 조선이 명 상대로 사기를 친 적도 있었고요.
  • 2015/02/13 23:0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13 23: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心月 2015/02/13 23:07 #

    길게 잡아도 선덕연간까진 범주에 포함시켜야죠.ㅋㅋㅋㅋ 공녀와 금은, 사냥매, 군마를 바쳤듯이 품목 자체만으로도 원-고려 관계의 연장선상적 공기가 짙게 남아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치룬 홍역과 민중의 부담을 경시해선 안 됨.

    주원장이 정착시킨 그 폐쇄적 조공무역이 화근으로 돌아와 명나라도 북로남왜의 대가를 고스란히 치룬건 곁가지 스토리.
  • 心月 2015/02/13 23:26 #

    조공과 책봉에 근거한 사대외교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몽골의 멍에를 거쳐 명청대부터 엇나간 조공무역 시스템이 이미 세계사적 조류와는 동떨어진 것이었기에 부정적으로 비평하는 것이구여...ㅋㅋㅋ 사실, 남송대의 해양제국 유산을 말아먹은 이 문제의 1차적 원흉은 주원장보단 원말 페스트 전파로 동서교역로가 작살난데서 연원을 찾아야 할 듯 싶지만.ㅋ 가뜩이나 몽골지배 휴유증 땜시 중국이나 한반도나 피폐해진 마당에 건국 직후의 명제국이 원대에 수탈 개념으로 악용된 조공무역을 고스란히 유일 통상법으로 고정화 시키면서 그걸 빌미삼아 고려-조선에 강권을 남발하고, 거기에 조선도 기병전력의 약화를 감수하면서까지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 기조를 유지한게 아쉬운 대목이다라는게 그 뉴밸 댓글들의 논지잖아요.ㅋㅋㅋ
  • 로자노프 2015/02/13 23:28 #

    글쎄요. 좀 그렇군요. 일단 몽골족때문에 아주 아작이 나버린 상황에서 나중은 몰라도 적어도 명 초기 무렵까지 그런 류의 정책은 어쩔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공녀나 금은, 사냥매는 부담이 된 건 사실이지만 군마는 조선이 폭리를 취하기도 하고, 대놓고 약한 말을 파는 사기도 친 적이 있는 분야라 그걸 부담이라고 하기는 그렇군요. 말의 경우 오이라트는 아주 대놓고 사기질을 쳤고. 그리고 댓글 논지는 그런 순화된 것이 아니라 걍 닥치고 만쭈리식 헬조선으로 보입니다만.
  • 알토리아 2015/02/13 23:36 #

    근데 뉴밸 글 주인장님은 끝까지 일본과 비교하면서 조선을 필요 이상으로 비난하고 있는게 문제 아닙니까? 국토도 넓고 자원도 풍부했으며 인구 또한 많았고, 외침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가마쿠라 후반의 일본이, 원나라의 침공으로 피폐해지고 초토화된 한반도와 어떻게 단순 비교될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킹오파님을 대신하여 心月님께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心月 2015/02/13 23:56 #

    알토리아//

    '자원이 풍부하다'는 관점은 원래 당송대부터 중국인들이 막연히 품었던 일종의 '對日 환상'이었는데, 실상 견당사나 승려가 갖고 온 금화를 보고 착각한 점이 크게 작용했죠. 가마쿠라 후반이라면 남북조 분열기로 접어드는 양상이잖아요? 그때도 북조한테 밀렸다던 남조의 일개 친왕이 주원장한테 보낸 국서에서 '우리나라 역시 적군(=명나라)을 대적할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라며 대놓고 도발하는데도, 명나라에서 손을 쓰질 못했음. 물론 일본이야 지리적 사정 또한 감안해야 겠다만, 사실 홍무연간 명나라가 개국후의 제반 사정이 시급해 주변국에 외면상 강압책을 쓰면서도 당장 외정에 나설만한 상황은 못 되었구요. 원의 잔당을 소탕하러 파병된 서달(맞나?)의 대군이 전멸당한 이후론 남옥의 정벌까지 외정은 당분간 자제.
  • 로자노프 2015/02/13 23:56 #

