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유목민들 4. 사비르와 아바르.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사비르>

 453년 아틸라가 급서하고 유럽의 스텝 지역은 급속하게 힘의 공백지로 남게 되었다. 그나마 판노니아는 게르만계의 게피다이족이 패권을 쥐었지만 현재의 우크라이나, 남 러시아는 훈족의 두 잔여세력인 쿠트리구르 훈과 우투르구르 훈 외에도 하자르, 불가르 등등이 난립해있었다. 이 와중에 투르크계로 추정되는 사비르족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역사가 프리스쿠스에 의하면 사비르인들은 463년 우투르구르 훈을 공격했다. 이후 이들은 503년 불가르족 혹은 그 전신으로 보이는 오노구르족을 제압하고 515년에는 볼가강과 쿠반강 사이의 지역을 평정했다. 그리고 이듬해 사비르는 발라크란 이름의 수령의 지휘 하에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남하, 아나톨리아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당시 비잔틴제국은 이들의 무기나 기구가 상당히 뛰어나다며 그들을 두려워했다. 결국 유스타니아누스는 528년 재물을 주어 사비르와 화친하고 사산조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이들은 비잔틴의 동맹으로써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545년 사산조 페르시아의 군대는 사비르군대를 대파했고 사비르의 군대는 552년 다시 페르시아를 침공하기는 했지만 예전의 위세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곧 아바르족이 이들을 짓밟으면서 사비르는 그렇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아바르의 등장>

 유럽의 기록물들에서 아바르족이 최초로 등장하는 건 557년의 일이다. 당시 아바르족은 카프카스 일대에 도착한 후 콘스탄티노플에 사신을 보내 유스타니아누스 1세를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아바르족의 사신은 유스타니아누스 대제에게 땅과 공물을 요구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유스타니아누스는 이를 거절한 듯 하지만 대신 아바르로 하여금 사비르와 훈족의 잔여 세력 등을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아바르족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 남 러시아 일대에서 활보하고 있던 불가르, 사비르, 우투르구르, 쿠트리구르를 공격, 제압하였다.

 이후 이들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벨로루시 일대에서 나름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슬라브계 안테인들을 비롯한 슬라브족을 제압하면서 서진하였다. 게르만인들이 떠난 공백지대를 야금야금 접수하던 슬라브인들은 이제 아바르인들이란 훈족을 대신할 새로운 유목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도망쳐야 된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일부 슬라브인들은 그대로 아바르에게 항복하는 길을 택했지만 다른 슬라브, 주로 남슬라브족으로 불리게 될 이들은 4세기 말 게르만 족이 그러했듯이 새로운 침략자를 피해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이들은 비잔틴제국이 영유하고 있던 발칸으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아바르 군대와 그에 복속된 피지배민족 병사들. 1번은 아바르 귀족. 2번은 발칸 불가르 전사. 3번은 남슬라브 전사 -

 슬라브족을 제압하면서 서진하던 아바르는 560년 경 이미 다뉴브강에서 볼가강에 이르는 넓은 초원지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통일되었다가 얼마 전 다시 양분된 프랑크왕국의 지배지역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양분된 프랑크 왕국 중 하나인 아우스트라시아의 왕 시게베르트 1세는 아바르족의 군대를 격퇴하는데 성공했고 아바르는 스텝지대로 후퇴해야 했다.

 하지만 아바르의 기세가 이 패배로 꺾인 것은 아니었다. 565년 카간으로 즉위한 바얀(1)67년 롬바르드족의 왕 알보인과 동맹을 맺고 판노니아 일대를 100년 넘게 지배하던 게피다이 왕국을 협공, 게피다이 왕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롬바르드족이 이듬해 4월 판노니아를 버리고 이탈리아로 이주하기로 결정, 이탈리아로의 이주를 시작하면서 아바르족은 판노니아를 독식할 수 있었다. 바얀은 아틸라가 수도로 삼았던 지역의 근처를 제국의 수도로 결정했다.

