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두의 파란만장한 일생.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서돌궐의 야브구이자 동돌궐의 카간. 이스테미의 아들로써 비잔틴 등에서는 타르두란 이름으로 전해지지만 중국측 사서에서는 달두 가한으로 기록된 이 인물은 나름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영광의 절정과 급격한 몰락을 모두 맛본 극적인 인물입니다.

 아버지 이스테미의 뒤를 이어 576년 서돌궐의 야브구가 된 타르두는 상당히 자신만만한 상태였습니다. 사실 그럴만 했습니다. 돌궐은 이미 고구려에서 비잔틴제국 사이에 있는 스텝지대 거의 대부분을 평정했고 비잔틴제국과 중국의 왕조들 역시 돌궐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돌궐의 국력은 막강했습니다. 이미 사산조페르시아의 경우 돌궐한테 두들겨맞고 있었고요.

 그런 타르두는 자신들한테서 쫓겨난 자들로 보이는 아바르와 비잔틴제국이 협약을 맺은 걸 알자 분노했습니다. 타르두는 비잔틴제국의 사신에게  "우아르후니에게 나의 기마군대를 기다리라고 하라. 우리의 채찍만 보아도 그들은 땅 끝까지 도망칠 것이다! 그 노예종족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칼을 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가장 미천한 개미처럼 우리 말의 발굽으로 짓뭉개버릴 것이다." 라는 호언장담을 한 후 비잔틴제국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비잔틴을 공격했습니다. 이 공격의 결과 볼가강과 동우크라이나 지역이 서돌궐에게 예속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역시 서돌궐의 강력한 공세 앞에 맥을 못 추고 있었기에 타르두의 앞날이 밝아보인건 당연지사였습니다.

 그는 마침 종주국인 동돌궐 내에서 내분이 터지자 582년 아예 동돌궐로부터 독립하고 이듬해에는 동돌궐 내의 내분에서 패배해 쫓겨난 아파 카간을 맞이합니다. 아파 카간을 이용해서 동돌궐을 장악해보려고 그랬겠지요.(이 부분 자료가 좀 불명확한데 일부에서서는 아파 카간이 타르두를 되레 몰아내어 타르두를 방랑자로 만들었다고 하는 반면 또 다른 자료는 타르두가 계속 서돌궐을 지배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돌궐에서 툴란 카간과 돌리 카간의 사이의 내분이 격렬해지자 타르두는 그 틈을 틈타 세력을 확대합니다.

 그 결과 타르두는 599년 동돌궐에서 빌가 가한으로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계속 서돌궐을 지배한 거라면 그는 이제 돌궐의 유일한 지배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경쟁자인 돌리 카간은 수나라로 망명했고 수나라는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타르두는 오르도스나 장안, 망명한 돌리 세력을 위협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고히 하고자 했습니다만 장손성의 계책에 말려 패배했습니다.

 더군다나 수나라는 돌궐에게 복속된 철륵 등을 부추겨 603년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철륵의 대대적인 반란으로 근거지가 박살난 타르두는 토욕혼 혹은 쿠쿠 노르로 도주해야 했고 이후 그는 역사 속에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설에는 화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의 제국은 박살 났고 타르두의 손자 사궤는 전성기 돌궐의 영역 중 극히 일부만 지배했을뿐더러 한 때 수나라에게 신속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비잔틴과 페르시아를 벌벌 떨게 만들며 엄포를 놓았던 인물은 그 자신의 야심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수나라의 뒷공작에 제대로 말려들면서 처참하게 몰락했습니다.

덧글

  • net진보 2012/01/24 13:49 #

    분열로...........
  • 로자노프 2012/01/24 14:26 #

    분열에 수나라의 뒷공작이 좀 치명타였던 것 같아요.
  • 셔먼 2012/01/24 22:01 #

    온갖 부귀 영화도 한순간이로군요.
  • 로자노프 2012/01/24 22:24 #

    그러게나 말이죠.
  • 누군가의친구 2012/01/25 00:07 #

    한방에 훅 갈수도 있다는 사례...(...)
  • 로자노프 2012/01/25 00:30 #

    그러게 말이죠.
  • 오스왈드 2012/01/25 21:21 # 삭제

    한방에 훅간 모범사례군요
  • 로자노프 2012/01/25 22:16 #

    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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