    하지만 그 북원은 남옥의 원정 한방에 사실상 멸망했죠. 애시당초 그 전해 나하추의 본거지까지 20만 대군을 진격시킨게 당시 명나라고요. 그리고 조선 건국 후의 영락제는 베트남을 멸망시키고, 실론 왕을 납치하고, 아유타야를 압박하고, 몽골을 여러번 원정했습니다. 이걸 무시하기는 그렇죠. 그리고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무시하기도 곤란합니다. 당장 영국을 생각해보세요. 정복왕 윌리엄의 침공 이후 브리튼 섬은 외국의 상륙 공격을 당한 적이 거의 없죠. 그 중 성공한 건 내부에서 제대로 호응한 명예 혁명 뿐이고, 나머지는 제대로 된 내부 호응을 얻지 못 해 모두 처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좁은 도버해협으로 대륙과 엄청나게 가까운 영국도 그랬는데, 하물며 중국과 거리가 꽤 된다는 일본의 이점을 간과하는 것도 매우 곤란합니다.
  • 알토리아 2015/02/14 00:00 #

    근데 남조의 국서의 경우, 그 강성했던 원나라조차 일본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는 점을 홍무 연간 중국인들이 크게 의식하고 있던 것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은 일본의 지리적 사정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사실 명나라의 관점에서 보아도 남조의 '무례한' 국서 때문에 국력과 군사력을 낭비할 필요 또한 없었던 것이죠. 저는 가장 불만스러운 것이, 킹오파님은 일본의 유리한 위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반도 정권이 일본과 동등 이상의 국력을 지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조선 전체를 비난한다는 점뿐입니다. 이건 마치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의 대한민국이 왜 영국, 프랑스 수준이 아니냐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여서 말입니다.
  • 234234 2015/02/14 00:01 # 삭제

    어쩄거나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관계라는건 맞잖어?

    ㅋㅋㅋ 논점일탈에 본질흐리기가 아주 갑일세
  • 234234 2015/02/14 00:03 # 삭제

    조공 그거 필요한거 맞는데

    그걸 무슨 대단한 실리 외교인냥 포장하는게 개소리라는거 아닌감?

    그냥 선택지가 그것밖엔 없었고 약해터진 좆선은 그 길을 택했을 뿐임

    다만 마지 못해서 택했어야 할 길이 실제로는 마지 못해서 택한게 아니였음이 드러난게 병자호란이고
  • 心月 2015/02/14 00:08 #

    베트남은 쩐 왕조를 찬탈한 호뀌리 징벌 명분으로 족쳤다가 20년만에 레씨의 반항에 못배겨 자진 철수한거고...

    남옥의 정벌 역시 1차적 목표는 '쿠빌라이 왕가'를 완전히 무너뜨린다는 것이었지, 대신 동몽고에서 흥기한 오이라트가 북원의 잔당세력을 흡수해 에센~(나중에 부활한 칭기스칸계)다얀에 이르기까지 북로의 우환을 톡톡히 선사한 결과론적 시각을 상기하자면 전략적 견지에서 완전한 대승이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음. 영락제가 괜시리 한족 천자로서 전무후무한 장성 이북 친정을 4~5차례 걸쳐 나섰겠나? 그토록 발본색원하려는데도, 끝끝내 평정하지 못했던 유목민 놈들인데.
  • 로자노프 2015/02/14 00:17 #

    정주민들이 유목민족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정주민 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난이도가 전혀 다릅니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만 해도 키루스는 유목민들과 싸우다 죽고, 다리우스도 죽을 뻔 했고 18세기까지 농경민족 국가가 유목민들의 본거지를 공격해서 성과를 거둔 적은 애시당초 적습니다. 하지만 정주민족 국가가 같은 정주민족 국가를 멸망시킨 적은 넘쳐나지요. 난이도가 다르다 이겁니다. 거기에 화북에서 몽골까지 가는 동안에는 변변히 보급받을만한 거점이 없지만 한반도는 중국의 정치적 중심지격인 화북에 가까운데다가 중간에 요동에 보급기지를 두거나 산동에서 보급받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과 전쟁을 벌이거나 외교적 마찰을 벌여서 좋을 게 없습니다. 까딱하면 멸망당하거나, 국가가 황폐해지는 꼴을 보게 될 걸요.