File:Historical map of the Balkans around 582-612 AD.jpg

- 아바르족이 지배하던 영역 -

 <아바르족의 기원>

 아바르족은 현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투르크-몽골 혼혈계통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여기서 몽골리안적 요소가 강하게 가미되었다는 설이 적어도 1900년대 중반부터 우세한 편이다. 그리고 훈족이 그러했듯이 아바르족이 동쪽에서 왔다는 점때문에 학자들은 아바르족이 몽골초원을 지배했던 유연이나 사산조 페르시아, 굽타 왕조를 떨게 했던 에프탈, 혹은 오구즈인들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다만 오구즈인들로 추측하는 설은 그다지 지배적이지 않으며(2) 전반적으로 많은 서적들은 아바르족의 기원을 유연이나 에프탈에서 찾고 있다.

 문제는 유연이나 에프탈에서 찾는 설 양쪽 모두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유연의 경우 분명히 아바르족이 유럽의 기록에 나타나기 전인 554년에 돌궐에게 멸망했으며 문화적으로도 유연과 아바르는 유사한 면모가 있다. 무엇보다 아바르는 카간이란 명칭을 사용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유연이었다.

File:Rouran500.png

-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카간의 유래도 그렇고 우리도 만만치 않다고. 맨날 북위애들한테 맞아서 그렇지.. -

 문제는 유연이 멸망할 때 돌궐이 서쪽에서 유연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유연이 고구려나 숙신이 있는 동쪽이나 시베리아의 삼림지대가 있는 북쪽, 혹은 동위, 서위가 있는 남쪽 방면이 아닌 굳이 돌궐의 본거지가 있으며 그들에 대한 공격 방향인 서쪽으로 갔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특히나 남쪽은 유연에 적대적인 선비족 정권들이 들어서있었고 북쪽은 추운 삼림지대라지만 동쪽은 유연에게 호의적인 고구려의 영역이었다는 점에서 과연 아바르가 유연인지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굳이 우호적인 국가가 존재하는 동쪽이 아니라 공격 방향인 서쪽으로 갈 이유가 유연에게는 없지 않은가?

 에프탈이라는 설 역시 약점이 있다. 일단 에프탈의 경우 호스로 1세가 통치하던 사산조 페르시아와 돌궐의 협공으로 멸망했고 양쪽의 공격방향상 에프탈이 유럽으로 도망치는 것 역시 합리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산조 페르시아와 돌궐의 협공으로 에프탈족이 멸망한건 565년의 일이다. 그리고 아바르가 최초로 등장한 건 557년이고 아우스트라시아의 군대가 아바르를 격퇴한건 562년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바르는 에프탈이 멸망하기 전에 유럽에 등장한 셈이 된다. 물론 이 경우 페르시아와 돌궐의 압력이 가중되면서 에프탈 족 중 일부가 멸망하기 전에 이미 이탈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File:Hephthalites500.png

- 우리가 망한 건 560년대인데 아바르가 등장한건 550년대이네? 어떻게 된 걸까요? -

 어찌 되었든 확실한 건 아바르족이 원래는 돌궐의 적이었을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비잔틴과 동맹을 맺고 있었던 서돌궐의 야브구(3) 타르두는 576년 비잔틴제국의 사절을 맞이하다가 비잔틴과 아바르가 협약을 맺은 것을 알고 분노했다. 그리고 비잔틴제국의 행동을 동맹 위반으로 간주하고 동맹을 파기하는 한편 크림반도 및 흑해 북안에 있던 비잔틴 제국의 영토들을 공격하였다. 이 군사적 원정의 결과 서돌궐은 하자르와 우투르구르 훈등을 자신들에게 예속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바르족은 너무 멀리 떨어진 판노니아에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타르두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4) 아바르와 서돌궐은 충돌하지 않았다.

