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유목민들 외전. 스뱌토슬라프 1세 이야기.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어린 대공>

 유럽의 유목민들 연재에서 간간이 언급됬던 스뱌토슬라프 1세. 그는 키예프 대공 이고르와 올가 사이에서 942년 경 태어났다. 그런데 945년 그의 아버지 이고르가 조공을 독촉하다가 그에 불만을 품은 슬라브인들에게 암살되고 만다. 졸지에 어린 스뱌토슬라프가 대공이 되었고 어머니 올가가 섭정을 했다. 상당히 당찬 여인이었던 그녀는 남편을 살해한 슬라브 부족을 제압하면서 어린 대공이 존재하는 키예프 공국을 아무 무리 없이 운영하였다.

 그녀는 비잔틴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957년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고 그 곳에서 개종하였다. 이야기에 따르면 콘스탄티노플에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아들 스뱌토슬라프에게 개종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뱌토슬라프는 "개종을 하면 종사들이 자신을 비웃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개종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전통 신앙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원초 연대기에 의하면 자신의 영토 안에 존재하던 기독교도, 유대교도, 이슬람교도들을 박해했다고 전해진다.

 <스뱌토슬라프의 외양>


- 오스프리에서 묘사한 스뱌토슬라프의 모습 -

 비잔틴 역사가들은 키예프 대공 스뱌토슬라프 1세의 외양에 대해 기록했는데 그 기록이 꽤나 특이하다. 비잔틴 역사가들에 의하면 스뱌토슬라프는 머리를 싹 밀고 단지 권위의 상징으로 귀 뒤로 한가닥 긴 머리카락을 남겨놓았다고 한다. 이런 외양은 비잔틴 역사가들이 공언하듯이 튀르크인. 즉 유목민들을 연상시켰다. 정작 스뱌토슬라프 자신은 루스의 지배자라던가 콘스탄티노플의 지배자를 원했지만 이런 외양은 아직도 러시아지역이 스텝의 유목민들의 영향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초창기처럼 루스의 지배자들이 카간 칭호를 사용할 만큼의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외에도 비잔틴 역사가들은 그가 아주 깨끗한 흰 옷을 즐겨 입었으며 주변 시종들의 옷보다도 희고 깨끗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키는 중간이며 수염은 중간 정도인데 제멋대로 길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흰 옷을 제외하고 이런 류의 묘사는 그의 거친 면모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자르 공격 - 미래의 재앙을 부르다.>

 스뱌토슬라프 1세는 성년이 된 후 군사 원정을 추진하였다. 그의 1차 목표는 아직 볼가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던 하자르족과 볼가 불가르였다. 그는 아버지가 그랬듯이 정복자로서의 명성을 얻기를 원했으며 동시에 볼가강 일대의 무역로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그는 오구즈인들 및 페체네그족을 끌어들이며 원정을 준비했다.

 965년 그의 군대가 드디어 출진하였다. 그는 먼저 북진하여 모스크바 남쪽의 바타치야 인들을 복속시켰다. 이후 볼가 불가르의 군대를 격파하고 남하하여 하자르제국의 수도인 이틸을 함락, 파괴했다. 그 뒤 그는 하자르족이 바이킹들을 통제하고자 돈강에 건설했던 사르켈 요새를 불태우고 크림 일대의 하자르 도시들을 공격했다.


 - 하자르족을 짓밟는 스뱌토슬라프 1세 -

 하지만 이 원정은 하자르제국을 박살내기는 했지만 스뱌토슬라프가 원하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러시아인들이 볼가강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은 17세기의 일이었고 스뱌토슬라프는 볼가강 및 북카프카스를 장악하는데 실패했다.