    그리고 베트남도 기본적으로 레씨가 반항은 했지만 영락제 죽기 전까지는 형식적으로나마 명에 충성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베트남은 한번 멸망했고, 중국에 합병당했습니다.
  • 心月 2015/02/14 00:21 #

    명초 중국의 정치 중심지가 옛날 화북에 있었나요? 남경이었지. 연경으로 천도한건 영락 말기에 가서잖아요.ㅋㅋ
  • 心月 2015/02/14 00:23 #

    네엡. 한 번 멸망했다가 다시 부활했죠.ㅋㅋㅋ 20년 지배를 가지고 확대해석하지 말자구요.ㅋㅋㅋ
  • 로자노프 2015/02/14 00:26 #

    뭐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건 영락제 말년이긴 하죠. 그러나 화북 지방 자체가 중국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잘 아실텐데요. 일단 1368년까지 원나라의 수도는 베이징이기도 했고. 단지 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배제시키면 안 되죠. 더군다나 영락제 자신은 본래 거점이 베이징이었고, 즉위 후에 베이징에 자주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막판에는 아예 베이징으로 천도했고요.
  • 心月 2015/02/14 00:42 #

    연경 천도 초반에도 홍희제가 남경 환도를 구상하는 등 국도로서의 위상이 확립된 것은 아니었음. 토목보 사변 후 우겸이 남경 천도론 제기에 쐐기를 박으면서 비로소 완전히 자리잡았던거.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지엽적으로 얘기가 흐르던데, 나는 일본처럼 패기를 부리거나 베트남처럼 설령 전면전을 각오하는 한이 있더라도 조선이 중국과 각을 세워야 했다는 주장까지 한 적은 없어요. 단지, 정권 정통성 보장을 의식한 나머지 과도한 '고개 숙이기'를 지적했을 따름인데요?ㅋㅋㅋ
  • 234234 2015/02/14 00:43 # 삭제

    자꾸 논점일탈하네 왜 자꾸 군사적 공격행동 이야기가 나오는지? ㅋㅋ

    나라의 자주성을 지키는게 전쟁말곤 없었남?
  • 心月 2015/02/14 01:36 #

    애당초 쿠빌라이 망령에 사로잡힌 영락제의 과대망상이 화근이었을 뿐, 전성기 가서도 명이 동아시아 주변 제국을 일거에 평정한다는건 불가능한 목표였으며, 그럴만한 역량도 박약했음. 땅부자 원나라의 임팩트에 자극받아 당송대보다 노골적이고 패권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긴 했어도. 주원장이야 어디까지나 방어기제의 선공을 시도한거고, 영락 후대의 역대 군주도 이같은 노선의 틀내에서 벗어나질 못했음. 외교 수사로 덧칠된 명측의 허장성세 갑질에 쿠데타로 집권한 조선왕조가 국내외 반발세력을 무마시킬 '책봉 권위'를 빌리고자 '지극정성으로 사대'한 사실 그대로 인정하면 누가 뭐래요?

    몽골의 유습이 잔존한 중국이 文治와 王道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송나라 시절과는 달라졌듯이, 조선도 고려말 간섭기를 거치면서 對中관계에 있어서 상하관계 우열성이 일층 명확해진 현실, 오히려 후대에 와서 명 전기 조공무역의 양면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실리외교'니 '실익남는 장사'로 포장-미화시키기 급급하다는게 다소 꼴불견이라는거죠.ㅋㅋ
  • 로자노프 2015/02/14 09:48 #

    이런 말 하긴 그런데 전 님 주장이 중국에 개겼어야 했다로 보입니다만. 정통성 확보 문제도 물론 조선 입장에서는 중요했겠지만요. 명나라를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 것 아닌가요?허장성세로 보기는 힘듭니다만. 더군다나 조선은 건국 전에 북원이 사실상 멸망하는 꼴을 봤고, 태종 무렵에 베트남이 일시적이나마 멸망하는 꼴을 봤습니다. 나라 하나가 사실상 망하고, 다른 하나가 망하는 꼴을 봤는데 잘 보여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죠.
  • 心月 2015/02/14 10:02 #

    그러니깐... 내가 '조선도 중국에 개겼어야 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대목이 있었냐구요?ㅋㅋㅋㅋㅋ

    주제가 계속 삼천포로 빠지는데, 굳이 일본과 베트남의 예시까지 든 것은 명나라가 님이 생각하는 것마냥 원 시절의 몽골 세계제국과 같은 역량엔 미치지 못했다는걸 우회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을 뿐이지.ㅋ 글고 어느 정도 허장성세 맞음.