<아바르, 유럽을 휩쓸다.>

 582년. 카간 바얀 1세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던 아바르인, 슬라브인, 게르만인 등등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모아 남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우호관계를 배신하고 비잔틴제국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바르족은 비잔틴제국의 도시인 시르미움을 584년 점령했다. 이후 그의 군대는 신기두눔을 점령했고 안키알루스 근처까지 진격하며 모에시아를 약탈했다. 하필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루고 있던 비잔틴제국은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 침공은 아드리아노플에서 비잔틴군이 아바르군을 막아내면서 겨우 막을 수 있었다.

- 발칸을 공격한 아바르족. 1번은 아바르 귀족. 2번은 아바르 전사. 3번은 슬라브 농민 -

 하지만 바얀은 지치지도 않고 얼마안가 약탈 원정을 개시해 테살로니카를 포위공격했다. 그리고 592년. 바얀은 다시 비잔틴제국을 침공했다. 하지만 비잔틴 황제 마우리키우스는 이미 사산조 페르시아와 휴전조약을 맺어 적극적으로 이 침공에 대처했다. 이후 아바르가 달마티아를 약탈하는 등 전쟁은 몇 년간 질질 끌다가 비잔틴의 장군 프리스쿠스가 601년 다뉴브강을 건너 아바르족의 본거지를 급습, 다뉴브 강의 지류인 티사강에서 바얀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그의 네 아들들을 죽이면서 비잔틴의 승리로 끝났다. 바얀 1세는 이듬해 사망했다.

 이후 아바르는 바얀 2세라 알려진 카간이 즉위한 이후 610년 롬바르드족이 영유하던 이탈리아 북동부의 프리울리지역을 약탈한 것을 제외하면 한동안 조용하게 지냈다. 그러나 곧 아바르에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 로마에 포카스 기둥을 세운 것 말고는 업적이 전혀 없는 포카스가 비잔틴제국 황제에 즉위하면서 비잔틴제국의 굳건한 동방 방어체계가 붕괴된 것이다. 

File:RomaForoRomanoColonnaFoca2.JPG

- 포카스의 유일한 업적(...)인 포카스 기둥. 로마 포럼 유적 터에 남아있다. -

 포카스는 610년 헤라클레이오스에 의해 살해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시리아, 예루살렘, 이집트를 점령하고 콘스탄티노플에 육박했다!

File:Sassanid empire map.png

- 정말로 지겨운 싸움이었다. 비잔틴. 하지만 이제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될 것이다. 자 이제 결판을 내자꾸나! -

 사산조 페르시아의 군주 호스로 2세는 오랫동안 비잔틴과 밀고 당기던 지루한 싸움을 이참에 끝내버리고 아예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영광을 되살리기로 결정했다. 그의 군대는 626년 콘스탄티노플로 진격, 보스포로스 해협을 통해 콘스탄티노플과 마주보는 칼케돈에 진을 쳤다. 비잔틴 내부의 쇠락을 알고 다시 침략을 재개했던 아바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카간이 직접 지휘하는 8만명의 병력이 콘스탄티노플 성벽 앞에 진을 쳐 페르시아군에 호응했다. 하필 비잔틴의 주력군은 다른 곳으로 원정이 나갔고 보누스가 이끄는 12,000명의 병력만이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다. 얼핏 보면 희망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비잔틴제국에게는 아직 강력한 함대와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이 남아있었다.

