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역사 이야기 16. 공포의 차르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그로즈니>

 

 

- 이반 4세의 초상 -


 

 이반 4세. 흔히 이반 뇌제로 불리는 그가 그런 별칭으로 불리는 것은 일본이 러시아에서 그로즈니(Grozney)를 뇌제로 의역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그로즈니란 단어는 무서운, 공포란 뜻도 있지만 준엄하다는 뜻도 있어서 무언가 조금 해석이 애매할 수 있는 그런 단어이다. 하지만 그의 일생을 돌아다 보면 그로즈니가 사용되는 모든 용례가 이반 4세에게 어울렸다.


 뭐 굳이 따진다면 뇌제라고 불릴 만큼 무서운, 공포 뭐 이런 의미의 뜻들이 더 어울리는 구석이 강했지만.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온갖 이야기와 전설이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와 전설이 전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그가 보여왔던 광기와 온갖 폭력적인 행동들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전설들은 보통 이반 4세의 공포스러운 행동들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 전설은 그가 그렇게 광기와 공포를 불러온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이반 4세의 아버지 바실리 3세가 엘레나 글린스키와 결혼할 때 그에 반발하던 대주교가 사악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는 도시를 불태울 것이라고 저주했고, 아이가 태어날 때 크렘린에 천둥이 쳤으며, 카잔 칸국의 칸이 악마가 태어났다고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외에도 엘레나가 이반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핀란드 마녀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다만 이 전설들은 훗날의 일들을 가지고 누군가 짜집기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사실 이반 4세가 광기를 보인 건 이런 전설적인 것들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혼돈>

 

 

- "어린 아들을 놔두고 떠나야 되다니.. 조치는 취했지만 불안한데..." -


 

 이반 4세는 1533년, 고작 3살의 나이로 대공의 자리에 올랐다. 바실리 3세는 너무 어린 아들이 집권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처가인 글린스키 가문과, 다른 유력 가문인 비엘스키 가문에게 이반을 맡긴다고 유언했고, 그 외에 슈이스키가문까지 합세하여 3개 가문이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은 초장부터 꼬였다. 이반 4세의 삼촌 유리가 바실리 3세 생전에 강요된 이반 4세에 대한 충성맹세를 바실리 3세가 죽자마자 부인해버렸고, 안드레이 슈이스키 등 일부 보야르들이 유리를 대공으로 앉히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 이 음모는 사전에 발각되어 유리가 감옥에 갇히는 걸로(1) 끝나기는 했다. 그런데 늑대는 한마리가 아니었다. 또다른 삼촌 안드레이도 공공연히 영지 확대를 시도했으며, 그것이 좌절되자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리투아니아가 이 기회를 틈타 바실리 3세에게 패한 앙갚음을 하기 위해 전쟁을 걸어오는 일도 벌어졌다. 리투아니아군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영토 일부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곧 격퇴되었고, 양측은 1535년에 평화조약을 맺었다.

 

 

- "아무리 삼촌이라지만 굉장히 거슬리네.. 없어졌으면 좋겠어." -


 이 때 글린스키 가문 내부에도 분열이 일어났다. 태후인 엘레나 글린스키와 젊은 미남 귀족 오볼렌스키 공은 엘레나의 삼촌 미하일 글린스키를 걸리적 거리는 존재로 여겼고, 그가 몇몇 귀족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자 이를 기회삼아 그를 제거하였다. 그는 감옥에 갇혀 죽었다. 


 문제는 미하일 글린스키는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는 인물이었다는 것이었다. 엘레나는 아직 24살이었다. 아직 정치를 제대로 안다고 보기는 힘든 나이였다. 그래서 그녀가 나름 아들 이반을 위한다고 보야르들을 견제하는 행동들은 효과가 없지는 않았지만,(2) 너무 섣부른데다가 정적들을 대거 양산해냈다. 더 큰 문제는 그녀가 정치에 전념하는 것보다는 한창 남아있던 청춘을 만끽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더 강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남 귀족 오볼렌스키 공과 놀아났다. 다행히 이반도 오볼렌스키에게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아버지처럼 여기기는 했지만 여하튼 정치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할 짓은 아니었다. 


