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유목민들 3. 훈족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충격과 공포>

 서기 4세기 경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은 고트족에 지배되어 있었고 볼가강 및 북카프카스에는 사르마티아 및 그 일원이었던 알란인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로마의 속국 보스포로스 왕국이 고트족에게 제압당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4세기경 동유럽의 초원지대는 조용했다. 하지만 370년대에 이르러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370년 경 볼가강 동쪽에서 수많은 기병들이 달려왔다. 이들은 볼가강 유역에 있던 알란족을 공격하고 가볍게 그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였다. 발라미르 혹은 발람베르라고 알려진 수령이 지휘한 이 군대는 얼마 안 가 드네프르 강 서쪽에 있던 동고트족을 공격했다. 동고트족은 패전했고 그들의 족장 에르마나릭은 절망에 빠져 자살했다. 그의 후계자 비씨미르 역시 얼마 못 가 전사했고 동고트 족은 이 기병대에게 복속당했다. 그리고 이 꼴을 지켜본 서고트의 족장 프리트게른은 겁을 먹고 자신의 민족들을 이끌고 로마제국으로 도피했다. 한창 우크라이나에서 루마니아에 이르는 상당한 강역을 자랑하던 고트족을 단숨에 제압한 이들의 이름은...

- "내 이름? 그래. 죽기 전에 가르쳐주지. 기억하고 있어라! 바로 훈이다!" -

 이후 훈 족은 포이데라티(1)로써 로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395년. 이들은 동로마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들은 트라키아를 침공하는 한편 카프카스를 넘어 안티오크까지 급습하였다. 그러나 398년 에우트로피우스의 동로마군은 이들을 격퇴했고 격퇴된 이들은 말머리를 사산조 페르시아로 돌렸다. 훈족은 사산조의 수도 크테시폰까지 육박했으나 사산조의 반격으로 데르반드 고개를 넘어 다시 후퇴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이 훈족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들은 곧 판노니아까지 쳐들어가 게피다이족을 복속시키고 독일에 있던 여러 게르만 족 및 알란족의 잔여 세력들을 압박하여 반달, 알란족등이 405년 라인강을 도하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이들은 게르만족의 공포로 군림하였다. 서고트 족의 경우 이탈리아 침공에 앞서 서로마제국에게서 받은 인질들을 훈족에게 인질로 넘겨주어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했을 정도였다.(2)

 그러나 전반적으로 훈족은 로마, 특히 동로마와의 관계는 일정하지 않았다. 395년 동로마를 침공하기는 했으나, 이후 훈족의 왕 울딘은 동로마에서 추방된 가이나스를 참수하여 그 목을 콘스탄티노플에 선물로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러다 울딘은 몇 년 후 다시 동로마에 대한 약탈 원정을 감행했다. 하여튼 이들은 이렇게 유럽 전역에 전례없을정도로 강력한 압박을 가하며 그 위세를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훈족이 위세를 떨치는 동안 훈족의 왕은 울딘에서 카라톤, 다시 루아스로 바뀌었다. 카라톤은 별다른 명성을 떨치지 않았으나 루아스는 동로마제국을 강력히 압박, 그들이 금 350 리브레를 매년 상납하도록 강요하며 동로마에게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그런 루아스가 죽자 동로마제국은 기뻐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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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드라마 본편은 시작도 안 했단다. 얘들아. 횽 왔으니까. 모두 이 꽉 물고 있으래이~!" -

