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유목민들 6. 알란과 불가르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알란의 초기 역사>

그 동안 이 글을 연재하면서 다룬 시간은 벌써 몽골의 침입 직전까지가 되었다. 하지만 잠시 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상당히 오랫동안 거꾸로 돌려야 한다. 그렇게 거꾸로 돌리고 돌려서 기원전까지 돌려야한다. 왜냐면 지금 다룰 민족의 기원은 기원전부터이기 때문이다. 그 민족의 이름은 알란이다.

 알란족은 기원전 3세기 경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출현한 인도-유럽어계의 민족이었다. 이들은 아랄해 북쪽에 살고 있었으며 주변지역에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려 그들이 알란에 대해 기록하게 했다. 이런 기록 중에는 놀랍게도 사마천이 지은 사기도 포함되어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알란을 엄채(奄蔡)라고 불렀는데 알란의 음차로 보인다. 사기에 따르면 엄채는 강거에서 북서쪽으로 2천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그 풍속은 강거와 유사하고 10만의 궁수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훨씬 후대에 지어진 후한서는 그들이 강거에 예속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들도 알란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스트라보 역시 페르시아의 기록에 의거하여 알란족에 대해 기록했다. 

- 1세기 경 돈강 유역에서의 이동. 1번은 알란 귀족. 2번은 젊은 사르마티아 전사 -

 이 알란족은 사기에 기록되었을 때까지는 아랄해 북쪽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서기 1세기 경 카프카스 산맥 북쪽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아오르시를 흡수하고 사르마티아의 일원이 되었다. 위략에 따르면 이 시기에 알란족은 강거의 예속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들은 로마 및 로마에 복속된 보스포로스 왕국과 경계를 맞닿아있으면서 사르마티아의 주도적인 부족으로써 흑해 북쪽 스텝지대를 지배하였다. 요세푸스 등 당시의 로마 역사가들이 이 사실을 공인하였다. 

- "저 놈들 뭐야?" "몰라. 저거 무서워." -

 그러나 우크라이나 평원지대는 서기 3세기 경 고트족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4세기 중반에는 훈족이 밀려들어왔다. 알란족은 훈족에게 패배하여 예속하거나 도주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부는 독일 지역으로 도주했고, 또 다른 일부는 발트해 유역이나 볼가강 북쪽으로 도주하였으며 일부는 북카프카스지역에 남아 훈족의 예속하에 들어갔다.  

 <알란의 대이동>

File:Alani map.jpg

- 본격 훈족 피해 3만리 jpg -

 볼가강 북쪽이나 발트 유역으로 도주한 알란인들은 곧 해당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일로 도망쳤던 알란족은 훈족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반달족등과 함께 406년 서로마와의 국경지대인 라인강을 넘어 갈리아를 침공한다. 이 때 알란족은 두갈래로 갈렸는데 한 갈래는 그대로 갈리아에 남았다. 갈리아에 남은 알란족은 북프랑스 일대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하나의 세력을 이루었으며 알란의 군주였던 상기반은 서로마, 서고트와 동맹을 맺고 아틸라를 상대로 카탈라우눔에서 회전을 벌이기도 했다.(1) 하지만 갈리아의 알란족은 프랑크와 서고트의 세력 확장의 틈바구니에 끼어 5세기가 끝나기 전에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북프랑스 일부 도시들의 지명에서 알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반면 또 다른 갈래는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했다. 409년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한 알란족은 이베리아 반도 중부 및 남부지역을 장악하고 나름대로의 세력을 과시하는데 성공했다.