<아동학대>


 아나스탸샤는 1538년, 28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원인은 확실치 않지만 독살이 가장 유력시되며, 슈이스키 가문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문제는 슈이스키 가문이 현재 가장 유력한 가문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엘레나에 의해 상당수가 감옥에 갇혔던 슈이스키 가문 사람들은 역시 마찬가지 처지였던 이반 비엘스키와 함께 모스크바 대공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권력은 본래 나눌 수 없는 것. 곧 슈이스키 가문의 지도자였던 바실리 슈이스키는 오볼렌스키를 감옥에 가둔 후 죽이는 과정에서 꼽사리로 이반 비엘스키도 숙청해버렸다. 이반 비엘스키는 몇 년 후 잠시 석방되기는 했지만, 그가 세력을 규합하는 걸 두려워했던 이반 슈이스키는 이반 비엘스키를 다시 감옥에 가두고,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가 석방되도록 도왔던 모스크바 총대주교 이오아사프도 교체해버렸다. 슈이스키 가문은 이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위세를 자랑하게 된 것이었다.

 

 

 

- "하하하하하! 대공 따위 우린 모른다. 우리가 모스크바의 지배자다!" -


 당연히 이들은 대공을 우습게 알았다. 그들은 일단 공적인 자리에서는 이반을 대공으로 대우해주고, 이반의 동생 유리를 황족으로 대우했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가 아닐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보야르들은 이반에게 무례하게 굴기가 예사였고, 누더기 옷을 입혔으며, 이반의 침실에서 일부러 논쟁을 벌였다. 안드레이 슈이스키는 아예 더러운 신발을 이반의 침대 위에 갖다두기도 했다. 그리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반이 친구들을 사귀지 못하게 조치하였다.


 이런 막장 환경에서 아이가 정상적인 인격을 가지고 성장한다고 보기는 당연히 힘들었다. 이반은 꽤 총명한 아이였지만, 동시에 동물을 고문하고 떨어뜨리는 걸 즐기는 아이가 되었다. 뭐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그러나 슈이스키 가문의 권세도 얼마 가지 못 했다. 1543년 크리마스에 이반은 회의 자리에서 안드레이 슈이스키(3)의 무례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다들 순간적인 명령에 당황했는데 이반은 명령을 집행할 것을 재촉했다. 결국 병사들이 정신 차리고 도주를 시도하려던 슈이스키를 붙잡았다. 이반은 그를 개 사육사에게 넘겨 죽이게 했다.(4)


 <차르로 즉위하다.>


 이반도 솔직히 당황했다. 자기 명령이 너무 순식간에 집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일단 친정을 시작하고도 한동안은 보론초프 가문의 보좌를 받았지만 1546년에 이반은 보론초프 가문도 숙청해버린다. 이후 그는 1547년 1월, 17살이 되었을 때 총대주교 마카리우스 등의 권유를 받고 차르를 칭하고 즉위식도 가지었다. 이제 모스크바 대공국, 혹은 모스크바 공국이 러시아 제국-혹은 루스 차르국-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된 것이었다. 

 

 

- 아나스타샤 로마노프를 새긴 조각상 -

 


 그리고 그는 한달 후 아나스타샤 로마노프란 동갑내기의 아름다운 귀족 여성과 결혼하였다. 이반은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광기가 아직 잠들어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해 6월. 마침 교외에 있던 이반 4세는 프스코프(혹은 노브고로드라고 전해진다.)의 청원단들을 접견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청원단들이 자기를 해치려 했다며 수염을 태우고, 눈밭을 뒹굴게 하고, 뜨거운 술을 머리에 부었다. 그리고 쇠꼬챙이로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모스크바에서 화재가 벌어졌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덕분에 이반은 자리를 급히 떴고, 그들은 목숨을 건졌다.