 <훈족의 관습, 그리고 그 기원>

 역사가 암미아누스에 의하면 훈족은 상당히 공포스럽고 난폭, 야만스러운 존재였다. 암미아누스는 훈족의 풍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전략) 그들은 짐승처럼 산다. 그들은 음식을 요리하거나 양념을 치지 않고, 안장 밑에 놓아두어 부드럽게 된 들풀의 뿌리와 고기를 먹고 산다. (중략) 늘 유목생활을 하기 위해 그들은 어렸을때부터 추위, 배고픔, 갈증으로부터 단련되었다. (중략) 그들의 옷은 면포로 된 튜닉과 쥐가죽을 모아서 만든 겉옷으로 되어있다. (중략) 그들은 말위에서 생활을 하는데, 때때로 다리를 벌리고 그 위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들처럼 한쪽으로 다리를 모아 걸터앉기도 한다. (중략) 전투에서 그들은 적을 급습할 때 놀랄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른다. 만약 적이 저항하면 흩어졌다가 다시 빠른 속도로 돌아오면서 도중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고 뒤엎어버린다. 그들은 요새나 진지를 어떻게 함락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놀랄 만큼 먼 거리에서 쇠같이 단단하고 날카로운 뼈로 촉을 만든 화살을 쏘는 기술에서 그들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들의 외모에 대해서도 당시 유럽 사람들은 훈족은 낮은 코, 튀어나온 광대뼈, 쑥 들어간 눈을 가진 존재라고 묘사하기도 하였으나 이외의 훈족과 관련되어 그 기원을 알만한 정보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현대 역사가들은 훈족을 튀르크계 혹은 튀르크-몽골 혼혈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황상 적어도 5세기 경에는 인도 유럽어계 피도 상당수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들의 언어 역시 잘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그 언어가 튀르크계 혹은 몽골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File:Attila Museum.JPG

- 그러니까 대충 이런 모습 정도? -

 이외에 훈족의 기원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것은 훈족이 바로 흉노. 정확히 말하면 남흉노와 후한의 협공으로 어디론가 떠나버린 북흉노의 후예라는 설이다. 이는 훈족의 발음이 흉노와 유사하다는 데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외에도 훈족의 풍습 중 일부가 흉노의 풍습과 유사하다는 것에도 그 근거를 두고 있다.

 

- "우리가 중국만 벌벌 떨게 한 게 아니다. 이 말씀이야." -

 하지만 반박 역시 적지 않다. 이 주장에 의하면 중국의 역사서인 위서에서 서역의 민족들을 묘사하며 흉노와 훈족을 구분했으며, 역사가 아미니우스가 그들이 얼음 바다에서 왔다는 식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이 흉노=훈족 설에 대한 반박의 또 다른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헝가리, 터키 등에서는 훈족과 자신들을 연관시키려 하고 있으며 특히 마자르 신화의 경우 자신들을 훈족과 형제라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족을 붙이자면 훈족이 한반도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다. 사실상 한 귀로 흘려보낼 소리인데 설령 그들이 몽골로이드계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곧 같은 민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중국의 한족도 몽골로이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들은 주로 투르크계 혹은 투르크-몽골 혼혈로 인식되고 있다. 그냥 이런 말을 들었다면 한 귀로 흘려들을 것을 권하는 바이다.

 <신의 형벌-아틸라의 치세>

 안 그래도 공포스러운 존재였던 훈족이 더욱 공포스러웠던 것은 바로 이 아틸라의 치세때이다. 434년 삼촌 루기라 혹은 루아스라고 불리던 훈족의 왕이 죽자 그의 형제 문주크의 두 아들, 블레다와 아틸라가 훈족을 공동통치하게되었다. 이 형제 중 호전적이었던 아틸라는 얼마 안 가 동로마제국을 습격, 동로마제국이 바쳐야 될 금의 양을 2배로 늘리고 동로마와 훈의 복속민들의 접촉을 차단했다. 이후 그는 니벨룽겐의 노래의 기원이 될 부르군트 정벌전을 436년에 감행, 부르군트의 왕을 포함하여 2만명을 몰살시키고 441년 동로마에 대한 전쟁을 개시, 나이수스를 점령하고, 필리포폴리스까지 약탈했다. 비잔틴제국은 일단 아틸라를 달래어 그를 돌아가게 할 수 밖에 없었다. 

File:Checa-HunCharge.jpg

- "좋아. 이번에는 이 정도로 봐주지. 하지만 또 우린 또 올 거야!" -

 그러나 445년 형 블레다가 죽은 후(3) 아틸라는 훈족을 단독통치했다. 그의 영토는 독일에서 볼가강까지 이르렀고 그에게 예속된 종족은 45개나 되었다. 그의 위세는 대단하여 그가 아레스의 검을 손에 넣었다는 전설까지 만들어지고 신의 채찍이란 수식어가 붙어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아틸라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447년 동로마에 대한 재침공을 단행했다. 