File:Alan kingdom hispania.png

- 군웅할거 ver 이베리아 반도 -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에 조금 늦게 몰려온 서고트족의 힘이 강성해지며 이베리아의 알란 왕국은 곧 위기를 맏는다. 426년 알란족의 왕 아타세스는 서고트족에게 패배해 전사하였고 안되겠다 싶은 알란족은 반달족의 왕 군데리크에게 투항하며 그에게 알란족의 왕위를 넘겨주었다. 하지만 반달-알란 연합군으로도 서고트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 마침 서로마제국에서는 아에티우스가 정적 보니파키우스를 없애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음모로 인해 궁지에 몰린 보니파키우스는 429년 군데리크의 동생이자 신임 반달과 알란의 왕 겐세리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겐세리크는 곧 그 요청을 승낙하고 보니파키우스의 근거지인 아프리카로 군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반달-알란 군대가 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아에티우스의 음모가 탄로가 나면서 보니파키우스의 세력이 라벤나를 장악한 것이다. 보니파키우스는 이제 반달족이 필요가 없었고 단숨에 반달족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겐세리크는 어차피 자신의 세력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서고트에 밀려 위축되고 있었기에 아예 이걸 기회로 이베리아를 포기하고 대신 북아프리카에서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반달족은 430년 히포 레기우스를 점령했고,(2) 잠시 서로마랑 화해했지만 439년 카르타고를 점령했다. 이 북아프리카의 반달-알란 왕국은 한 때 로마를 약탈하며 위세를 떨쳤지만 유스타니아누스 대제가 보낸 벨리사리우스의 군대에 패배해 533년 멸망하고 말았다.

 <알라니아>

 한편 북카프카스에 남아있던 알란족은 아틸라 사후 훈족의 지배하에서 벗어났다. 마그하스를 수도로 한 이들은 나름대로 평화롭게 지냈지만 7세기경 아랍의 세력이 북상하면서 위기에 빠진다. 알란족은 마침 주변에서 세력을 성장시키고 있던 하자르에 예속되면서 하자르와 함께 아랍 군대와 싸웠다. 우마위야 왕조의 군대와 알란족은 여러차례 충돌했으며 하자르의 지원덕에 알란과 우마위야의 다툼은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File:Pontic steppe region around 650 AD.png

- 7세기 경의 국제 정세. 노란색이 알란이다. -

 한편 알란은 9세기 경 비잔틴의 영향으로 정교회를 받아들였다. 일부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것 같지만 알란족 대다수는 정교회를 받아들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후 알라니아를 둘러싸고 하자르와 비잔틴은 약간의 대립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하자르 제국이 붕괴되면서 알라니아는 하자르의 예속에서 벗어나게 된다. 알라니아는 러시아 공국들이나 조지아 왕국과 통혼하면서 나름의 세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File:Nicephorus III and Maria of Alania BnF Coislin79 fol2bis.jpg

 - 알라니아의 마리아와 그녀의 남편인 비잔틴 제국의 황제 니케포루스 3세. 마리아의 경우 본래 조지아의 공주지만 그 모친은 알라니아의 공주였기에 알라니아의 마리아라고 불렸다. -

 하지만 13세기경 몽골족이 밀려왔다. 수부타이와 제베의 침공때 알라니아는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바투를 총사령관으로 한 군대가 1237년 볼가강 서쪽의 스텝지대로 몰려오자 알라니아는 이제 타타르의 멍에를 쓰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14세기 후반 티무르가 몰려오며 알란족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카프카스의 여러 민족들 중 하나로 체첸 등 주면의 다른 민족들과 달리 정교회를 신봉하며 친러시아적 행동을 보이는 오세티야인으로써 이들은 아직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때 일부는 쿠만족과 함께 헝가리로 도주하였다. 이들은 헝가리 중동부에 정착하였는데 그 후손들이 바로 자시크 인이다. 이들은 아직도 오세티야어와 유사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알란>

  한편 몽골의 침공 당시 알란족 중 일부는 중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과는 별 연고가 없는 이들은 곧 칸들의 신뢰를 사게 되어 쿠빌라이 칸 재위 시절에 이르러서는 쿠만족 등과 함께 친위군단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지만 권력 욕에 눈이 먼 이들은 원나라가 내분을 일으킬 때 칸을 옹립시키고 폐위하는데 개입함으로써 강력한 권력을 얻고 원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주원장이 세운 명의 공격으로 원나라가 사라지고 잔당들이 몽골로 도주할 때 이 알란족들도 몽골 초원으로 따라갔다. 이들은 몽골족의 일원으로써 호르퀸부에 편입되었다가 청나라가 몽골을 정복하면서 청의 지배를 받는다. 이들은 팔기군 중 상백기, 상홍기, 상람군에 예속되었다고 전해진다.