    영락제 생전부터 벌써 몽골-안남 원정도 국론 일치에 따른 결단이라기보단, 천자 개인의 공명심이 반영된 바,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된 판국에 환관 발호로 말미암은 내정 흑화와 토목보의 참변이 그리 먼 훗날의 스토리가 아니죠.ㅋㅋㅋ
  • 心月 2015/02/14 10:11 #

    북원이야 어차피 중국서 축출되고, 몽골고원내 제부족의 지지도 상실한 황금씨족의 몰락을 기정사실화 추인한 데 불과.
  • 으잉 2015/02/14 10:52 # 삭제

    오히려 원나라야말로 베트남 못 잡아먹고 물러났는데 원나라와 베트남이 왜 언급되는 거지.
  • 心月 2015/02/14 14:23 #

    베트남 삼킬려다 토한 것과 남해 제패를 노린건 쿠빌라이나 영락제나 동일합니다만, 원은 두차례 일본 원정까지 실천에 옮기고, 오고타이 가문과 30년 전쟁을 치룬 와중에 버마-자바 경략도 구체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군사적 무력행사를 우선순위로 내세운 대외 적극정책의 여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등, 남송병합 후 부가된 강남의 물자마저 동원해 가용자원 또한 충분했으니깐요. 더우기 쿠빌라이가 권력 기반을 다졌을 시기엔 이미 元朝의 위령이 동아시아 대륙 전역에 미치며 카이두를 제외한 외부 견제세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반면, 명나라는 국초엔 원말의 대란을 수습하느라 전념, 여유가 생긴 영락 연간에도 정난지변 과정에서 야기된 내정 동요의 안정화 방면에 여력을 투사시켜야 했다는 차이점이 있음.

    막북에 쫓겨간 몽골족 대책 뿐만 아니라, 세계제국의 재현을 희망한 영락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제질서가 다극화 양상으로 복귀함에 따라 명제국의 위신이 처음부터 태생적으로 최전성기 원제국과는 완전히 동일시될 수 없었던 배경(정화함대 역시 원말~해금령 이후 격감된 남해제국의 입공을 원대처럼 독촉하겠단 목적이 깔려있었고)과 태조 주원장의 쇄국 조법에 얽매여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쿠빌라이의 위업을 계승하려 했음에도, 그 운신 폭엔 한계가 뒤따랐음.
  • atom 2015/02/14 14:59 # 삭제

    명나라가 원나라 전성기 시절보다 영토 크기가 작아졌다고 하지만, 한나라나 당나라처럼 수도가 장안이나 낙양인 것도 아닌데 수도가 엎어지면 코닿을 데에 있는 조선하고 조선보다 훨씬 멀리 있거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베트남이나 일본을 비교선상에 두면 어찌하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당나라가 수나라시대 인구보다 확 줄었고 주위에 온갖 적을 두고 있었지만, 끝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에는 성공했는데 말이지요.
  • 로자노프 2015/02/14 15:14 #

    과도한 사대네 마네 하는 그 자체가 개겼어야 했다로 보입니다만. 그리고 그 황제의 공명심으로 베트남이 지도상에서 지워지는데다가 명나라의 힘 그 자체를 너무 과소평가하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토목보의 변 이전까지 명나라는 분명 막강한 존재였습니다. 15만 군대가 몽골까지 진격하고, 그 전해에는 요동 한복판에 20만 군대를 진주시킨게 그 무렵의 명나라입니다. 그리고 토목보의 변 뒤로도 명나라의 힘을 무시하기는 힘듭니다. 토목보의 변은 명나라가 개삽질을 벌인 결과였지만 그 직후 베이징 공성전은 오이라트의 패배였고요. 아. 그리고 하나 더. 명나라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베트남의 막씨는 통킹에서 1598년에 쫓겨나고도 100년 가까이를 국경지대에서 더 버틸 수 있었습니다.
  • 234234 2015/02/14 15:20 # 삭제

    아 놔 여기는 뭐 호전광들밖엔 없는거? ㅋㅋㅋ

    논점파악도 못하고 자꾸 전쟁드립이여?
  • 心月 2015/02/14 15:25 #

    엎어지면 코닿을데는 또 무슨 소린지 납득이 안 가는게, 북경으로 천도했다고 그길로 조선반도까지 원정로가 탁 트인다는 절대적 확신이 명 조정내에서 공론화되었던가요? 발해만~요동을 경유할 군대 이송에서부터 보급망 확보 여부는 물론, 전근대 운송체계와 도로망 미비에 대한 보완책, 그리고 아직 장성 이북에서 신출귀몰중인 몽골 유목민이나 만주의 여진 제부족한테 후방이 기습당할 가능성까지 모두 대비하고, 준비해가는 과정이 그리 만만한 사안인 줄 아십니까? 이미 유라시아의 절반을 평정하고, 남송 공략에 착수중이던 몽골의 고려 정벌과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 心月 2015/02/14 15:35 #