File:Walls of Constantinople.JPG

- 내가 요즘 콘스탄티노플 성벽 보고 느낀건데 페르시아 협조 없이는 안 될거 같애. 근데 우리 페르시아가 못 도와주잖아. 우린 안될꺼야. 아마 by 아바르 카간 -

 비잔틴 함대는 보스포로스 해협의 제해권을 유지하며 페르시아와 아바르가 연결되는 것을 차단했다. 결국 페르시아군은 칼케돈에서 손가락만 빠는 신세가 되었고 아바르 군대가 혼자서 넘기에는 콘스탄티노플의 3중성벽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결국 페르시아-아바르 연합군은 후퇴해야 했다. 비잔틴제국은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아바르와 사산조 페르시아는 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아바르의 쇠락>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의 패배는 사산조 페르시아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특히 이듬해 벌어진 니네베전투에서 사산조 페르시아군대가 괴멸하며 사산조의 국력은 바닥을 기었고 결국 이슬람군대에 의해 사산조는 멸망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의 패배는 아바르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이 패배 이후 비잔틴은 아바르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였고 이 틈을 틈탄 프랑크마저 아바르에게 집적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아바르 내부에서도 반란의 징후가 물씬 피어올랐다.

 첫 시작은 서쪽에서였다. 프랑크 족 출신 상인으로 알려진 사모란 인물이 슬라브족을 규합하고 아우스트라시아의 지원을 얻고는 631~632년 경 아바르족의 군대를 격파하고 체코에서 슬로바키아에 이르는 사모 왕국을 건설했다.

File:Sámova říše.png

- 아싸 아바르가 약해졌구나. 그럼 이제 땅 장사 좀 해봐야지! by 프랑크족 상인 사모 -

 그리고 동쪽 우크라이나에서 아바르의 지배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바르족에 예속되어있던 불가르족을 지배하던 쿠브라트가 아바르 카간의 권위에서 벗어나 현재의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 불가리아를 건설했다. 이는 명백한 분리 독립이었다. 하지만 아바르는 사모와 쿠브라트를 막을 수 없었다.

File:Map of Old Great Bulgaria.svg

- 오등은 자에 아 조선 아.. 아니 불가르의 독립국임과 불가르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

 다만 사모 왕국과 대 불가리아 모두 오래가지 못하고 단명 국가로 끝났다.(5) 하지만 이것이 아바르족에 의해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사모 왕국은 사모가 죽으면서 자연히 해체되었고 사모왕국에 귀속되었던 일부 슬라브족은 다시 아바르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다른 슬라브족은 아바르의 지배에서 영영 이탈해버렸다. 거기다가 대 불가리아의 경우 그들을 멸망시킨 건 아바르가 아니라 볼가강을 거점으로 한 신흥 유목제국을 건설한 하자르 족이었다. 

 이는 곧 아바르의 힘이 다했음을 의미했다. 힘이 다한 아바르족은 이후 아주 조용하게 지냈다. 이들은 유스타니아누스 2세와 관련된 비잔틴제국의 내분에도, 우마위야 왕조가 2차례에 걸쳐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 때도 아주 조용하게 지냈다. 그나마 아바르와 관련된 기록이라면 아바르내의 내분으로 9천명 가량이 국외로 추방되었다는 기록 정도 뿐이다. 기하학적 문양 등으로 상징되는 고유의 예술이 담긴 유물들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이들은 너무나도 조용하게 지냈다. 다행히 역사는 1세기 넘게 이들을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8세기 말. 어느 군주가 이 조용하고 힘 잃은 나라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카롤루스(6)였다.

- 내가 너희들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주지. ㅎㅎㅎ -

 <아바르의 멸망. 그리고 또 다른 아바르?>
 
  프랑크 왕국의 지배자, 훗날 서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받게 될 카롤루스는 정력적인 정복자였다. 그는 작센을 평정하고, 롬바르드왕국을 멸망시켰으며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교도들과 싸웠다. 그는 790년경 아바르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791년 카롤루스가 직접 이끄는 프랑크 군대는 아바르의 영토 깊숙한 곳까지 진격했다. 그리고 795년 그의 아들 피핀은 아바르족에 대한 대대적인 약탈 원정을 벌였고 이듬해에는 아바르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렇게 되자 투둔으로 알려진 아바르족의 수령은 프랑크 왕국에 투항해 세례까지 받았다. 그는 799년 반란을 일으켰지만 가볍게 진압되었다. 그리고 804년 아바르족은 카롤루스에게 항복하였다. 아바르 칸국의 멸망이었다. 