 

 

- 모스크바 대화재를 묘사한 삽화 -


 

 문제는 화재가 심각했다는 것이었다. 원래 모스크바에서 화재는 흔한 일이었지만(5) 이번엔 좀 심각했다. 크렘린의 종이 불길 때문에 굴러떨어지고, 수많은 건물들이 불탔으며, 2700~3700명이 불타죽었다. 총대주교 마카리우스도 불길로부터 도망치려다가 부상을 입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절망했고, 동시에 분노했다. 그들은 삽시간에 무장하였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이 때 누군가가 방화를 저질렀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방화범이 차르의 외가쪽 친척인 유리 글린스키라는 소문이 돌았다. 누가 퍼뜨렸는지는 몰랐지만(6) 어찌 됬던 사람들은 이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유리 글린스키는 도망치다가 결국 돌에 맞아 죽었다.


 이들은 이후에 교외에 있던 차르의 거처까지도 쳐들어갔다. 하지만 이반 4세가 진압 명령을 내리자, 이들은 곧 진압되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반 4세는 이 사건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사람이 변하다.>


 모스크바 대화재 이후 이반 4세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완전히 사람이 바뀐 것 같아보였다. 그는 광기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멀쩡하면서 총명한 사람처럼 보였다. 특히나 아내 아나스타샤 앞에서는 완전히 얌전한 고양이처럼 보였다고도 전해진다. 학자들은 모스크바 대화재나 이후의 시민 봉기로 인한 충격, 그리고 아나스타샤와 총대주교 마카리우스가 이반 4세의 광기를 제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보고 있다. 


 이반은 이후 러시아 제국의 내부 정비를 실시한다. 그는 이전의 보야르 중심의 두마를 대신하고 견제할 목적으로 선발 회의이 조언을 받았다. 선발 회의의 구성원들은 총대주교 마카리우스나 자신의 측근인 사제 실베르토르, 관료인 아다셰프 등이었다. 이후 그는 1549년에는 아예 성직자들과 관리, 보야르. 상인층들을 중심으로 한 젬스키 소보르(전국 의회)를 소집했다. 

 

 

- "에... 오늘의 안건을 말하겠습니다." -


 젬스키 소보르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유력한 대의제 기구였다는 주장도 있고, 단순한 협의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으며, 차르를 제어하지는 못했지만 어찌 됬든 나름 대의제 기구로써의 역할을 보였다는 주장도 있다. 어찌 됬든 이런 기구의 등장은 러시아 역사에서 나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참고로 최초의 회의에서 이반 4세는 젬스키 소보르의 지적 몇 가지를 받아들였고, "내가 이전에 저지른 악한 행동은 고아로 자라서 측근 귀족들에게서 나쁜 것들을 보고 배운 탓이다."라고 말하며 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1551년에는 공의회를 열어 러시아 정교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교회를 개혁하면서 통제를 강화하려고 했다.(7) 이전 해에는 법전인 수베드닉을 개정하였는데 농노들의 이동을 더 강하게 규제하기는 했지만 러시아 제국 내부의 체계를 정비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됬다. 

 



 

- 스트렐치들을 묘사한 그림 -


 

 거기에 더해 1545~1550년에 이르는 기간 이반 뇌제는 스트렐치라고 하는 부대를 편성했다. 이들은 서민들로 구성된 일종의 친위대로 바디슈란 도끼와 총으로 무장했고, 나중의 일이지만 세습직이 되었다. 또한 평소에는 모스크바에 거주하며 따로 생업을 가지고 살다가 일정 기간, 혹은 전시에 왕이나 지휘관을 호위하는 식으로 군사 작전에 참여했고, 논란이 많지만 소방 업무도 담당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국력을 정비한 이반 4세는 슬슬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목표는 카잔 칸국 이었다. 