- 발칸반도를 습격한 훈족 전사. 단 여기서는 피해자인 농민들에게 습격당한 모습을 묘사했다. -

 아틸라의 군대는 다시 한번 트라키아를 황폐화시키며 콘스탄티노플 성벽에 훈족의 군대가 다다르는 한편 또 다른 훈족의 군대는 테르모필레까지 진군하였다. 동로마 제국은 하필 이 때 전염병과 기근, 지진으로 내부가 엉망진창이라 대응이 늦었다. 거기에다가 항상 그랬지만 상당수 병력들이 국경지대에서 사산조 페르시아와 대치하고 있었기에 애초에 한 팔이 묶인 동로마제국으로써는 아틸라의 군대를 제대로 상대할 없었다. 결국 비잔틴제국은 449년 아나토리우스 조약으로 베오그라드, 니스 등 현재의 세르비아 지역을 아틸라에게 할양할 수밖에 없었다.(4)

 이후 아틸라는 관심을 서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마침 서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아누스 3세의 여동생 호노리아가 나이 많은 원로원 의원과의 강제 약혼을 피하기 위해 아틸라에게 청혼하면서 지참금으로 제국의 절반을 주겠다는 편지와 반지를 보냈다. 거기에 반달족이 은밀히 서로마를 치도록 훈족을 선동했고 살리안 프랑크족 내에서 후계 분쟁이 발생, 이 문제에 서로마와 훈족 양측이 모두 개입하게 되면서 아틸라가 개입할 명분은 충분히 갖춰지게 되었다. 이미 충분한 영토를 가진 훈족이었지만 아틸라는 그 땅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틸라는 서로마 제국의 최고 실력자 아에티우스와 훈족의 우호관계(5), 슬슬 내부를 정리한 동로마제국의 반격을 모조리 무시한 채 451년 갈리아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File:Huns empire.png

 - "충분히 넓군. 하지만 난 더 넓은 땅을 원해. 땅! 땅! 땅이 부족해!" -

 그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메츠를 함락시킨 뒤 오를레앙을 포위하였다. 서로마의 실권자 아에티우스는 서로마군만으로는 오를레앙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갈리아출신의 원로원 의원 아비투스를 통해 서고트족의 왕 테오도릭 1세를 설득하고 프랑크, 부르군디 족, 알란족 등을 끌어들여 군대를 편성하였다. 이를 안 아틸라는 협공을 우려하여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고 트루아 근처 카탈라우눔 평원으로 후퇴했다. 곧 서로마-서고트 연합군도 카탈라우눔 평원에 도착해 진을 쳤다.

 아틸라는 전투 전 날 무당으로 하여금 점을 치게 했다. 그 결과 전쟁에서 훈족이 지지만 대신 적의 수장이 죽을 거라는 점괘가 나왔다.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판단한 아틸라는 전투를 준비했다. 그는 훈족의 군대가 중앙을, 휘하 부족인 동고트족은 좌익, 게피다이족은 우익을 맡게 하였다. 정예병력인 자신의 군대로 중앙을 돌파하려는 것이었다.

 반면 아에티우스는 테오도릭 1세의 서고트 군을 우익, 알란족 족장 상기반이 이끄는 군대는 중앙, 자신의 군대는 우익에 배치했다. 또한 테오도릭 1세의 아들 토리스먼드로 하여금 언덕을 미리 점거하게 하였다. 이들 중 가장 허약한 것은 상기반이 이끄는 중군이었는데, 아에티우스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따로 이유가 있었기에 그들을 중앙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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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마-서고트 연합군과 훈족 군대의 배치도 -
 