    명나라의 위협이고 자시고, 주제 자체가 '쿠데타 정권 정통성 담보를 위한 조선의 애널써킹'인데 왜 자꾸 '안 그랬음 명이 침공해와서 쑥대밭 되었을 것이다'라는 가정법이나 추론해가며 군사적 방안만 들먹이는건지.ㅋㅋㅋㅋㅋ
  • atom 2015/02/14 15:35 # 삭제

    그런 가능성 따졌으면 일단 베트남부터 침공하면 안 되었지요.
  • 234234 2015/02/14 15:55 # 삭제

    조선이 베트남만큼 가치있는 땅인감? ㅋㅋㅋ

    설마 교과서 같은데서 보고 정말 우리나라가 비옥한 농토국가인줄 아는건 아니겠제?
  • atom 2015/02/14 16:02 # 삭제

    그럼 베트남은 그렇게 가치 있는 땅인지요?
    당장 동북아와 동남아의 단위면적당 쌀 생산력만 봐도 동북아가 동남아를 ha당 생산비로 압도할텐데.
  • 心月 2015/02/14 16:10 #

    한무제가 경영에 착수한 이래 동진~남조시대에도 교주(=베트남)와 광주에서 산출된 부유한 재화만으로 王府가 가득 찰 정도였다는 평가가 나오던 실정이었구여... 동남아와 인도양으로 뻗어나갈 '남해무역의 기착지'라는 지정학적 메리트란 관점에 있어서 베트남 병합은 역대 중국왕조의 숙원이었던 바, 무엇보다 실제로 중국의 직접통치가 당 말기까지 1천년간 지속되었다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죠.ㅋㅋ 그리고 명의 안남 침공은 사안이 좀 복잡한게 쩐 왕조 찬탈한 호뀌리의 급진 개혁정책에 대한 민심이반과 더불어 국경지대에 배치된 명나라 관리를 사주해 독살해버린 외교 실책이 치명타였음.
  • 234234 2015/02/14 16:11 # 삭제

    사스가 동남아 무시하는 조센의 후예 대스네
  • 로자노프 2015/02/14 23:14 #

    일단 이거 답글들이 너무 길어지니까 계속 토론을 벌일 의향이 있으시면 http://rozanov.egloos.com/1404258 이 쪽에서 하지요.
  • ㅇㅅㅇ 2015/02/14 00:02 # 삭제

    사대행위가 뼛속까지 신조 수준으로 박혔다는 명제는 조선 어느 시기를 돌아보더라도 틀린 명제입니까? 더불어 최초의 태극기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 234234 2015/02/14 00:05 # 삭제

    틀린명제 아님 단순한 생존전략의 일환이 아니라 그냥 이데올로기였음을 들어내는 증거들이 당장 실록에 속속 나오는 판인데
  • 로자노프 2015/02/14 00:07 #

    거의 대부분의 시기에서는 틀렸습니다. 소위 모화사상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국가 정책 결정에서 그렇게 뼛속까지 각인된 수준의 정책을 핀 적은 그닥. 일단 인조 때만 해도 모문룡의 행패를 못 참고 대놓고 '눈 딱 감고 가도를 공격해서 모문룡을 참수해버릴까?'를 인조나 고위 대신들이 대놓고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실현되지는 않았죠. 모문룡이 명나라의 벼슬을 받은 정식 관리라서요. 명나라가 멸망할 거라고는 아직 생각할 수 없던 시절이라 이게 잘못한 행동은 전혀 아닙니다. 잘못하면 명나라하고 전쟁하는 건데 그건 무리였죠.

    최초의 태극기는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오히려 청나라에서는 청룡기를 국기로 쓰라고 했는데 고종이 씹고 태극기를 만든 걸로 압니다. 그나마 태극기와 청의 연관관계를 찾자면 청나라 사람 마건창이 본국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조선 쪽에 태극팔괘도를 건의한 것 정도인데, 이 의견은 검토되다가 폐기됬거든요.
  • 알토리아 2015/02/14 00:07 #

    본인은 조선 중후반부를 비판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지만, 조선 전반부의 사대는 정말로 생존전략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234234 2015/02/14 00:10 # 삭제

    전반부라고 해봤자 말 그대로 태조시기가 쫑임

    그 이후로는 그냥 이데올로기지

    뭘 위한 뭐 때문에 하는지의 대한 의식도 없이 사대 한답시고 그저 명나라 똥꾸녕이나 핡다가 뒤졌는데
  • 알토리아 2015/02/14 00:14 #