 <불가르족의 초기역사>

 튀르크계로 보이는 불가르족은 2세기경 스텝 지역에 처음 출현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부흐강의 동쪽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가르족은 4세기경 훈족이 등장했을 때 그들에게 예속되기도 했으나 아틸라 사후 독립하였다. 이들은 동로마제국의 황제 제노를 도와 고트족과 싸우기도 하며 세력을 키워왔으나 557년 아바르족이 유럽에 등장하자 그들에게 예속되는 시네가 되었다. 그리고 서돌궐의 군대가 575년 크림반도를 강습할 때 불가르는 서돌궐에게 항복하였고 결과적으로 불가르족은 아바르와 서돌궐 양쪽 모두에게 예속되는 신세가 되었다.

 <대불가리아>

 이런 상황이 반전된 것은 626년 아바르족이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에서 패배하면서부터였다. 아바르족의 힘은 확연히 쇠약해졌고 아바르 제국의 서쪽 지역에서는 프랑크 상인 사모가 슬라브인들을 규합해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 때 아바르에게서 불가르족의 지도자로 인정받은 두로 가문 출신의 쿠브라트가 두각을 나타냈다.

File:Kubrat sword.jpg

- 1912년 폴타바 근처에 있던 그의 무덤에서 발견된 검. 십자가 장식이 되어있다. -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교육받았던 그는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돌아온 후 불가르족의 지배자가 되었고 아바르의 칸은 이것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의 패배로 아바르족의 힘이 약해진 것이 확실해지자 쿠브라트는 쿠트리구르 훈과 우트리구르 훈을 흡수한 뒤 주저하지 않고 바로 독립을 선언했다. 다만 이 독립은 아바르족에 대한 것이었고 불가르족은 아직 서돌궐의 멍에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곧 서돌궐 내에서 내분이 벌어지면서 불가르족은 하자르처럼 서돌궐의 예속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파일:Map of Old Great Bulgaria.svg

 - 대 불가리아의 강역. 다만 신빙성은 좀 떨어져보인다. -

 하지만 막 독립을 한 불가르족은 이미 기반을 쌓고 국력을 한창 신장시키던 하자르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텝을 평정하던 하자르에게 불가르는 반드시 제압해야될 대상이었고 따라서 하자르는 불가르에 대해 강력한 공세를 퍼부었다. 결국 642년 쿠브라트가 죽은지 얼마 안 되어 대불가리아는 하자르의 압력으로 붕괴되고 말았다.(3) 이 때 쿠브라트의 아들 바트바얀은 그대로 하자르에게 항복하며 자신의 땅에 머물렀지만 다른 4명의 아들들은 부친 쿠브라트의 "뭉쳐야 산다."는 유언도 잊고 하자르의 말발굽을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었다.

파일:Bulgarians and Slavs VI-VII century.png

 - 하자르를 피해라! 하자르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디로든지 도망칠 수 있다! -

 <불가르족. 흩어지다.>

  쿠브라트의 아들 중 한명인 쿠베르는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는 시르무눔지역을 거점으로 비잔틴제국을 약탈했지만 테살로니카 공성전이 실패로 끝난 뒤 680년 경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한편 알제코가 이끄는 무리는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그들은 롬바르드왕국과 접촉하여 그들에게 군사적 봉사를 하는 대신 거주할 땅을 줄 것을 요구했다. 롬바르드 왕국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초기 이탈리아의 불가르족은 라벤나 근처에서 거주하였으니 이후 남이탈리아로 이주해 그 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파우르스 디아코누스의 기록을 보면 이들은 1세기 가량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였지만 샤를마뉴에 의해 롬바르드 왕국이 멸망한 뒤 결국 이탈리아에 완전히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쿠브라트의 장남 바트바얀은 하자르에 투항한 뒤 고향 땅에 머물렀다. 검은 불가르로 불리는 그의 부족은 카프카스지역에 거주하였는데 역사 속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이들의 후손이 현재의 발카르족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 외에도 소수는 판노니아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판노니아로 이주한 소수는 곧 사라지고 말았다.