File:Frankenreich 768-811.jpg

-카롤루스의 영토 확장. 아바르 역시 카롤루스의 영토 확장 과정에서 그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

 같은 해 불가리아가 아바르 한국을 습격하여 아바르의 남동부 영역을 점령하였다. 이런 압박에 못 이긴 아바르인들은 테오도르(7)라는 수령의 지휘 하에 서부 판노니아로 이주했다. 이들의 영토에는 아바르 관할구가 설치되었다.(8) 그리고 얼마 안 가 아바르의 영역은 대부분 대모라비아 왕국이나 저지 판노니아 공국 같은 슬라브계 국가들이 들어서며 슬라브화되거나 불가리아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아바르족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871년에 보이는데 이후 아바르족은 판노니아로 밀려들어온 마자르족에게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북 카프카스에도 아바르라고 불려지는 민족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으며 13세기부터 러시아가 카프카스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던 19세기까지 독자적인 나라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과 판노니아의 아바르족의 연관성은 불명확해보이나 르네 그루셰 등은 이 카프카스의 아바르를 참칭자라 말하며 다른 민족으로 보는 듯한 견해를 보이며 6~7세기경 자료들은 상당수가 카프카스의 아바르와 판노니아의 아바르를 분리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이들의 언어는 어족부터가 다른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에(9) 이 두 민족이 서로 연관되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File:Avarian Daghestan Mussayassul.jpg

- 카프카스 아바르 여인의 그림을 그린 초상화. 미녀네. -

(1) 바얀이란 이름은 영어 기준으로 철자가 Bayan으로 한자명 백안으로도 알려진 몽골의 장군 바얀과 똑같은 몽골풍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필리오 등은 아바르를 몽골계로 추정하였다.

(2) 단 영어 위키백과는 오구즈와 아바르를 연관시키는 듯 한 인상을 주었다.

(3) 야브구 : 쿠샨 왕국 등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표현으로 돌궐에서는 최고위 관료의 칭호 겸 서돌궐의 지배자 칭호로 주어졌다.

(4) 타르두는 비잔틴제국의 사신에게 "우아르후니(아바르를 가리키는 명칭인듯)에게 나의 기마군대를 기다리라고 하라. 우리의 채찍만 보아도 그들은 땅 끝까지 도망칠 것이다! 그 노예종족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칼을 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가장 미천한 개미처럼 우리 말의 발굽으로 짓뭉개버릴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5) 대불가리아의 경우 멸망 연도가 엇갈린다. 영문 위키백과는 660년대로 잡는 반면 일부 자료는 640년대 초반을 멸망 연대로 잡고 있다.

(6) 카롤루스는 라틴어 표기고 프랑스어 표기는 샤를, 독일어 표기는 카를이다.

(7) 테오도르란 유럽식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세례를 받고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8) 이 관할구는 훗날 케른텐 관할구에 합병된다.

(9) 판노니아의 아바르는 투르크계 언어를 쓴 것으로 보이는 반면 카프카스 아바르의 언어는 북동카프카스어족이다.

덧글

  • 셔먼 2012/01/22 00:07 #

    1. 매번 보는 거지만 비잔틴 제국은 정말 징하게 버티는군요.
    2. 카롤루스 대제 밑에 피핀이라는 아들이 있었다니 선대의 피핀과 혼동하지 않게 조심해야겠습니다.
    3. 아, 그리고 하나 말씀드리자면 4번 항목이 중복되었습니다.
  • 로자노프 2012/01/22 00:15 #

    1. 아마 비잔틴제국은 제 이번 연재에서 정말 징하게 많이 나올 겁니다.
    2. 조심해야겠죠. 보통은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 피핀은 이탈리아의 피핀이라고 하더군요.
    3. 수정했습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2/01/22 00:07 #

