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종영 기념 감상 - 문화연구소 산하 영상매체부


 드디어 정도전이 그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 1월부터 총 50부작으로 기획, 방영됬던 이 드라마가 벌써, 아쉽게도 끝이 나버렸습니다. 정말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그런 명작 드라마가 벌써 끝났다는 건 정말 정말 아쉬울 뿐입니다. 

 2009년 천추태후 이래 대한민국의 사극 상황은 암흑기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극의 간판이자, 동시에 KBS의 간판이었던 KBS 대하드라마들은 천추태후를 시작으로 연속으로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환빠스러운 줄거리와 고증 무시, 로맨스와 노예, 너무나도 평면적인 인물 구도 등등, 작품성이 처참하게 망가졌고, 시청률도 따라서 망했습니다. 다른 방송사들도 상황이 안 좋았습니다. 상당수 사극들은 작품성이 엉망이었고, 시청률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나마 건질만한 건 뿌리깊은 나무나 공주의 남자 정도였습니다.

 더군다나 기황후는 성공은 했지만 말그대로 역사 왜곡에 온갖 논란을 달고 다녔습니다. 과거 용의 눈물의 대성공 이래로 찬양받았던 찬란한 전성기를 맞았던 사극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사극이란 장르가 망하는게 아닌가 싶은 느낌까지 나왔습니다. 당장 KBS 대하드라마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고, 실제로 상당수 사극팬들이 한국 사극을 버리고, 중국 사극이나 일본 사극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KBS가 신삼국과 초한지를 연속으로 더빙 방영(하필 KBS의 장기 중 하나가 외화 더빙이었던지라 초한지는 조금 엉망인 감은 있었지만 신삼국은 상당했습니다.)하면서 이런 흐름이 가속화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망하는게 아닌가 싶던 사극에 구원자가 나타났으니, 그게 바로 정도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정통 사극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 중 특기할만한 건 스피드한 전개, 그 동안 약점처럼 지적되어오던 늘어지는 전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너무 빠른 나머지 속도를 줄이라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보여주는 방식, 나름 괜찮았습니다.(물론 단점도 있지만) 거기에다가 고증도 나름 신경 쓰고 전쟁 장면으로는 전설을 찍어주었습니다. 정치 사극인데도 전쟁신으로 전설을 찍었다는 건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오긴 합니다.

 그 외에도 환빠적 요소의 배제,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인물 군상도 좋았습니다. 특히 인물 묘사는 정말 최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동안의 깨끗하며 무조건적인 선인 주인공이 아니라 언제든지 이상을 위해서 비정한 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신선했습니다. 또한 정몽주의 흑화라던지, 이상이나 욕심에 의해 서로 갈라지는 모습들을 잘 묘사하였습니다. 요 근래 드라마에서 이런 걸 과연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주인공의 적들도 마찬가지. 그 동안 대하사극에서 평면적으로 묘사됬던 다른 경우들과 달리 정도전은 꽤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평면적 악당에 가까운 편이었던 이인임은 능수능란한 정치 술수와 카리스마 등으로 박영규의 연기 변신을 제대로 보여주었고, 이후 적이 되는 이색이나 정몽주 등은 지향점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등으로 갈라진 것이었습니다. 뭐 무엇보다 정도전 자신이 각성 후 쓰는 수법들부터가 다른 드라마 최종보스급 악역들이 쓸 수준이었고요. 




 물론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일단 이방원의 묘사는 나름 이방원 개인의 욕망만이 아닌 가치관의 차이를 구현하려고 노력한 모습은 있었다지만 악랄하다는 점은 일단 인정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그냥 보면 이방원은 왕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뿐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런 모습이 상당하지만 가치관의 충돌이란 부분, 나름 묘사하려고 노력한건 보이는데 좀 부족하단 말이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단점은 조선시대 부분. 조선시대 부분 들어오면서 맥이 좀 빠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일단 요동 정벌 관련 묘사도 나름 괜찮기는 했지만 무언가 2% 아쉬웠고요. 정도전의 개혁도 상당수가 단순한 해설로 묘사되고 조선시대의 주요 부분은 이방원과 정도전의 정쟁으로 묘사됬습니다. 정도전의 개혁을 나름 묘사 할려고 한 흔적은 많이 보이는데, 너무 부족했습니다. 정말 부족했습니다. 솔직히 50회는 너무 짧았습니다. 특히나 고려시대에 40회나 잡아먹은 상황에서 남은 10회에 조선시대를 묘사하는건 확실히 무리였습니다. 적어도 60회 정도는 되서 조선 시대에 20회는 투자하는게 좋았겠죠. 근데 50회가 됬단 말입니다. 원래 5~60으로 좀 탄력적이기는 했지만요. 참 짧습니다. 빌어먹을 정도로. 이 빌어먹을 정도로 짧은 횟수의 원인은...