 <발칸과 볼가강의 불가르>

 한편 쿠브라트의 아들들 중 한명인 아스파르후는 발칸반도로 이주하여 모에시아를 정복하였다. 그는 비잔틴 제국의 내분에 개입, 유스타니아누스 2세가 복위하는데 공을 세운 뒤에 자신들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첫번째 불가리아 제국은 곧 비잔틴제국과 대립하게  되었다. 첫번째 불가리아 제국은 이슬람제국과 싸우던 비잔틴제국의 유럽 영토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발칸 반도의 여러 지역을 접수하였다. 참다 못한 니케포루스 1세가 군사를 이끌고 대대적인 원정을 가했지만 불가르의 군주 크룸의 반격으로 니케포루스 1세는 전사하고 그 두개골은 술잔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크룸은 아예 아바르가 프랑크 왕국에게 정복되자 아바르의 영토 일부까지 점령하였다.

파일:Solidus-Nicephorus I and Staraucius-sb1604.jpg

- 이보시오! 내 해골이 술잔이 됬다니! 이게 무슨 말이오! -

 결국 불가르의 약탈질에 질려버린 비잔틴 제국은 불가르 제국의 군주 보리스 1세를 개종시킨 뒤 황제의 칭호를 허락하고 수도 오흐리드에 총대주교좌를 설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황제의 칭호를 허락하는 대신 서열로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가 불가르족의 황제보다 더 높다는 것을 각인시켜주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비잔틴에게는 굴욕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발칸반도의 불가르족은 점차 슬라브화되어갔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불가르 제국은 점차 쇠약해졌고 결국 970년경 비잔틴의 사주를 받은 키예프 공국의 군주 스바토슬라프의 군대에게 불가리아가 정복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사무엘이 다시 불가리아 부흥을 위해 노력하지만 이번에는 비잔틴제국이 더 강력하게 부활해버린 상태였다. 결국 불가르인의 학살자 바실리우스 2세가 킴발롱구스 협곡에서 대승을 거둔 뒤 포로들을 맹인군단으로 만들자 사무엘은 화병으로 죽어버렸다.


File:Samuil of bolgaria reconstruction.jpg


- 이보시오! 왜 내 부하들이 다 애꾸 아니면 맹인이 된 거..... 크허어억! -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첫번째 불가리아 제국은 멸망했다. 이후 불가리아 자체는 부활했지만 이미 발칸에 밀려들어온 슬라브족에 의해 이들은 사실상 슬라브족이 되어있었다.

 이런 분산이 벌어질 때 코트레그로 알려진 인물은 볼가강 중류로 이동하여 그 곳에 나라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볼가 불가르이다. 볼가 불가르는 원래 거주하고 있던 핀-우그르어 계열의 종족들을 정복, 이후 빌라를 수도로 한 나라를 세웠으나 하자르족에게 예속된 신세로 지내야했다. 920년대에 즉위햇던 알미쉬 칸의 경우 하자르 카간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딸을 하자르 카간의 후궁에 들여야 했을 정도였다. 결국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한 알미쉬 칸은 압바스 왕조와 연락해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한편 장인 등이 포함된 사절단을 보내 자신들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바그다드는 이 요청을 승낙했으며 이 때 따라간 이븐 파들란은 볼가 불가르와 하자르, 오구즈, 바이킹, 슬라브족 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 바그다드를 떠나는 이븐 파들란을 묘사했다는 그림 -

 볼가 불가르는 이후 스바토슬라프의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스바토슬라프의 공격으로 하자르 제국이 붕괴되면서 독립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슬람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페체네그, 쿠만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몽골군이 몰려오면서 볼가 불가르는 엄청난 위협에 직면하게 됬다.