    유목민들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정치체제를 가지지 못하는 한,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면 반짝하다가 그 지도자가 죽으면 바로 분열하는 군요.
  • 로자노프 2012/01/22 00:15 #

    뭐... 그건 사모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유목민족만 그런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아바르는 콘스탄티노플에서의 패배 영향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 DeathKira 2012/01/22 00:29 #

    1. 동로마는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군요. 불가르라던가 페체네그라던가...
    2. 아바르도 참 강력하긴 했지만 역시 그 삼중성벽의 위용 앞에선...
    3. 샤를마뉴의 아들 피핀의 경우에 대해 잠깐 덧붙이면 샤를마뉴로부터 이탈리아 왕위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식으로 피피노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왕위는 아들 베르나르도에게 이어졌다가, 피피노의 형제(형이 아닐까 추측됩니다만..)인 황제 루이 경건왕이 잇게 됩니다.
    4. 사모는 참 대단한 인물인 거 같군요. 상인이 저럴수가 있다니..
    5. 전 7C 이후엔 별 거 없어서 그 시기가 멸망시기인 줄 알았는데 샤를마뉴 시기까지 버텼군요. 뭔가 대단해보입니다.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로자노프 2012/01/22 00:36 #

    1. 아마 거의 막판될 때 까지 꾸준히 나올 겁니다. 아마도.
    2. 저 삼중성벽은 정말로 많은 공격자들에게 절망을 선사해주었죠.
    3.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4. 근데 알려진 정보는 되레 쿠브라트보다 적습니다. 사실상 연대기에 의존해야되는 상황...
    5. 근데 사실 버텼다고는 해도 거의 기록할 것은 없는 시기지요...

    추신: 감사합니다.
  • RuBisCO 2012/01/22 02:54 #

    아바르 여인네들은 사르마티아 아줌마들이랑은 확실히 다르군요 흐음
  • 로자노프 2012/01/22 10:50 #

    확실히 미녀이긴 하네요. 흐흐흐
  • 크핫군 2012/01/22 12:15 #

    이제 곧 마자르가 오는군요;;;
  • 로자노프 2012/01/22 12:49 #

    근데 연재 계획상 마자르가 오려면 좀 기다리셔야 됩니다.
  • 행인1 2012/01/22 12:27 #

    카롤루스가 정복한 영토가 정말 엄청나군요. 넓이로만 보면 '로마'의 이름을 사용할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 로자노프 2012/01/22 12:49 #

    확실히 저 정도면 서로마의 후계자를 자처할 수 있기는하죠.
  • 기번 2012/01/24 02:48 # 삭제

    아바르인이 최초로 동로마에 나타났을 때~황인종의 모습을 띄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로마인들은 난생 처음 보는 인종~아바르인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했죠. 이런 기록을 보면 확실히 백인이 아닌 황인종이었던 모양입니다. 반면 훈족은 어느 정도 백인의 모습을 띄었던 듯 해요.
    그런데, 역시 동서양 혼혈이라 그런지 아바르 미녀 이쁘네요. 잘 봤습니다.
  • 로자노프 2012/01/24 12:14 #

    저 아바르는 카프카스 아바르로 판노니아 아바르랑 다른 민족으로 보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01/25 00:10 #

    역시 그놈의 3중성벽...(...)
  • 로자노프 2012/01/25 00:30 #

    저 3중성벽은 수많은 외적들을 절망에 빠뜨리지요
  • 오스왈드 2012/01/25 20:40 # 삭제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비잔티움 제국의 전쟁은
    치킨게임은 남 좋은 일만 한다의 아주 좋은 예죠
  • 로자노프 2012/01/25 22:15 #

    그러게요.
  • 오스왈드 2012/01/26 07:04 # 삭제

    오스만 투르크도 대포를 가지고서도
    완벽히 넘지 못했다는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의 위엄...
  • 로자노프 2012/01/26 10:44 #

    저 성벽의 위용 앞에는 많은 적들이 좌절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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