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다뤄보는 30년 전쟁 당시 각 국의 손익 결과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사실상 초간단하게 다뤄보는 거라 틀리거나 한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양해 바랍니다. 직접 참전국은 진하게, 그렇지 않은 나라는 색깔만 입히겠습니다.

<신교도>

프랑스 :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알자스 및 로렌 일부 지방에 대한 영유권 획득. 동시에 30년 전쟁 및 그 뒤에도 계속된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스페인을 완전히 몰락시키고 유럽의 패자로 부활. 다만 이 전쟁으로 앙리 4세시절부터 쌓아온 엄청난 재정을 다 까먹음습니다. 거기다가 프롱드의 난이 터지면서 한동안 내부 수습에 전념해야 했습니다. 물론 내부 수습 끝난 뒤에는 깡패 모드.

스웨덴 : 베스트팔렌 조약 결과 브레멘 및 서포메라니아 등 북해 및 발트해 연안 지역 다수를 획득합니다. 스웨덴은 많은 피를 흘렸지만 이로써 엄청난 무역 관세를 확보하며 재정적 만회도 합니다. 겸사겸사 황제한테서 배상금도 받아냈지요. 이로써 스웨덴도 이제 당당히 유럽의 1류 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헤센-카셀 : 용맹하게 싸운 미망인 여백작 엘리자베스는 그 대가로 헤르스펠트 등의 일부 영토를 획득한 동시에 황제한테서 배상금도 받아냅니다. 이 정도면 나름 성과를 본 셈이죠.

팔츠 : 문제의 프리드리히 5세는 이미 죽었지만 그 아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 결과 팔츠 선제후령 중 하 팔츠만이 반환되고 상 팔츠는 바이에른 소유로 결론났지만 선제후 자리는 확보합니다.

영국 : 얻은 것이 없습니다. 팔츠 선제후의 복귀를 위해 외교적 접촉도 하고 자금을 어떻게든지 대어본다든지, 군대를 고용한다든가 하는 행동을 보였지만 이 모든 행동이 30년 전쟁 내내 그다지 성과가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1642년부터 국왕과 의회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워댄 판이라 콩고물을 바랄 수도 없었습니다. 결론은 삽질.

트란실바니아 : 30년 전쟁 내내 가끔가다가 기병대 보내서 헝가리 등을 약탈하며 신교도측을 지원했습니다만 약탈물들을 제외하면 그다지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초창기에는 헝가리 왕관을 탈취하며 헝가리 왕을 칭하네 마네 하는 상황까지 갔지만 그 때를 제외하면 합스부르크에 대한 일련의 공세는 그다지 성과가 없었습니다.

네덜란드 : 전쟁 당시 신교도측을 지원하면서 스페인과의 전쟁에 주력합니다. 그리고 결국 스페인으로부터 독립도 인정받았습니다. 더군다나 30년 전쟁 자체가 신교도측에게 나쁘지 않게 끝났으니 네덜란드로서는 꽤 이득 본 셈입니다.

덴마크 : 사실 이 친구는 애매한게 초반에는 신교도 편으로 참전했다가 틸리, 발렌슈타인에게 역관광 당했지요. 나중에는 스웨덴 견제 차원에서 신성로마제국이나 스페인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토르스텐손에게 개털리면서 이제는 스웨덴에게 국력이 밀린다는 것을 인증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 땅도 상당부분 빼았기고... 안습이 되버립니다.

<카톨릭>

스페인
: 스페인 길의 유지와 카톨릭 세력 유지를 위해 여러차례 군대를 보내 개입했지만 잇따르는 전쟁으로 스페인 재정 파산. 더군다나 무적의 테르시오조차도 로크루아에서 패배했고... 결국 네덜란드의 독립을 인정해야 했고 이 30년 전쟁 및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스페인은 이제 유럽의 패자 자리를 잃고 2류 국가 신세가 됩니다.

오스트리아 : 처음에는 신교도측을 연파하면서 황제권과 각 제후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듯 싶었으나 스웨덴, 프랑스의 참전 이후로는 허구한날 깨지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결국 그 결과 루세티아를 상실하고(어차피 초반부터 작센에게 넘겨주기로 되었지만) 영토의 상당 부분은 초토화. 스위스는 독립, 거기에 스웨덴과 헤센에게 배상금도 물어주고... 스페인만큼은 아니지만 손해가 막심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오스트리아는 쩌리에 가까운 상태가 되지요.

바이에른 : 영토 자체가 몇번 약탈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는 양호했습니다. 작센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고 이 전쟁 결과 상팔츠를 획득하고 선제후 자리도 얻었습니다.(단 선제후 개인 재산은 꽤 탕진한듯) 그래도 바이에른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만큼은 아니라도 독일 정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힘은 유지했습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 초반 황제의 요청으로 트란실바니아를 기습했다가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는 등 폴란드는 전쟁에 개입하려고 하다가도 여러 주변 상황 덕에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못했습니다. 협박을 통해 구스타브가 삥뜯었던 3개의 항구 도시를 되찾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나 스웨덴에게 패배한 타격이 큰데다가 1648년에 코사크 대봉기가 터지면서 폴란드도 이제 동유럽의 패자에서 하차하게 됩니다.

교황 : 교황은 좀 애매한게 분명 친카톨릭 세력의 편이기는 했으나 정작 이 시기 가장 오래 즉위한 우르바누스 8세는 스페인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위인이라 열성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 몇몇 문구에 반대하기는 했지만 교황청도 전쟁에 질려서 형식적인 수준이었고 대신 조약 이후에는 교회령이 세속제후령으로 전환되는 일은 없어야 된다는 점을 관철시켰습니다.

<기타>

작센 : 30년 전쟁 최고의 피해자. 초반에 카톨릭 편을 들다가 마그데부르크 학살 이후 스웨덴 편을 들지만 정작 스웨덴에게는 군사적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뤼첸 전투 이후로는 배신. 당장 황제가 유리해보였기에 내린 결정이지만 이에 대한 스웨덴의 무지막지한 보복으로 국토는 쑥대밭으로 변합니다. 결국 작센은 1645년 백기항복. 조약 결과 그래도 루세티아랑 마그데부르크의 일부를 얻기는 했지만 국토가 완벽한 쑥밭이 되버린지라 쩌리 신세가 됩니다. 참고로 작센은 전쟁 전에는 가장 강력한 신교도 제후 중 하나이자 북독일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니...

브란덴부르크 :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나 힘이 약했던 관계로 스웨덴이 총구를 들이밀자 스웨덴의 동맹으로 가담. 뤼첸 전투 이후 배신하지만 역시나 스웨덴의 보복으로 나라가 난장판이 됩니다. 그래도 1640년 즉위한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얼른 평화협상을 맺고 전쟁에서 발을 빼면서 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 이것과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능력이 결합되어 전쟁 이후 브란덴부르크는 강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오스만투르크 : 오스트리아나 폴란드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트란실바니아가 오스트리아를 치는 것을 방관하고, 폴란드와 전쟁을 치루기는 했지만 이 당시 오스만의 관심사는 사파비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를 두고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고로 오스만은 그냥 콧노래만 부르고 있었다고 봐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