 벌써 나온지 20년도 전이죠? 몬타나 존스에 나오던 니트로박사님의 18번 대사 "시간과 예산만 좀 더 주신다면..." 예... 돈이 웬수입니다. 돈이. 

 일단 정도전의 제작비는 109억입니다. 명목상의 가치로만 따져도 용의 눈물 160억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용의 눈물은 몬타나 존스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품입니다. 그 동안의 물가 상승도 고려해야죠. 그렇게 따지면 용의 눈물 제작비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50억은 넘을 겁니다. 이 정도면 기황후 급이죠.

 대풍수가 200억, 20화짜리 조선 총잡이 100억, 기황후 250억, 정도전 예산이 참 초라해보일 지경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잘 한 겁니다. 강병택 PD와 정현민 작가 이하 모든 제작진들을 말그대로 갈아넣고, 갈아넣어서 가루도 안 남을 정도로 갈아넣은 겁니다. 109억정도밖에 안 든 작품으로 전쟁신으로 전설을 찍고 그 동안 사극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 상당수를 뜯어고치고, 정통 사극의 새로운 부활을 알리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하긴 그 동안 대하드라마가 얼마나 죽을 써왔는지, 천추태후로부터 내려온 막장 사극 3연성으로 인해 위상이 땅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걸 고려하면 109억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부족한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열악한 조건 속에서, 그리고 용의 눈물 이래 쌓아온 위상도 거의 다 까먹은 상태에서, 말 그대로 사극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결실을 맺은 강병택 PD와 정현민 작가 및 이하 모든 정도전 제작진들, 그리고 조재현, 유동근, 서인석, 박영규, 임호, 안재모 등등 명품 연기를 선보여준 모든 배우들과 출연진들에게 정말 고마울 뿐입니다. 좋지 않은 조건에서 이런 성과를 내주었다는 것이 사극팬으로써 기쁠 뿐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징비록도 기대해보겠습니다. 징비록 역시 정도전에 뒤지지 않을 명품 사극이 되기를.

추신 : 마지막 정도전의 연설 장면은 뭐랄까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민본, 꿈 등의 주제 의식이 있었던 정도전이란 드라마의 특성을 고려하면 괜찮았다고 봅니다. 정도전이 가지고 있던 주제 의식 등을 생각해본다면 납득도 가고 괜찮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정도전의 엔딩은 강병택 PD가 장담했던 것 처럼 역대급 엔딩인지는 긴가민가 하지만 적어도 준수한 엔딩이며, 휼륭한 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 을파소 2014/06/30 21:57 #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오랜만에 볼만한 좋은 사극이었습니다. KBS가 부디 이걸 다시 잘 이어주길 바랍니다.
  • 로자노프 2014/06/30 21:59 #

    동감입니다.
  • 김수영 2014/06/30 22:41 #

    리뷰 잘 보았어요. 참고로 1997년의 160억을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이용하여 제가 만든 디플레이터로 계산해 보니, 2013년 12월 가치로는 약 265억원 정도가 되네요.
  • 로자노프 2014/06/30 22:47 #

    확실히 돈 쏟아부은 셈이군요.
  • Fedaykin 2014/06/30 22:45 #

    KBS 역사상 대박뒤에 대박이 나온적이 없어서(용의눈물->왕과비->태조왕건->제국의아침->무인시대)좀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정도전에서 했던것 만큼만 보여준다면 정말 고마울거같습니다. 더 좋아지면 말할것도없구요. KBS 화이팅입니다
  • 로자노프 2014/06/30 22:47 #

    용의누물에서 태조왕건까지는 대박 3연작이죠. 왕과 비도 성공이라고 봐야 되니까요. 일단 지켜봐야죠.
  • RuBisCO 2014/07/01 02:56 #

    흐음... 오히려 마지막 몇주 정도의 분량은 그동안 잘 해온 작품을 망치는 좋지 못한 결말이었다고 봅니다. 애시당초 상대를 부각시켜 주인공을 훼이크 주인공으로 만들어왔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을 주인공 대접 해준다고 너무 정당화 시키는 바람에 주인공과 최후의 적인 이방원 양쪽 모두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 로자노프 2014/07/01 10:44 #

    전 딱히 정당화, 평면적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역시 횟수가 문제였다고 봅니다. 좀 묘사가 부족한 부분은 있었으니까요.
  • 프리퀄 2014/07/01 13:06 #

    정도전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은 부분이 이방원 캐릭터의 평면화 부분이죠.