 이런 배치 상황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훈족의 군대는 곧 중앙으로 쇄도하였으며 동시에 서고트와 동고트의 군대도 서로 맞붙었다. 이 교전에서 테오도릭 1세가 전사하였지만 언덕에서 내려온 토리스먼드의 지휘하에 서고트족은 전열을 정비하고 전투를 치룰 수 있었다. 반면 게피다이족과 서로마군은 대치상태를 계속 유지했으며 훈족의 군대는 알란의 족장 상기반의 군대를 몰아붙였다. 당연하겠지만 상기반의 군대는 곧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훈족의 뒤에 서로마 군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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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어. 근데 뭔가 뒤통수가 근지러운데...."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

 졸지에 알란과 서로마군에게 협공당한 신세가 된 훈족 군대는 패퇴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동고트, 게피다이 군도 후퇴하기 시작했다. 서로마-서고트 연합군은 이들을 추격, 많은 적들을 참살했다. 그 과정에서 토리스먼드가 실수로 훈족 진영에 들어갔다가 부상을 입고 탈출한다던지, 날이 어두워져 자기 진영을 찾지 못한 아에티우스가 서고트 군영에서 하룻밤 묵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다음 날 연합군은 아틸라의 진영을 포위했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변하자 아틸라는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안장을 올려놓아 여차하면 분신자살할 채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아에티우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먼저 토리스먼드를 돌려보낸 후 후퇴하면서 훈족은 무사히 판노니아로 후퇴할 수 있었다.(6)

 그러나 훈족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곧 세력을 회복했다. 이듬해인 452년 아틸라는 다시 한 번 서로마를 침공했다. 이번 목표는 이탈리아였다. 아틸라의 군대는 말그대로 질풍노도로 이탈리아를 휘저었다. 많은 주민들이 갯벌뿐인 현재의 베네치아로 피난을 갔고 아퀼레이아의 경우 쑥대밭으로 변했다. 갈리아에 있던 아에티우스는 훈족에 대항할 군사력을 모으지 못해 갈리아에서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File:Huns by Rochegrosse.jpg

- "아에티우스 없는 서로마는 이순신 없는 조선이다! 야. 가진거 다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

발렌티아누스 3세는 서로마의 수도인 라벤나를 버려야했다. 그러나 아틸라의 자비심 없는 군대는 로마 성벽까지 육박했다. 한때 천년제국의 수도였지만 410년에 서고트족에게 약탈당했던 도시, 하지만 아직도 그 천년제국의 상징이자 유럽의 중심지였던 로마의 앞날이 위태로워보였다. 로마가 신의 채찍에 의해 불타는 것이 머지 않아 보였다. 그 순간 훗날 성인으로 시성될 교황 레오 1세가 아틸라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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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틸라여. 로마를 공격하지 마시오," -

 그리고 아틸라는 레오 1세와의 회담 직후 돌연 후퇴했다. 교회의 전설에서는 아틸라가 성 베드로 등이 레오 1세를 호위하는 환시를 보고 놀랐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레오 1세의 뛰어난 협상 능력 덕에 로마가 무사하게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후 아틸라는 453년 일디코란 이름이 전해져내려오는 게르만인 신부를 맞이하고 첫날밤을 보내다가 급사했다. 그의 죽음에는 복상사라는 말이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단언컨데 신의 채찍, 신의 형벌이라 불리며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든 인물의 죽음 치고는 참 허무하다는 것이었다.

 <아틸라 그 이후>

 아틸라는 생각만큼 야만스러운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 로마, 게르만 출신의 대신과 서기를 두었고 하인들에게 부드러웠으며 검소한 삶을 추구했다고 알려져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훈족이 아틸라에게 너무 기대었던 것은 확실했고, 또 아틸라가 적을 많이 만든 것도 사실이었다. 이것은 곧 독이 되었다.

 아틸라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아들인 엘락이 이었지만 바로 훈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동고트족과 게피다이족의 반란이 터졌다. 454년 판노니아의 네다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훈족은 반란군에게 패배했고 엘락은 살해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훈족은 판노니아에서 쫓겨나 러시아의 스텝지대로 쫓겨나게 되었다.

