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요동 정벌이 가능했을까?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정도전 덕에 위화도 회군이 다시 이야기되는 듯한 상황이군요. 사실 위화도 회군은 말이 많기는 합니다. 일단 회군이 우발적이었느냐 계획적이었느냐부터 해서 사불가론에... 여기서는 그런건 다 집어치우고 그냥 요동 정벌이 가능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제 의견은 불가능입니다. 이유는 명나라와 조선의 입장으로 나눠서 밑에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고려의 사정부터 보겠습니다.

 

ㄱ. 고려의 사정 (어째 모 순정만화가 떠오르기는 하는데.. 그냥 넘어갑시다.)

 

 

 ㄱ-A : 원정군의 규모

 

 일단 당시 위화도 원정군의 규모는 총 5만명이고 그 중 전투원은 대략 3만입니다. 그리고 출정 시기는 음력으로 5월입니다. 음력으로 5월이면 양력 기준으로는 6~7월이며 이는 곧 초여름, 찌는 듯한 더위와 함께 장마가 찾아올 시기입니다. 사실상 원정군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은 편입니다. 분명 적은 수는 아니지만 상대는 통일 중국인데 그들을 상대로 3만의 전투원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더군다나 학계의 연구는 이게 거의 고려의 모든 국력을 쏟아부었다는 것입니다. 인구 증가 등을 고려해야겠지만 200년후 조선이 전국에 17만의 군대를 확보했던 상태라는 걸 고려하면 당시 고려가 얼마나 내부가 엉망진창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뭐 애시당초 조선이어도 힘들 문제기도 합니다. 당장 조선 건국 후 요동에서 주원장에게 보낸 보고 중에 "조선이 30만 대군을 동원하면 요동은 못 지킵니다!"라는 보고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 30만 대군이면 요동을 도모할 수 있죠. 아니. 20만이어도 장수에 따라서는 해볼만한 도박입니다. 하지만 조선 자체도 30만 대군을 확보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여말 선초 당시 그 개막장의 고려로는...

 

 ㄱ-B : 계절

 

 더군다나 또 다른 문제는 장마입니다. 4불가론에서도 언급된 사항이지만 당시는 여름에 장마철입니다. 여름이라는 건 두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농번기이므로 한창 장정들이 농사 생각만 할 때이면서 동시에 식량이 부족할 때이며, 또 하나는 더위가 엄청나게 심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까지 주구장창 오는 장마철입니다. 한민족의 특기는 각궁으로 상징되는 활, 특히 복합궁이나 합성궁 같은 것인데 이 활을 만들때 중요하게 사용되는 아교는 습기가 많고 온도가 높은 여름철에 아주 잘~ 녹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합성궁이나 복합궁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 자체가 기온과 습기때문이라는 걸 고려해보면 그보다는 상황이 좋은 한반도라 해도 그 여름 날씨에 믿을 수 있는 무기인 활이 아작이 난다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당시 피폐한 고려의 상황이나 여름이라는 특성상 군량도 충분히 확보했을 지 의문입니다. 실제로 1차 요동 정벌도 군량 부족(사실 이건 요동성 군량 창고를 홀라당 태워먹는 사건 탓도 컸지만)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이성계 자신도 우왕의 요동 정벌을 어쩔 수 없이 찬동하게 될 때 계절을 가을로 미루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묵살당해버렸습니다.

 

 ㄱ-C :  왜구

 

 또 다른 문제는 왜구입니다. 1350년경부터 창궐했던 왜구는 1380년의 황산 대첩과 몇년 후의 관음포 전투, 그리고 일본 남북조의 내란이 점차 북조의 우위로 막을 내리는 상황 덕에 어느정도 기세가 꺾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왜구는 나름 활동적이었습니다. 실제로 4월 말 황해도 남부 연안에 왜구가 출몰했고, 원정군이 출발한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는 80척이란 적지 않은 수의 왜구 함대가 진포에 나타나 근방을 노략질합니다.

 

 물론 고려 조정도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후방 예비 부대를 어느정도 확보해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습니다. 양광도의 40여개 고을이 털려버렸고 양광도쪽에서는 "병력이 취약해 답이 없다!"는 절망적인 보고만 올릴 뿐이었습니다...

 

 ㄴ : 명나라의 사정

 

http://i.imgur.com/KkaPdpL.jpg

 

ㄴ- A : 1차때와는 상대가 다르다.

 

 사실 1차 원정은 꽤 괜찮았었습니다. 왜냐면 그 때의 상대는 다 망해가던 원나라,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원나라 잔당들 중 기철의 아들을 중심으로 한 진짜 잔당들 중에서도 일부라고도 볼 수 있는 세력이 상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군량 못 확보해서 허덕거리다 퇴각해야했습니다. 뭐 그 때야 요동지역을 일시적으로 점유하기나마 했습니다만...