    물론 왕자의 난 시점 이방원 나이가 정도전이 무모하다고 까이는 시절보다 젊다는 점이라거나

    조선시대 분량의 한계나 이방원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필연적 한계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손바닥으로 가리는 게 아니라 다른 하늘을 가져와 덮어버릴 것이다.' 이 부분은 참 명대사라고 생각합니다
  • 로자노프 2014/07/01 15:12 #

    그건 동의합니다. 정말 명대사죠.
  • 위장효과 2014/07/01 15:53 #

    잘 읽었습니다.

    1. 박영규씨는 사실 연기 변신이라고 할 것도 없었죠. 원래 그만한 포텐을 가지고 있는 배우였고 그걸 숨긴 적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미달이 아빠와 주유소 습격사건의 그 찌질이 사장님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비슷하게 대접받는 배우가 백윤식씨...이분 한 때의 명연기중 하나가 변학도입니다. 진짜 변학도 연기중 그런 연기가 없었고 캐릭터에 대해서 그런 해석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하긴 이 춘향전에서는 춘향이가 이몽룡 만난 직후에 자결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 정도로 파격적이었으니. 그러다 뿌나에서 몇 회 안나온 태종연기에서 또 제대로 본인 포텐 다 터뜨려주시고- 이번에 그걸 전부다 표현해내니까 놀랐을 따름이지...하여간 간만에 박영규씨가 본인 보여줄 수 있는거 다 보여줬지요.

    2. "이방원은 왕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뿐으로 보입니다" 용눈 당시에는 원경왕후 민씨-최명길씨 당시 임신한 상태였었죠 아마...그런 몸으로 그 힘든 연기를!!!-의 모습이 그랬지요. 남편이 용상에 오르는 거, 그리고 자신이 중전이 되는 거 자체가 목적이었고 안달이 났었고...그 결과로 온 것은 자신의 네 남동생이 모조리 사사되고 아들 한 놈은 반항만 하고 세째 며느리네 친정은 자신의 친정처럼 도륙되고. 만약 거기까지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그런 권력욕에만 철저하게 매몰된 이방원만 더 부각되었을까요?
  • 로자노프 2014/07/01 16:06 #

    1. 맞습니다. 정말 보여줄 건 다 보여준 셈이죠. 덤으로 이제 미달이 아빠의 이미지는 사라진 것 같습니다.

    2. 글쎄요. 그건 모르죠. 하지만 용의 눈물 이방원은 효자의 모습과 아들 때문에 속앓이 제대로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으니까요.
  • ㅋㅋㅋ 2014/07/02 09:45 # 삭제

    아아 징비록이여! 어서 오라!
  • 로자노프 2014/07/02 16:39 #

    봐야 알겠죠.
  • 정도전 카페 2014/07/11 19:49 # 삭제

    안녕하세요~ 저는 정도전 블루레이 추진카페의 회원입니다^^ 현재 저희 카페에서 블루레이의 가수요를 신청 받고있는데 관심 있는 팬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challengej 카페에 한 번 들르셔서 블루레이 추진에 도움을 부탁드려봅니다:) 정도전 블루레이의 발매를 간절히 바라는 팬이 남기는 글이이며 혹시라고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ㅠㅠ
  • 정도전 블루레이 2014/08/17 16:39 # 삭제

    정도전 한★정★판 블루레이 홍보입니다 ^^ 드디어 오늘이 대업의 마지막 날입니다! 두달여간의 대장정이 끝나는데요... 마지막 입금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가격대비 구성이 너무나 알차서(전회차 대본집에 연말시상식 티켓, 화보집, 본방삭제씬, 한양지도, 포스터, 엽서 등등)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이리 댓글을 남깁니다^^ 블루레이의 화질 궁금해하시는 분 많으실텐데 현재로는 1920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언짢으시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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