 한편 아틸라의 다른 아들 뎅기자르는 군대를 이끌고 동로마를 찾아가 콘스탄티노플이 그에게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틸라가 없어지고 훈족이 약체화된 지금 동로마가 그렇게 할 이유는 없었다. 동로마는 오히려 뎅기자르가 무릎꿇을 것을 요구했다. 

파일:Leo I Louvre Ma1012.jpg

- "뎅기자르씨. 무슨 마약하셨길래 그런 생각 하셨어요? 어디서 허세질? 현실을 보삼. 님하가 내 신하가 되는게 맞음." -

 뎅기자르는 그 말을 듣자 바로 동로마제국을 공격했으나 당연히 대패, 전사하고 그의 머리는 콘스탄티노플의 원형경기장에 전시되었다. 반면 또 다른 아틸라의 아들 에르나크는 동로마제국에 자비를 구걸, 신하가 되는 대신 땅을 달라고 청원했고 동로마제국은 현재의 도브루자 지역을 그들에게 주어 에르나크와 그 부하들이 그 곳을 수비하게 했다.

 러시아 초원으로 후퇴한 훈족은 쿠트리구르 훈과 우투르구르 훈으로 나뉘어졌다. 이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변했으며 동로마는 이들을 적절이 이간질하고 위협적인 인물이 나타나면 제거하면서 그들의 세력이 강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한때 쿠트리구르 훈이 다시 콘스탄티노플을 급습하는 상황이 유스타니아누스 대제 시절 벌어지기는 했지만 곧 벨리사리우스에게 격퇴되었다. 그러다 이들은 아바르의 공격을 받고 이후 돌궐에게 복속되었다가 대불가리아의 일원이 되었다. 하자르족의 압력으로 대불가리아가 붕괴된 후 양 훈족은 모두 불가르족을 따라 흩어졌다가 불가르에게 동화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훈. 독일의 멸칭이 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900년. 중국에서 의화단의 난이 일어났다. 부청멸양을 외치며 서양인들을 닥치는대로 잡아죽이면서 열강들의 심기를 거스르던 이들이 베이징에 입성하고, 서태후가 의화단의 주장에 따라 서양을 배격하는 명령을 내리자 열강들은 8국 연합군을 결성, 베이징을 공격한다. 이 때 독일 역시 참전했는데 당시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는 중국으로 원정을 가는 군사들을 사열하면서 훈족과 아틸라처럼 중국에 가서도 자비를 보이지 않고 포로는 필요없다는 식의 연설을 하였다. 

- "알겠나. 훈족처럼. 자비심 따위는 일체 보이지 말고 저 의화단인지 뭐시기인지 때려잡아라! 알았지?" -

 그 연설이 훗날 독일의 멸칭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14년 후 독일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등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1차세계대전이었다. 이 때 독일군을 야만스럽게 묘사하기 위해 프랑스 등에서 당시 빌헬름 2세의 연설을 인용, 독일을 훈으로 칭하며 경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1차대전이 끝난 후에 벌어진 2차대전때도 연합국 정상들도 휼륭하게 써먹으며 훈은 독일의 멸칭이 되었다. 하여튼 입이 방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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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내가 한 말이 이런 식으로 활용될 줄 몰랐을 뿐이라고!" -

 <대중매체 속의 훈>

 대중매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훈족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파생작품은 누가 뭐라고 해도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이자 바그너의 가극으로 잘 알려진 니벨룽겐의 노래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물론 주 이야기는 지크프리트와 크림힐트, 군터, 프린힐트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크림힐트가 재혼한 인물이 바로 훈족의 왕 에첸으로써 에첸의 모델은 아틸라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File:Siegfried and Kriemhild.jpg

- "우리가 아틸라랑 관계가 있다. 이 말씀이야." -

  영화에서도 훈족 및 아틸라는 자주 등장하는데 그 외모 묘사는 영화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일단 영화 훈족의 왕 아틸라는 배우가 제라드 버틀러라 그런지 백인으로 묘사된 반면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묘사된 아틸라는 완벽한 몽골로이드로 묘사되어있다. 주의할 점은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아틸라는 좀 깬다...