 

 하지만 이제 상대는 통일제국 명나라였습니다. 이미 명나라는 어느 정도 요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거니와 결정적으로 위화도 회군 전 해인 1387년 풍승을 사령관으로 한 군대를 요동으로 투입, 금산까지 진격시켰고 결국 요동을 통치하던 북원의 군벌 나하추를 항복시켰습니다. 금산은 위의 지도 붉은 동그라미 부분입니다. 이 곳까지 20만 대군을 출전시켰는데 요동 어느 지역이든 20만 대군 정도는 투입시킬 여력이 당시의 명나라에게는 이미 충분히 존재했습니다.

 

ㄴ-B : 동맹은 없다!

 

 그래도 만약 희망을 가진다면 북원이 고려와 호응하는 일입니다. 실제 최영이 요동 정벌을 추진한 이유 중 하나는 고려 북부 변경지대에서 온 어떤 사람이 요동의 명군이 전부 북원과 싸우러 갔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명은 남옥을 지휘관으로 한 15만 대병을 몽골로 진격시켰습니다.

 

 그리고 음력 4월 12일 포어아해라고 하는 지역에서 북원군과 격돌했습니다. 포어아해는 현재 몽골-만주 국경지대 쯔음으로 비정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북원군은 말 그대로 괴멸당했고, 북원의 황제는 도주하다가 아리크부카의 후손 중 한명에게 살해당합니다. 남옥의 군대는 당당히 개선했고요.

 

 이로써 북원은 사실상 망했습니다.  사실 뭐 나하추 항복 그 자체만으로도 북원은 망했습니다. 나하추 항복 이후 20만호가 명나라에 자진투항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포어아해 전투 이후로는 무려 60만호가 넘어갔습니다. 북원 잔당 자체는 약하게나마 남아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유의미한 세력이 아니었습니다.

 

 ㄴ-C : 명나라의 동원능력.

 

 사실 위의 경우를 봐도 만약 이 상황에서 고려군이 그냥 요동으로 갔다면? 당장이야 어느 정도 잘 나가겠지만 얼마 안 가서 북원군을 괴멸시키고 사기 충전한 남옥의 15만 대군과의 결전은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당시 명의 동원력이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당장 나하추 항복시키겠다고 요동에 20만 대군을 들이밀고 1년후에는 바로 15만 대군을 들이밀었습니다. 더군다나 이후 벌어질 정난의 변에서는 명 조정 자체가 30~50만 대군을 연왕 주체를 때려잡겠다고 투입했습니다. 이런 나라한테 고려가 선빵을 날렸다.... 주원장 성격까지 고려하면 한 40만 대군이 서경으로 진격하는 것도 상상해볼만한 시나리오입니다. 이걸 고려가 막을 수 있을까요? 수나라 대군을 막아냈을 때의 고구려는 그래도 550년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나름 내부 정비를 끝내 안정을 한 지 상당한 세월이 지났을 때지만 당시의 고려는... 이인임 숙청한지 반년도 안 됬고 왜구들의 깽판이 진정(제압도 아닙니다.)된 것도 몇 년 안 됬습니다. 민생은 개판이었고... 이런상황에서 40만을 막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군요.


덧글

  • RuBisCO 2014/03/31 18:04 #

    조지아 털려나가던거 처럼 탈탈탈탈탈탈탈탈탈 털렸겠죠.
  • 로자노프 2014/03/31 21:48 #

    동감입니다. 진짜요...
  • BigTrain 2014/03/31 18:10 #

    건국 초 흥성하는 중화제국을 상대로 개겼다가 뒤끝이 좋았던 나라들이 없던 터라..

    저때 어떻게 어떻게 해서 막았다 쳐도 수 십년 뒤에 분노에 찬 영락제의 한 방이 기다렸겠죠. 영락제가 한반도를 공략했다면 진짜 지금 중국어를 쓰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 로자노프 2014/03/31 21:48 #

    독립은 했을 공산도 있는데............ 아마 나라꼴이 제대로 개판이 나있겠죠
  • 제르진스키 2014/03/31 18:13 # 삭제

    병자호란이 2백년 앞당겨 타입슬립..
  • 로자노프 2014/03/31 21:49 #

    음... 가능하겠군요.
  • 위장효과 2014/03/31 18:15 #

    람옥,풍승...그나마 주중팔 황제께서 명장 공신들 다 숙청해버리는 것만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시나리오...
  • 로자노프 2014/03/31 21:50 #