    적어도 선덕 연간(=조선 세종 중반)까지는 쳐줘야죠. 태조시기가 쫑이라는 건 과격한데요. 더군다나 그 이후로도 명나라의 국력은 꽤 오랜 기간 유지되었고, 명나라의 국력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 건 가정 연간인데 조선 전반부는 명나라와 조선의 국력 차이가 극단적으로 심했던 시기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 234234 2015/02/14 00:15 # 삭제

    명나라한테 뺏길까봐 무섭다고 지 나라 발전도 머뭇거리게 한걸 뭐라고 쉴드치나?
  • 알토리아 2015/02/14 00:16 #

    왜냐하면 그래야만 조선 중후반부의 임금들이 얼마나 무능했는지 더 대차게 깔 수 있기 때문입니다.
  • 234234 2015/02/14 00:18 # 삭제

    더 무능한거나 덜 무능한거나

    호구는 호구지 뭘 등급을 나누고 있어
  • 로자노프 2015/02/14 00:19 #

    명나라 무시하기는 그럽니다... 당장 청나라도 산해관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명나라가 멸망한 뒤 오삼계가 투항한 덕이었습니다. 그리고 베이징에 입성하고도 한동안 도르곤은 남명 정권과 서신을 교환하면서 남정을 망설인 적도 있습니다. 여차하면 강남 지역에는 명나라 잔당이 거점을 잡는 것을 용인하려고 했다는 거죠. 문제는 남명 정권이 개막장이었다는 거지만요. 조선 입장에서는 별 수 있나요.
  • 알토리아 2015/02/14 00:22 #

    지정학적으로 호구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조선 전기와, 그래도 능력껏 무언가 해볼 수는 있었고 몰락해가는 나라를 더 이상 지극정성으로 섬기지 않아도 생존에 문제되지 않았던 조선 중기가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만력제 이후의 사실만 보고 명나라의 군사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 234234 2015/02/14 00:20 # 삭제

    당장 송나라 삥뜯던 고려를 씹던게 좆선 씹종자들인데 무슨 조공 물품을 대단한 실리외교인냥 쉴드치는지 노이해
  • 234234 2015/02/14 00:25 # 삭제

    이 뭐 내가 요동정벌을 했어야 했다고 주장을 했나 ㅋㅋㅋ

    오로지 군사적 측면 외에는 고려를 못 하는감?
  • 알토리아 2015/02/14 00:31 #

    그러니까 제가 한반도가 중국에 직접 붙어있는 게 저주라고 하는 게 아닙니까. 더군다나 조선 전반부면 고려 말기 원나라가 죄다 초토화시킨 게 완전히 복구되지도 않을 시기인데.
  • 234234 2015/02/14 00:31 # 삭제

    그러니까 어쨌듯 뉴밸 글이 맞다는 소리인데

    왜 지 욕이라도 한 것처럼 풀발기를 하는지?
  • 알토리아 2015/02/14 00:32 #

    난 뉴밸 글 자체의 논지에는 동의하는데, 그 블로그 주인장이 자꾸 당시 한반도 정권과 일본 정권을 비교하면서 일본처럼 못했으니 조선은 ㅄ이라고 주장하는 게 마음에 안 들 뿐이라니까 대체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로자노프님에게 하는 말이었던 거?
  • 234234 2015/02/14 00:33 # 삭제

    일본처럼 못했으니 병신 맞지 ㅇㅇ

    그게 불가항력적인 요소 때문이고 아니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 알토리아 2015/02/14 00:35 #

    불가항력적 요소 때문인데 뭐가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님은 진심으로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이 영국, 프랑스 수준이 못 되니까 병신이라고 생각하려는 건가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별로 드릴 말은 없고.
  • 로자노프 2015/02/14 00:36 #

    알토리아// 글쎄요. 그건 좀 그렇네요. 실제 사례가 하나 있는데 1540년대에 베트남에서 내전이 벌어졌는데 그 때 한 쪽에서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명나라 군대가 베트남에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반대쪽이 어떻게 대처한 줄 아시나요? 항복해버리고 땅 일부를 바쳤습니다. 그러자 명나라는 기분 좋아서 그냥 돌아갔고요.