- "내가 백인이었던가? 에라 모르겠다." -

 
- "우리가 이래보여도 사실 어릴 때 정말로 쓸쓸했어. ㅠㅠ" -

 그 외에도 훈족은 게임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로마 토탈워 바바리안 인베이젼은 훈족의 침공 및 그에 따른 게르만 대이동을 다루고 있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도 훈족이 등장하며 따로 미션까지 존재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 훈족은 특수유닛 타르칸 자체는 그닥 주목받지 않으나 집을 짓지 않아도 된다는 특성 및 뛰어난 기마 궁사의 존재로 사기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컨쿼러에서의 아틸라 -

(1) 포이데라티 : 로마의 군사 동맹국 및 동맹 부족들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2) 이 때 넘겨준 인질 중에 아에티우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3) 아틸라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설이 있다.

(4) 다만 동로마 제국은 협상 과정에서 아틸라를 암살하려고 시도하는 한편 아틸라에게 복속된 하자르족의 반란을 선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 시도 모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 정보가 아틸라의 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틸라는 이 사절단을 무사히 돌려보내는 대신 동로마 제국의 황제를 조롱하는 편지도 같이 보냈다.

(5) 아에티우스는 오랫동안 훈족의 인질이 되어있었기에 훈족과 친분이 있었다. 그는 훈족에게서 빌린 군사력으로 서로마 내에서 정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한때 권력투쟁에서 패배하여 정적들에게 쫓길 때 그는 훈족에게 투항한 적도 있었다. 물론 다시 복귀할 때도 훈족이 아에티우스를 지원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6) 그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훈족과 아에티우스의 우호관계, 서고트에 대한 견제 심리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서로마 황실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충분했고 그의 목숨을 재촉했다. 이는 스틸리코와 같은 전철을 밟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덧글

  • 크핫군 2012/01/14 23:50 #

    훈족들중 상당수는 로마군으로 편입되지 않았나요? 'ㅅ'
  • 로자노프 2012/01/15 16:41 #

    글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 델카이저 2012/01/16 13:12 #

    각 병사들이 꽤 오랫동안 로마군내 용병으로 복무하긴 했는데 서고트 족 처럼 부족 단위로 용병으로 안착한 케이스는 거의 없습니다.
  • 셔먼 2012/01/15 02:45 #

    확실히 아틸라가 이룬 업적이 너무나도 컸던 나머지 훈족의 차기 지도자들은 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죠.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사후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을 듯 합니다.
  • 로자노프 2012/01/15 16:41 #

    정확히 말하면 통치력 미숙인듯요.
  • 萬古獨龍 2012/01/15 03:12 #

    지도자가 너무 뛰어나면 뒤가 안좋아진다는 법칙은 훈족도 마찬가지군요
  • 로자노프 2012/01/15 16:41 #

    정확히 말하면 통제가 제대로 안 된 것 같습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2/01/15 11:51 #

    어차피 훈족이 제대로 된 통치체제를 세우지 못한 이상 훈족의 제국은 원나라보다도 취약했겠지욤. 아틸라가 전장에서는 뛰어난 전사였던 점은 인정하지만 통치력 면에서는 점수를 높게 주기가 힘든 이유가 그것이라고 봅니다.
  • 로자노프 2012/01/15 16:41 #

    동감입니다.
  • 행인1 2012/01/15 11:56 #

    훈족에 대한 묘사를 보면 훗날의 몽고족이 연상되는군요.
  • 로자노프 2012/01/15 16:42 #

    몽골은 더욱 규모가 컸지요. 어떤 면에서는요.
  • Mr 스노우 2012/01/15 13:29 #

    영화 <아틸라>는 로마군 묘사도 제국 말기 로마군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상당했지요;;;
  • 로자노프 2012/01/15 16:42 #