(1) 유리는 1536년 감옥에서 옥사한다.


(2) 덕분에 또다른 삼촌인 안드레이가 노브고로드에서 1537년에 꾸민 음모도 사전에 적발하여 제압은 할 수 있었다.


(3) 당시 슈이스키 가문의 지도자는 바실리 슈이스키에서 이반 슈이스키, 안드레이 슈이스키 등으로 바뀐 상태였다. 이렇게 휙휙 바뀐 이유는 가주들이 권력을 잡은 지 얼마 안 되서 병사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4) 일설에 의하면 큰 개로 하여금 산채로 물어뜯고 잡아먹게 하였다고도 전해진다.


(5) 15세기에 모스크바에 살았던 이탈리아인의 기록에 의하면 모스크바에서 화재는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매일 어딘가에서는 집이 불타서 전소되기 일쑤였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집에서 요리하는게 금지되는 법이 시행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목재로 집을 짓는 지라 불에는 잘 타도 복구도 빨랐는데 숙련된 사람 4명이면 하루만에 집 한채나 작은 성당 하나는 뚝딱 만들어냈다고 한다. 


(6) 슈이스키 가문이 어느정도 복권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슈이스키 가문쪽 사람들이 퍼뜨린 소문으로 추측된다.


(7) 1551년의 공의회로 소위 비소유파는 완벽한 이단이 되었다. 다만 그들의 파장을 완전히 무시는 못 해서 정작 비소유파의 대표 닐 소로스키는 시성되었다. 


덧글

  • intherain 2014/08/31 22:32 #

    그리고 곧 뇌제는...ㅎㄷㄷ
  • 로자노프 2014/08/31 22:38 #

    아직은 그래도 정상입니다...
  • 연성재거사 2014/08/31 22:45 #

    이번편이 다음에 나올 광기의 서막............ㄷㄷㄷ
  • 로자노프 2014/08/31 22:55 #

    정확히는 다다음편입니다.
  • 앨런비 2014/09/01 00:26 #

    Ivan the Terrible. the beginning.
  • 로자노프 2014/09/01 09:09 #

    이제 시작일 뿐
  • ㅋㅋㅋ 2014/09/01 00:44 # 삭제

    오오 간지!!! 저도 뇌제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년은 빼고...
  • 로자노프 2014/09/01 09:09 #

    중년도 솔직히 영...
  • 전위대 2014/09/01 08:08 #

    러시아 교수가 ivan the terrible의 terrible이 존엄 경외도 있다고 몇번 강조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나저나 어린 왕이 분을 못참고 권력자를 처형하는 일이 정말 있긴 했군요 내가 구상하고 말이 되나 싶었는데
  • 로자노프 2014/09/01 09:09 #

    좀 즉흥적이긴 했습니다.
  • ㅋㅋㅋ 2014/09/01 11:35 # 삭제

    슈이스키의 숙청같은 즉흥적이고 기습적인 행동은 단종이 수양대군 상대로는 불가능했겠죠?? 수양대군은 숙부고 유교문화권이라 삼촌을 함부로 숙청한다는 것 자체가 자충수...
  • 로자노프 2014/09/01 12:05 #

    음... 그건 좀....
  • 위장효과 2014/09/03 13:30 #

    진짜 몇 편으로 이반 뇌제가 끝날지...
  • 로자노프 2014/09/03 16:16 #

    한 3~4편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이 분량도 원래 다룰 시기에서 대충 10년을 줄인거라...
  • 유니콘 2014/09/03 22:25 #

    그나저나 톨스토이 소설에도 자주 대화재가 언급되는것을 보면 당시 러시아에 화재가 자주 발생했던듯 합니다^^;;;;;
  • 로자노프 2014/09/03 22:32 #

    톨스토이는 19세기 인물이긴 한데 저 시기 모스크바가 좀 화재가 잘 나던 모양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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