 더군다나 이 원정의 진정한 문제점은 하자르족의 몰락으로 스텝은 이제 하자르보다 좀 더 호전적인 페체네그 및 오구즈인들과 관계된 쿠만족의 지배를 받게 됬다는 것이었다. 페체네그 자체야 이미 이틸이 파괴될 때부터 이미 러시아와 치고박고 했으니 문제가 안 되지만 하자르의 통제하에 있던 오구즈의 독립. 그리고 그 오구즈에서 갈라져나온 쿠만족이 훗날 러시아의 여러 공국들을 쥐어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스뱌토슬라프의 하자르 원정은 미래의 재앙을 불러왔다고 밖에 평할 수 없다. 물론 이 재앙이 러시아 공국들에게 닥치는 것은 100년이상 걸렸지만.

 <불가리아 원정>

 스뱌토슬라프의 활약을 인상깊게 지켜본 비잔틴의 황제 니케포루스 2세는 966~967년경 키예프로 돌아온 스뱌토슬라프 1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 제안은 바로 불가리아를 정복하라는 것이었다.

 스뱌토슬라프는 그 제안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6만의 군대를 소집해 불가리아 원정에 나섰다. 키예프 공국 군대는 실리스트라 전투에서 불가리아군을 대파하고 다뉴브강을 도하한 후 불가리아를 빠른 속도로 접수했다. 이 속도를 본 콘스탄티노플 궁정은 상당한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은 결국 페체네그족을 설득하여 그들이 키예프를 공격하게 했다. 스뱌토슬라프는 어쩔 수 없이 키예프로 귀환했고 페체네그군대는 후퇴했다. 당시 죽음을 앞두고 있던 올가는 겨우 돌아온 아들에게 키예프에 남아있으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스뱌토슬라프 1세는 그 유언을 어기고 다시 불가리아 원정을 개시했다. 그는 신임 차르 보리스를 생포하고 불가리아의 수도 프레슬라프에 연금했다. 사실상 불가리아를 정복한 것이다.

 그는 불가리아를 정복한 후 이 곳이 온갖 물산의 집산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친김에 불가리아 지역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콘스탄티노플까지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그에게 불가리아 공격을 사주했던 니케포루스 2세가 살해됬기 때문에 이는 딱 좋은 기회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신임 황제 요한네스 1세는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바보가 아니었다.

 <굴욕, 그리고 최후>

 스뱌토슬라프느 970년 마자르족, 불가리아인들까지 포함한 대군을 모아 트라키아로 진격했다. 그는 아예 콘스탄티노플까지 점령할 계획이었다. 그들은 필리포폴리스를 점령하고 2만명의 시민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곧 아르카디오폴리스에서 이들은 비잔틴 주력군을 만났다. 그리고 비잔틴 군대는 이들을 대파했다.

 이듬해 요한네스 1세는 이 기회에 키예프 공국의 군대를 불가리아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하고 대군을 움직였다. 비잔틴의 함대는 다뉴브강으로 이동해 키예프 공국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기로 하고 육군은 남쪽에서 밀고 올라오기로 했다.

 마침 불가리아 내에서는 키예프 공국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나 내부가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비잔틴 제국 군대는 불가리아의 수도 프레슬라프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불가리아의 차르 보리스를 탈취,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했다. 안되겠다 싶은 스뱌토슬라프는 불가리아 귀족 300명을 처형하는 한편 다뉴브 강변의 도로스톨론으로 후퇴, 그 곳에서 결전을 치루고자 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 군대는 카탁프락토이들을 돌격시켜 키예프 군대를 가볍게 격파하고 도로스톨론을 포위했다. 다뉴브강 자체도 비잔틴 함대에 의해 물샐틈 없이 봉쇄되었기에 퇴로는 없었다. 스뱌토슬라프 1세는 포위를 풀기 위해 몇 차례 공격을 감행하며 3개월간 농성했지만 포위망은 너무나도 튼튼했다. 결국 그는 요한네스 1세에게 항복했다.

File:Lebedev Svyatoslavs meeting with Emperor John.jpg

- 으으.. 분하다. 천하의 스뱌토슬라프가 이 꼴이 되다니. -

 스뱌토슬라프는 비잔틴 제국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불가리아를 포기하며 키예프로 귀환한다는 조건의 평화협상을 요한네스 1세와 맺었다. 사실상의 항복이었다.