    그래도 정난의 변 과정 보면 쓸만한 애들은 존재하더란 말이죠...
  • 피그말리온 2014/03/31 19:10 #

    세종대왕도 4군6진 우리나라 땅으로 편입하는데 애먹었는데 여말의 그 나라 상황에서 뭔 수로 요동을 편입할 수 있었을지...
  • 로자노프 2014/03/31 21:50 #

    못합니다...
  • Fedaykin 2014/03/31 19:16 #

    근데 대체 최영은 왜 요동정벌을 강경하게 주장했을까요.
    뭘믿고?
  • Grenadier 2014/03/31 19:39 #

    일단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대고려의 위상을 드높히기 위해서라고 설정했지요
  • Fedaykin 2014/03/31 19:41 #

    최영 환빠설?!!
  • 로자노프 2014/03/31 21:51 #

    Fedaykin// 음... 일단 명나라 요구에 분격한게 클 듯 합니다. 애시당초 최영이 반명주의자였고요.


    Grenadier//그렇게 나오긴 했죠.
  • 잠꾸러기 2014/03/31 19:23 #

    요동에 점 한번 잠깐 찍고 5만명은 공중증발 했을듯...
  • 로자노프 2014/03/31 21:51 #

    동감입니다.
  • Real 2014/03/31 20:14 #

    근본적으로 요동성과 그 주변이 만주로 들어가는 유일 핵심의 전략적 기동로이긴하지만 우회 기동로가 보조적으로 상존한다는 점에서 병력다수가 있는 명이 주력 일부만 돌려서 압록강을 도하해서 기동한다면 고려로서는 방어전을 수행하기 힘들 가능성이나 1차 몽골침입때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죠. 실제 1차 몽골침입당시 귀주성에서 발이 묶였던 몽골군이 주력 일부를 남하하자마자 고려의 전략종심타격을 했었던 전례도 답이 될수 있을듯 합니다.
  • 로자노프 2014/03/31 21:52 #

    일단 귀주성의 경우는 좀 복잡한게 고려군이 소규모 야전에서 승리 후 자신있게 야전으로 개겼다가 개박살난 것도 한몫해서요. 뭐 그래도 나머지 부분은 동감입니다.
  • 공손연 2014/03/31 20:23 # 삭제

    임진왜란때의 17만은 야전전투능력을 가진 정병들이 아닙니다.

    그 이전의 여요전쟁때의 20만하고 동북9성을 확보할때의 17만의 병력들이 상당수가 정병이었을 확률이 높지 임진왜란때의 조선군은 수성전외에 그닥 쓸만한 전력이 아니고 저 5만중에 3만정도의 정병을 확보하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제 생각엔 조사의의 난을 정벌할때 태종이 이끈 4만명이 조선역사상 최강의 군대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그만한 동원력과 야전에 전개한 최대의 전력은 없었으니까요. 임진왜란때의 명군이 오기전까지는 제대로 모여서 일본군을 진공할만한 전력이 아니었죠.
  • 로자노프 2014/03/31 21:54 #

    17만은 분명 정병은 아닙니다만 상시 소집 및 동원 가능한 거의 최대 병력이었습니다. 번동아제님이 전에 하신 말씀이 있던데... 그리고 당시의 고려 상황을 보면 한 6~7만이 한계입니다. 당장 위화도에 주력 가있을때 왜구 막겠다고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모아서 모은병력이 겨우 수천이었거든요.
  • 공손연 2014/03/31 22:12 # 삭제


    원래 조선이나 고려나 최대치가 대체로 20만쯤이었습니다. 망하나 흥하나 말이죠.

    국내로 칩임한 적을 격퇴하려고 하면 20만 정도는 나오는것이지 조선때의 17만이 큰것이 아닙니다.

    위회도회군이 있기전에 홍건적이 침입할때도 소집한 병력이 20만이었습니다.

    결국 위화도회군의 5만과 임진왜란시기의 17만은 성격이 다릅니다.
  • ㅋㅋㅋ 2014/03/31 20:52 # 삭제

    개소리 작렬하네. 북원 잔당한데 60만 대군이 탈탈 털리고 황제라는 새끼는 사로잡히고 왜구 하나 못막아서 전 국토가 탈탈 털리던 접밥 명나라가 그리 대단해보이냐? 수만 많으면 장땡? 너같은 식민빠놈들은 그래서 아무것도 안된다는거야 뭘 평생해도. 심지어 거지질을 해도 실패하지. ㅉㅉ
    북원 막기도 핵핵대던 명나라가 잘도 조선까지 치러왔겠다.
  • ... 2014/03/31 21:02 # 삭제

    미국 / 탈레반 전쟁에서 탈레반이 패할거라고 예측해도 일부의 눈에는 패배의식으로 비치겠죠.
    압니다. 그렇고 말구요.
  • jakethedog 2014/03/31 21:33 #

    왜구하나 못막아서 탈탈털리는건 고려도 똑같지않음?
  • 로자노프 2014/03/31 21:53 #

    ㅋㅋㅋ// 환빠 사절. 애시당초 그 에센이 황제 잡은 후 베이징 공격하다가 쳐발리고 황제까지 토해놓고 그냥 간 건 모르나 봄.