    그리고 만력제 이후도 마냥 무시하기는 그렇죠. 당장 누르하치는 영원성에서 대패했고, 영원성이 점령된 것도 병자호란 이후에, 산해관은 명 망할때까지 돌파하지 못 했습니다. 더군다나 청나라도 입관 이전에는 경제적으로 피폐해져서 불만에 찬 한인들의 봉기도 몇 번 있었습니다. 즉 명나라가 망할거라고 생각하는 건 그 당시에는 무리였다 이거죠.
  • 234234 2015/02/14 00:36 # 삭제

    ㅇㅇ 그 당시 한국이 병신같은 상태였던건 맞는데 뭐?
  • 234234 2015/02/14 00:39 # 삭제

    풉 명나라가 망할 거라는건 다 알 수 있는 상황이였음

    청병입새도 모르노
  • 알토리아 2015/02/14 00:41 #

    234234 // ㅇㅋ 그러면 그렇게 생각하시길. 당신과 내가 생각하는 '병신'의 의미가 조금 다른 듯하니 넘어가죠. 불필요한 논쟁이 되었으니 그만두는 게 좋겠습니다.

    로자노프 // 확실히 명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후금은 정말로 천운을 타고난 나라일 테니까요. 그러나 가정 연간쯤 되면 북로남왜 - 즉 몽골과 왜구의 침공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시기였고, 여기에다 황실의 내분까지 겹치면서 이전의 위엄은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봅니다. 영원성이나 산해관의 경우 각각 원숭환과 오삼계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으로 봅니다.
  • 234234 2015/02/14 00:41 # 삭제

    킥ㅋ 혼자서 풀발기하다가 힘 빠지니깐 관두자네
  • 알토리아 2015/02/14 00:43 #

    왜냐하면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지금 지구상에서 최선진국인 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국민들은 모두 병신으로 폄하할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나는 그게 절대로 정당할 수 없다고 믿음.
  • 234234 2015/02/14 00:44 # 삭제

    나라=국민

    캬~~! "Logic"
  • 234234 2015/02/14 00:47 # 삭제

    게다가 조선은 굳이 초강대국하고 비교할 필요도 없이 그냥 평범한 나라랑 비교해도

    존나 불쌍해지는 나라라는게 함정 ㅋㅋㅋㅋ
  • 알토리아 2015/02/14 00:49 #

    국가와 국민이 동의어가 아닌 건 알지만, 어떤 나라를 병신으로 매도한다면 그 나라 국민들 역시 병신으로 매도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던가? 뭐 국민과 국가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뭐 내 실수로 하고.
  • 알토리아 2015/02/14 00:49 #

    "불쌍한 나라"와 "병신같은 나라"가 동의어였던가?
  • 234234 2015/02/14 00:50 # 삭제

    이제는 용어오용까지 하시는구만

    아제는 아재만의 옥편이 따로 있으시죠?
  • 234234 2015/02/14 00:51 # 삭제

    다른건 모르지만 니 언어영역 점수가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 알토리아 2015/02/14 00:52 #

    뭐, 애초에 당신도 비로긴 분탕종자로서의 옥편이 따로 있는 이상 별로 이상할 건 없겠지.
  • 234234 2015/02/14 00:53 # 삭제

    그래서 니 글이 병신이라는건 일단 스스로가 인정하고 한대 치시려는거네? ㅋㅋㅋ
  • 234234 2015/02/14 00:54 # 삭제

    근데 이걸 어째 제대로 공격을 하시려거든 먼저 니만의 옥편이 없다는걸 증명해 주셔야지

    그냥 자폭성 비꼬기글은 초딩적 발상이라 이기야
  • ㅇㅅㅇ 2015/02/14 00:56 # 삭제

    청병입새가 뭐에요?
  • 알토리아 2015/02/14 17:11 #

    234234 // 님은 그냥 일본으로 이민 추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베충이었던 건가.

    불가항력적인 요소를 무시할 것 같으면 당신네들이 떠받드는 박정희도 병신이겠네. 일본보다 더 잘 사는 나라는 못 만들었으니 말이야. 그게 박정희를 경제 문제로 까는 좌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라는 건 아나? 걔네들 흔한 레퍼토리가 민주화와 경제발전 둘 다 잘 할 수 있었는데 박정희는 후자만 했으니까 병신이라는 논리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34234 2015/02/14 17:44 # 삭제

    아제 사태파악 못하고 혼자서 쉐도복싱 한거 깨달았으면 자숙하고 있으쇼

    그럼 쪽팔림은 덜할테니
  • 234234 2015/02/14 17:45 # 삭제

    그리고 내가 박정희를 싫어한다는게 함정카드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은 일베충 아님 좌빨밖에 없는 곳이라 이기야!
  • ??? 2015/02/14 00:56 # 삭제

    이쯤에서 저 234234라는 분이 그리는 바람직한 나라상이 어떤것인지 궁금해집니다.
  • 567567 2015/02/14 01:08 # 삭제

    -노, -이기야 등을 쓰는 거 보면 일베 좀 하는 분인듯.