File:VolgaBulgaria1200.png

- 1200년대의 볼가 불가르 -

 1224년 칼카강 전투에서 러시아-쿠만 연합군을 몰살시키고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던 수부타이, 제베의 몽골군은 볼가 불가르의 국경 지대인 사마라 만곡에서 볼가 불가르군과 전투를 벌였다. 양쪽 모두 이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몽골은 5년 후 재침공하여 볼가 불가르에 큰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1236년. 바투를 총사령관으로 한 몽골군은 대대적으로 볼가 불가르를 공격, 수도인 빌라를 점령, 파괴하고 5만명의 사람들을 죽이는 대학살극을 벌였다. 이 때 볼가 불가르 인구의 8할이 몽골 침공 및 그에 따른 여파로 죽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연히 존재했고 이들의 후손이 바로 추바쉬인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1) 다만 상기반의 군대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아에티우스는 상기반의 군대를 약졸로 보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아틸라의 군대를 기습하여 카탈라우눔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2) 이 때 히포 레기우스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는 성이 함락되기 전에 병사했다.

(3) 쿠브라트의 사망 연대의 경우 말이 많은데 영문 위키는 665년으로 보는 반면 13번째 지파나 다른 자료들은 그의 사망 연대를 642년으로 비정했다.

 

덧글

  • 오스왈드 2012/02/04 23:56 # 삭제

    역시 훈느님의 위엄은....
    저 이슬람으로 개종한 불가르인은 러시아 원초 연대기에서 블라지미르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꼬시는 종족으로 나오지요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77명의 미녀를 얻는다면서요...
    금주령 때문에 거부되지만...
  • 로자노프 2012/02/05 11:28 #

    그 이야기도 유명하징.
  • ㅁㅁ 2012/02/05 02:31 # 삭제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쉬이 알기 힘든 지역의 역사인데, 인터넷에서 이런 수준의 역사 글을 보다니 정말 기쁘네요.
  • 로자노프 2012/02/05 11:28 #

    좋게 보신다니 감사합니다.
  • 크핫군 2012/02/05 08:10 #

    -_-;; 역밸 모임 하시고 쓰신겁니까;;;
  • 로자노프 2012/02/05 11:29 #

    어차피 모임 전에 글 자체는 다 쓰고 온 뒤에 주석이랑 이미지만 추가했습니다.
  • DeathKira 2012/02/05 14:36 #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지난번의 하자르랑 같이 읽으니까 훨씬 이해가 쉽더군요.
    언제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로자노프 2012/02/05 16:12 #

    감사합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2/02/05 15:27 #

    알란족은 토탈워로 많이 접해봤으면서도 좀 애매모호한 이미지 였는데 저런 사람들이었군요. 잘 봤습니다.
  • 로자노프 2012/02/05 16:12 #

    잘 보셨다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알란족이 토탈워에 좀 자주 나오기는 했죠.
  • 셔먼 2012/02/05 17:45 #

    오늘 글은 전개가 빨라서인지 가독성이 높네요. 그나저나 현재의 불가리아는 불가르족의 껍데기만 남은 셈이로군요.
  • 로자노프 2012/02/05 18:34 #

    뭐 어떻게 보면 그런 셈이죠.
  • 함부르거 2012/02/06 00:55 #

    불가르 족의 전성기는 역시 크룸과 시메온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찌질이들이 왕위에 오르며 급격하게 망한 것도 다른 유목제국들과 비슷한 점이네요.
  • 로자노프 2012/02/06 11:33 #

    그리고 덤으로 키예프공국의 등장과 비잔틴의 부활도 감안해야겠지요.
  • 데네스 2012/07/11 23:11 # 삭제

    아 정말 훌륭한 내용의 역사書 입니당~~!!
    정말 정말 잘보고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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