 이후 그는 페체네그족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 페체네그족의 족장은 그의 두개골을 유목민들의 전통대로 술잔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먼저 러시아측 기록은 비잔틴 제국의 사주를 받은 페체네그족의 기습으로 전사했다고 적고 있고 비잔틴 제국은 동맹을 맺었던 페체네그족의 전리품 분배 요구를 스뱌토슬라프가 패전을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답변하자 분노하여 기습했다고 적고 있다. 어찌 되었든 그는 기습을 받고 죽었고, 두개골은 술잔이 되었다. 정복자를 꿈꾸었던 자의 처참한 말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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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et진보 2012/02/14 23:28 #

    그래서....술잔이...........
  • 로자노프 2012/02/14 23:33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일 뿐입죠.
  • 대공 2012/02/14 23:29 #

    어린.....
  • 로자노프 2012/02/14 23:33 #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 대공 2012/02/14 23:34 #

    어린 '대공'
  • 로자노프 2012/02/14 23:46 #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eathKira 2012/02/14 23:46 #

    정복자를 꿈꾸었고, 나름 잘나가고 있었지만,
    상대였던 비잔티움이 마침 한가닥하는 장군출신 황제였던 게 안습이군요.
    니케포루스 2세-요한네스 1세-바실리우스 2세 라인은 전쟁에 있어선 거진 패배를 몰랐으니..

    적당히 비잔티움이랑 화친하면서 주변 애들을 공략하는 방면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정도 식견이 없었다고 밖엔..
  • 로자노프 2012/02/14 23:47 #

    뭐... 애초에 불가리아를 공격하는 수준이 아니라 집어삼킨 순간부터 비잔틴은 불가리아 원정을 계획했던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애초에... 불가리아를 아예 접수하지만 않았으면 좋았죠.
  • 눈시 2012/02/15 03:38 #

    댓글은 안 달고 있었지만 (아 그 손 거두시지요) 참 이런저런 무리가 있었네요.
    노마드 어쩌고에 대한 반발인지 그냥 무지인진 몰라도 유목민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거든요

    잘 보고 갑니다~

    암튼 두개골 술잔의 인기는 참 ㅡㅡ;
  • 로자노프 2012/02/15 11:12 #

    유목민들의 오랜 전통이죠... 두개골 술잔은...
  • 모에시아 총독 2012/02/15 08:36 #

    야심이 있었고 어느 정도 능력도 있었지만 주변보다는 떨어졌기에 안습해진 케이스였군요. 하필 그 시기 동로마를 자극했던 게 패착이라고 봅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주력이 박살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 로자노프 2012/02/15 11:12 #

    그렇죠. 뭐.. 애초에 불가리아를 약화시키랬지 아예 통째로 집어삼킨순간부터 예고된 거겠습니다만.
  • 오스왈드 2012/02/15 09:17 # 삭제

    그 일 때문에
    그의 아들대에 러시아는 정교회로 개종하죠
  • 로자노프 2012/02/15 11:12 #

    뭐 그것도 있긴 하죠.
  • 아무것도없어서죄송 2012/02/15 12:32 #

    두개골 술잔 그런방법도 있었군요.
  • 로자노프 2012/02/15 17:27 #

    유목민들의 오랜 전통이지요.
  • 시신 2012/02/15 15:04 #

    당시 비잔티움이 아주 전성기였기에... 말씀대로 본인 능력도 있었지만 안습이죠.
  • 로자노프 2012/02/15 17:27 #

    그러게나 말이죠.
  • 셔먼 2012/02/15 19:01 #

    그러니까 엄마 말 안 들으면 저렇게 되는 겁니다(...).
  • 로자노프 2012/02/15 22:20 #

    참으로 명언입니다.
  • 유리멘탈 2012/02/15 23:09 #

    어른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게 괜한 말이 아닙니다(...)
  • 로자노프 2012/02/15 23:13 #

    그러게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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