    일베충이 그리는 바람직한 나라상은 김치녀가 박멸되고 스시녀가 존재하는 일본 ㅋㅋㅋㅋㅋㅋ
  • 알토리아 2015/02/14 17:03 #

    567567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에피메테이아 2015/02/14 19:18 #

    당시 힘의 논리에 의해 책봉 같은 명예적 손실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실제 물자가 뜯기는 것도 있으니 '이렇게 된 거 원하는 거라도 실컷 받아내자! 못 먹어도 고!'

    정도로 이해하면 되려나요...? 저도 조공무역부분은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참 뭐해서 곤란해서리... 아하하하(먼산)
  • ??? 2015/02/14 14:44 # 삭제

    234234라는 분은 답변이 없으시니 넘어가고.

    그럼 心月이라는 분이 그리는 바람직한 대명 외교는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에피메테이아 2015/02/14 19:15 #

    명나라에게 개기다 전쟁 터지는 거 쯤?

    영락제 성깔 감안하면 저분 이야기 같은 주장이 나오기 힘들어뵈는데 말이죠... 설령 실제 위험이 예상보단 낮아도 가능하면 손해 덜 보는 걸 택하는게 외교고 정치인데 저분 기준으론 그게 아닌가 뵙니다...
  • 로자노프 2015/02/14 23:14 #

    일단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솔직히 본심은 저도 그게 의심됩니다.
  • 시신 2015/02/14 19:38 #

    원대 빼고 속국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조공-책봉 관계에 대한 매우 낡아빠진 페어뱅크의 이론만 알더라도 저런 무식한 소리는 못하죠. 사실 모든 시대는 등가치성을 가진다는 역사학의 기초를 무시하면 필연적으로 미개하니 헬이니 이런 소리를 할 수밖에 없죠. 만국공법 체제 이전의 동아시아와 만국공법 체제 이후의 동아시아를 같은 선상에서 놓다니 참.. 역사교육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단 생각 하고 갑니다.
  • 로자노프 2015/02/14 23:14 #

    뭐 솔직히 1882년~1894년 기간도 속국이네 마네 할 여지는 있는 구간이긴 합니다만 저건 참...
  • 그레친 2015/02/16 00:26 # 삭제

    근데 조명관계를 고찰하려면 왜구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니닌가요??? 북쪽에만 적이 있는 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사방으로 얼마든지 나라가 초토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당대 수준급의. 이웃 나라를 굳이 심기 건드릴 여유같은 건 없을 듯 한데 말입니다
  • 아리우스 2015/02/16 10:53 # 삭제

    위안스카이가 와서 감국이랍시고 앉아서 한거보면 당시 조선의 외교조차도 청한테 제지당할만큼. 사실상 일본전에 청이 지배하더거나 마찬가지죠.
  • 아따나랑께 2015/02/16 14:10 # 삭제

    토목의 변이라는 개 쪽을 당한 명나라지만, 그 황제를 잡아갔던 몽골족 추장 에센도 황제요? 그거 쩝쩝 우걱우걱 꿀꺽 머죠? 라면서 전면전 준비하는 명나라에 어찌 하지 못하고 아뇨 황제 흘리고 가셨어요 ^^;;밖에 못했고 토목변 이후로 병맛크리를 탄 그 명나라 없었음 조선은 나머지 200년없이 걍 망했고 청나라도 명나라 우주방어 못뚫다가 이자성 대순한테 망하고 나서야 문이 열렸는데... 저딴 나라를 헬센이 아니라 갓조선이라도 몬이깁니다. 하물며 조선초에 국력 왕성할땐 명나라도 국력이 왕성하던 떄였는데 정말 미친척 하고 전면전 걸면...명나라도 머기라가 깨지겟지만 조선은 걍 머가리가 없어지고 조선성 설칩니다...조공책봉이요?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걍 대명 외교에서 깔고 들어가야 합니다.그렇다고 우리라고 뭐 조공 안받았나? 명나라 빼곤 다 조공무역 형태라 조공책봉 가지고 헬센이네 굴욕이니 한다는건 뭔가 병신같음
  • 전위대 2015/03/20 09:03 #

    저 숫자닉의 근성은 여전히 대단하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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