    아. 그런가요.
  • 나산 2012/01/15 14:09 #

    그러고 보니 박살 훈족 ㅋㅋㅋㅋㅋ
  • 로자노프 2012/01/15 16:42 #

    ㅋㅋㅋㅋㅋ
  • chojae 2012/01/15 20:23 #

    훈족이 한반도에서 기원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나요? 그건 모든 걸 한반도 안으로 몰아 넣기 좋아하는 **같은 사람들이겠죠^^ 몽골로이드라고 해서, 혈연이 관련이 있다는 게 아니라, 흉노와 한국인 중 한 부류가 함께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중국 한족을 어떤 특정 혈연을 가진 민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언급했다면, 아주 잘못된 비교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유전자인류학 연구가 있었지만, 중국 한족이 상염색체상, 혹은 mt-DNA, 혹은 부계 Y-haplo 중에 다른 동아시아 주변과 뚜렷이 구별되는 고유함이 있다는 게 밝혀진 게 없습니다. 부계에서 jst002611이 인근 동이계통 민족보다 좀 더 비율이 높다는 정도입니다. 중국 한족은 정치적 문화적 공동체로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미국인이 하나의 민족이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님과 말한다면, 어차피, 현생인류는 같은 호모사피엔스인데, 뭣하러, 민족 나누고, 인류학 연구합니까? 유전자나 혈연이 정치,사회, 역사, 문화, 언어 등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기에 연구하는 것이지, 당위론에 입각해서, 낡은 민족주의를 버리자는 구호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목민이나 유목적 생활양식을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지만, 이들이 한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는가 아닌가는 객관적 과학적 문제입니다. 개인적 취향때문에 귀로 흘리고 싶으면, 잘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보다 아예 거론을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 로자노프 2012/01/15 23:59 #

    그 환빠 맞습니다. 아 근데 거론은 하는게 이 연재 취지 중 하나가 최대한 다루고 있는 민족과 관련해서 다양한 정보(비역사적인것도)도 같이 소개하는 거라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저 설을 안 다룰 수도 없어서요.
  • 오스왈드 2012/01/15 21:13 # 삭제

    니벨룽의 노래에 나오는 훈족의 왕 에첼은 아틸라가 아닌 헝가리왕 이슈테판을 모델로 했다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거기 훈족은 이미지가 좋거든요...
    아틸라를 직접 모델로 했다 여겨지는 쪽은 시구르드 사가의 아틀리고요
    이쪽이 이슈테판보다 늦기 때문에 바투의 침입에서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있죠
    그리고 아틸라의 경우 이름이라기 보다는 미칭 즉 왕을 칭하는 호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이탈리가 고트어 표기인데 고트어에서 아버지를 아타라 부르거든요
    울필라스가 번역한 고트어 성경에서 주기도문 첫 두 단어-우리 아버지-를 아타 운제레라 번역했죠

    그리고 니벨룽의 노래 인용한 그림의 매는 저 둘의 운명을 상징합니다
    송골매를 독수리가 잡아먹는 꿈을 꾸고 크림힐트 모친이 해몽하지요
    영웅과 결혼할 운명이되 영웅이 죽을 운명이다
  • 로자노프 2012/01/15 23:59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DeathKira 2012/01/15 22:41 #

    고대말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훈족이군요.
    유목국가의 특징인 (훈족을 국가 단계로 볼 수 있는지도 문제지만),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뭉쳐서 패권을 누리다가, 그 지도자의 소멸과 함께 국가도 소멸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들이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다음은 아바르족이려나요..
  • 로자노프 2012/01/15 23:59 #

    네. 아바르가 될 것입니다. 다만 다른 유목민족 하나가 같이 다뤄질 예정입니다.
  • 오스왈드 2012/01/16 09:13 # 삭제

    호노리아는 원로원 의원과 결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반역을 꾀하다 수녀원에 유폐되었고
    자기 구원겸 야망을 채우고자 아틸라를 이용하려 한 거죠
    딸내미 하나가 나라 망하게 할 뻔 한...
  • 로자노프 2012/01/16 22:36 #

    근데 그게 자료가 다릅니다. 어떤 건 독신생활에 짜증나서라고 하고 영어 위키백과 등 일부에서는 강제 약혼이라고 하고 또 일부는 반역이라고 하고... 일단 영문위키피디아를 채택했습니다.
  • 오스왈드 2012/01/17 05:27 # 삭제

    역사 서적이나 학계에서는 반역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반역으로 유폐되고 자신이 구제받기 위해....
    영화 아틸라도 그 입장을 취했죠
  • 메발루이 2012/01/17 12:36 #

    독일이 왜 훈족과 관련이 되었나 궁금했는데, 이것하고도 꽤 관련이 있었군요.

