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바다쇠오리. 몸길이 약 80cm, 몸무게 약 5kg에 이르던 도요목 바다쇠오리과의 큰바다쇠오리 속에 속한 이 종은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섬에서 영국, 아일랜드 해안가를 아우르는 북대서양 및 북극해 지역에 서식했다. 다만 화석 자체는 이탈리아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기에 빙하시대에는 더 넓은 지역에서 분포했던 걸로 보인다. 사람들은 이 새를 펭귄이라고 불렀는데 훗날 이 이름은 남극 및 남반구에 사는 몇몇 닮은 새들이 물려받게 되었다.
큰바다쇠오리의 날개는 퇴화된 까닭에 작았고, 따라서 이들은 날 수가 없었다. 대신 이들의 날개는 수영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치 펭귄처럼. 그리고 부리와 눈 사이에 흰 반점이 있었고, 부리에는 7개의 홈이 파여져있었고 울음소리는 낮게 까악까악 거렸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바다에서 날개를 이용해 수영을 하며 물고기, 갑각류, 두족류 등을 잡아먹었다. 바다에서 헤엄을 칠 때는 상당히 재빨랐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1년에 한 번 절벽으로 올라가 바위 위에 1개의 알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황백색 바탕에 검은 점이나 줄무늬가 있던 이 알은 수컷과 암컷이 교대로 품었으며, 부화에는 6~7주가 걸렸다.
이 새는 선사시대부터 인간들에게 사냥당하기 시작했다. 이 새는 좋은 사냥감이었는데 이 새가 인간에게 전혀 공포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고 인간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큰바다쇠오리는 지방과 고기, 깃털을 얻으려는 사냥꾼들에게 남획되기 시작했고, 이런 경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필 큰바다쇠오리는 알을 1년에 1개밖에 낳지 않았고 이런 습성 덕에 큰바다쇠오리의 수는 나날히 줄어갔다.
대항해시대 들어서 이런 사냥은 계속되었다. 탐험가들은 이들을 식량으로, 어부들은 이들의 고기를 물고기 등을 잡을 미끼로 쓰기 위해 이 새들을 마구잡이로 사냥했고, 1750년대에는 이미 큰바다쇠오리는 찾아보기 힘든 새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표본, 박제가 희소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곧 큰바다쇠오리를 잡는게 돈이 된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이 새는 1820년대에는 아이슬란드의 가이르풀라스케어섬에서만 생존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주기적으로 뱃사람들이 그 섬을 들러 새들을 사냥했다.
문제는 아이슬란드는 화산 활동이 활발한 곳이었고, 그 섬은 화산섬이었다는 것이었다. 1830년 화산이 터졌고, 이 섬은 가라앉았다. 큰바다쇠오리들은 약 50마리 정도만이 남았고, 이들은 엘데이라고 알려진 암초, 혹은 작은 바위 섬으로 터전을 옮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곳으로 옮긴 그들을 계속 사냥했다.
그리고 1844년 6월 3일 혹은 6월 4일. 마지막 큰바다쇠오리가 잡혔다. 이 새는 알을 품고 있는 상태였는데 알은 버려졌다. 이후 한동안 목격 정보가 전해지기도 했지만 불확실한 것들 뿐이었고, 현재는 일부 박제와 뼈, 알 껍질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덧글
타조가 아프리카에 산다는 것만 빼면...
그리고 닭 거위 종류 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