    ...// 옳으신 말씀

    jakethedog// 그렇기는 합니다.
  • ㅎㅎ 2014/04/10 13:12 # 삭제

    토목의 변과 명 건국초기는 상황이 다른데 너무 공부부족 아님?
    환빠라도 공부는 해야지 ㅎㅎ
  • 을파소 2014/03/31 22:48 #

    참 묘하게도 위화도 회군 때 뿐만 아니라 "그 때 만주를 찾았어야 해."하는 순간은 정작 교전상대국이 한참 전성기일 때가 많단 말이죠.
  • 로자노프 2014/03/31 23:05 #

    그러게나 말이죠.
  • 손님 2014/03/31 22:58 # 삭제

    당시 17만은 사실상 명목상 17만일 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군의 주체인 정병이 노역꾼화 되던 시절이라...
  • 로자노프 2014/03/31 23:07 #

    어디보자 번동아제님이 단 덧글이 있었는데...http://rozanov.egloos.com/805273 여기 참고해주세요.
  • 손님 2014/04/01 03:42 # 삭제

    오, 제가 봤던 자료는 대체적으로 정확한 모양이군요. 육군연구소에서 편찬한 것이라 어디까지 믿어야하나 생각했는데...
  • ㅂㅈㄷㄱ 2014/04/01 01:07 # 삭제

    조선이나 고려나 10~30만 정도가 병력 동원선인데 구한말 서양이나 일본의 침공에는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까요...(의병 정도는 있었지만) 구한말 상태가 좀 안좋긴 했지만 고려말에도 저 정도 병력을 모은거 보면 뭔가 일을 벌이는 것도 가능은 했을텐데...(근대화된 군대와 전근대적 군대의 격차가 심하긴 하지만 너무 저항 없이 무너진거 보면...)
  • 로자노프 2014/04/01 09:11 #

    조선말은 고려말과 비슷한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그냥 국가체제가 처절하게 붕괴된... 그나마 흥선대원군이 좀 정비를 해놨는데 고종과 명성황후가 그걸 더 악화시킨 상태라...
  • 2014/04/01 02:13 # 삭제

    려말선초때 요동을 회복할 수 있었으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성립되었어야 합니다.

    1.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계승해 줄 괜찮은 군주가 한명 혹은 그 이상이 나와주고 개혁에 성공한다.

    2. 명이 원을 화북평원에서 몰아내지 못하고 옥신각신을 15세기 초반까지 끈다.

    3. 그러는 와중에 고려는 내적으로 개혁에 성공하고, 제대로 정비된 군과 보급시스템을 기반으로 반원정책을 취하며 요동정벌을 해 나가, 나하츄가 고려에 항복하게 만든다.

    4. 그리고는 명과 동맹을 맺어 여, 명 연합군(혹은 왕조가 바꼈다면 조선, 명 연합군)이 북원을 몰아내고 요하이동이 고려 혹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받는다.

    결국 고려가 개혁에 실패하고 피폐해져 있었을 뿐더러 명이 너무 빨리 원을 몰아내며 급성장했기에 설사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요동을 잠시 점령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지켜내기는 불가능 했으리라 봅니다.
  • 로자노프 2014/04/01 09:11 #

    그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 無碍子 2014/04/01 10:22 #

    http://soakaeofh.egloos.com/m/5144475
    고려의 요동정벌은 택도아닌 망상에 불과합니다.
  • 로자노프 2014/04/01 15:40 #

    맞는 말씀입니다. 일단 보급 역량부터 딸리는 판인데
  • 갈리아 촌놈 2014/04/02 10:50 #

    만약에 억지로라도 요동근처를 공격해서 먹은 다음... 최대한 빨리 서쪽에서 티무르가 명을 치러 왔다면 승산이 있었을까요...? 아, 시대가 안맞는 구나...
  • 로자노프 2014/04/02 15:32 #

    시대가 안 맞죠...
  • 지나가다 들른놈 2014/04/18 01:55 # 삭제

    요동정벌이 성공하려면 일단 중국이 5호 16국수준으로 돌아가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왜구의 침입도 없어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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