    굳이 이상한 예를 들면 두고두고 욕을 얻어먹게 되는가 봅니다.
  • 로자노프 2012/01/17 17:57 #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의도치 않았겠지만 참....
  • 누군가의친구 2012/01/18 19:13 #

    아틸라와 훈족은 참 ㅎㄷㄷ 하지요. BBC던가 어딘가 IPTV로 제공된 VOD 보니까 역사적 5명의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틸라였지요. 여전히 유럽에 미친 영향은 남아있는듯 합니다.
  • 로자노프 2012/01/18 22:10 #

    아무래도 충공깽이긴 했으니까요.
  • 오스왈드 2012/01/19 12:59 # 삭제

    여담으로 현대가 유럽 진출할 때 저 훈족 때문에 참 힘들었다 합니다
    현을 자꾸 휸으로 읽으려 해서....
  • 로자노프 2012/01/19 17:50 #

    이런 이런...
  • 기번 2012/04/15 00:35 # 삭제

    로마인이 묘사한 훈족은 몽골로이드 비슷한데 반해, 중국인이 본 흉노 왕족은 키가 크고 장대한 백인이죠.
    흉노가 여러 인종의 복합체인 건 확실하지만, 왕족, 귀족들은 키가 2미터에 달하고 코가 오똑하며 머리와 수염이 붉고, 눈이 녹색이라고 했죠. 특히 흉노인들은 검은 눈과 머리를 혐오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흉노와 훈족의 연관성이 낮다는 말도 있죠.
  • 기번 2012/04/15 00:41 # 삭제

    중국의 사학계에서는 만약 흉노와 훈족이 연관성이 있다면

    1. 원래 흉노는 백인이었는데 몽골리안과 혼혈되서 흉노인처럼 된 거다.
    2. 원래 흉노는 몽골리안으로 서천하면서 혼혈되서 백인이 된 거다.
    3. 흉노의 지배층인 백인은 아시아에 남고 피지배층인 몽골리안이 유럽에 등장했다.

    물론 흉노와 훈족이 동족이라는 설정에서 이런 가설을 내놓는 모양입니다.
  • ㅎㅎ 2012/08/14 00:25 # 삭제

    첫번째 사진은 흉노 묵돌선오 관련된것으로 아는데요
    내가 백인이엇던가 ㅋㅋ
  • 환마나한빠나 2014/06/11 16:55 # 삭제

    훈족의 한민족 기원설의 개헛소리는 한 제국 후 로마가 한족에 알려진 후 한족의 후예에 의해 로마가 세워졌다고 역사서에 기록한 중국의 사관과 함께 매장 되어야 할 부분이죠.
  • 위장효과 2014/06/17 22:39 #

    2년전 글에다가 답글 하나...

    훈족의 한반도 기원설은 독일의 역사관련 다큐 프로그램에서도 한 번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대본을 기반으로 해서 나온 책이 "역사의 비밀 1,2"-저자인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본인이 이 다큐 대본도 썼고-. 물론 이 책의 한국어 번역자는 (역자 주: 이건 근거없는 소리임-실제로는 무지 깁니다^^) 이렇게 정리해버렸습니다 ㅋㅋㅋㅋ.

    이거 누친님 글에다가도 한 번 적었던 거 같은데...하여간 의외로 서양 다큐쪽에서-이거 제작자들이 학자들에게 자문 안 구하나? 전문가 자문없이 뻘소리 날리는 건 한국 제작자들 종특인 줄 알았더만- 이런 소리 하는 경우들이 가끔 있더라고요. 대신 그 친구들이 수메르=수밀이, 이집트=이 집의 터...이런 드립들으면 그야말로 배꼽잡고 웃어제끼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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