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유목민들 <2> 사르마티아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사르마티아의 기원 - 헤로도토스의 이야기>

사르마티아인들은 스키타이인들처럼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종족으로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기원전 7세기경 돈강 동쪽에서 출현했던 유목민족이다. 그리스인들은 이들을 사우로마태라고 불렀다. 이들의 언어는 스키타이와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기록에 의하면 스키타이어의 방언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기원에 대해 헤로도토스는 상당히 흥미있는 이야기를 썼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언젠가 그리스인들은 지금의 터키 북부에 있던 테르모돈 강에서 여전사들로 유명한 아마존족들을 대패시키고 상당수의 아마존 여전사들을 포로로 잡았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이 포로들을 배 3척에 나눠 태우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File:Amazon trousers BM VaseB673.jpg

- 우리가 포로가 되다니! 이럴 수가! -

 문제는 흑해 위에서 발생했다. 포로로 잡힌 아마존 여전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선원들을 몰살시키고 배를 장악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배를 조종할 줄 몰랐고 정처없이 표류하다보니 흑해 북쪽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상륙해보니 이들이 상륙한 곳은 스키타이인들의 영역이었다. 아마존 여전사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스키타이족을 털어버렸다! 스키타이족은 처음에는 기겁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곧 상대가 여자들인것을 알고 유혹하기로 결정하고 유혹을 담당할 사내들을 선발했다. 어찌어찌하여 유혹을 위해 선발된 스키타이 남성들은 아마존 여성들을 유혹하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유혹 성공은 좋았는데 성공한 순간부터 아마존 여성들이 스키타이 남성들 위에 군림해버렸다! 아마존 여성들은 자신들의 자유가 소중하다며 고향으로 데려가려는 스키타이 남자들을 갈궈서 미리 스키타이 남성들의 유산몫을 받아챙긴 후 남자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이 사르마티아인들은 적어도 헤로도토스가 살았던 시기에는 이미 꽤 강력한 세력을 구가했던게 아닌가 싶다. 헤로도토스가 신빙성은 의문일지라도 이런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썼을 정도이니. 거기에다가 페르시아군이 스키타이를 침공할 때 이들은 스키타이족에 서서 페르시아와 싸우며 나름대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기원전 500~400년 경부터 이미 이들의 세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르마티아. 초원의 지배자가 되다>

- 지난번 연재분 짤방 재탕. 1번은 기원전 4세기경의 스키타이 경기병, 2번은 기원전 4세기 경의 초기 사르마티아 전사, 3번은 기원전 5세기 경의 사르마티아 여전사 -

 이렇게 강화된 힘으로 사르마티아인들은 기원전 300년경부터 스키타이를 몰아내고 유럽의 초원지대를 평정했다. eb모드의 배경이 된 기원전 270년 경에 우크라이나에 스키타이가 아닌 사르마티아(사우로마태 Sauromatae)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르네 그루셰에 의하면 이들은 기본적으로 긴 기병창을 사용했고 이를 이용한 충격기병들을 잘 활용했다고 알려져있다. 이들이 이런 충격전술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최초로 전투 목적으로 쓸 수 있는 단단한 안장을 고안해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르마티아가 긴 기병창을 사용한 것은 맞지만 기원전 4세기경 스키타이를 몰아낼 무렵까지만 해도 그들의 주력은 스키타이와 마찬가지로 궁기병이었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한다.(1)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르마티아가 콘토스라고 알려진 기병창등을 활용한 것은 기원전 2~3세기 경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기술의 영향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 무렵 유입된 중앙아시아 문화의 영향으로 사르마티아는 중무장 기병, 카탁프락토이들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이들은 원뿔형 투구를 썼고 쇠미늘 갑옷을 입었다고 알려져있다. 단 그리스 여행가 파우사니아스는 이들이 암말의 발굽을 쪼갠 조각을 황소의 힘줄 같은 것으로 묶어서 갑옷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File:Sarmatian crown.jpg

- 사르마티아의 왕관 유물 -

 이들의 문화는 스키타이처럼 동물문양을 좋아했지만 스키타이와 비교할 때 기하학적 장식을 더 좋아했고 금속 위에 색이 있는 도료를 입히는 것 역시 즐겼다고 알려져있다. 이런 이들의 문화는 프로호로프카 문화라고 알려져있다. 여담으로 헤로도토스의 이야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들도 사냥이나 전투 등에 참여했다고 알려져있다.

 추가로 보리스 그레코프란 러시아 사학자의 기준에 의하면 사르마티아는 다음 4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사우로마티안 시기로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에 해당하는 시기, 그리고 기원전 4세기 ~ 기원전 2세기의 초기 사르마티아, 기원전 2세기 후반 ~ 서기 2세기 후반 까지의 중기 사르마티아, 서기 2세기 후반 ~ 서기 4세기까지의 후기 사르마티아가 그 기준이다.

- 현재 제작중인 eb 2 모드 시작 당시의 사르마티아 상태 스샷- 
 
 이전에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의 스텝을 지배했던 킴메르나 스키타이가 주로 아시아 지역을 괴롭힌 것으로 유명한 반면 사르마티아는 파르티아 내전에 개입하거나 아르메니아를 공격하는 등, 아시아 지역에도 출몰하기는 했으나 주로 다키아나 모에시아(불가리아), 판노니아 등 유럽 지역을 약탈하였다. 당연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이들은 로마와 충돌했다. 다만 몇몇 사르마티아 부족들을 제외하고는 다키아와 사르마티아 사이의 영역을 지배하던 게르만 계의 바스타르내 인들의 영역에 가로막혀, 로마의 속국인 보스포루스 왕국을 통하지 않고는 로마와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사르마티아인들은 이 시기 유목민족들이 흔히 그렇듯이 여러 부족들의 잡다하게 섞여있었다. 이 부족들 중에서 사르마티아 내부를 대표할만한 부족은 크게 4 부족으로 나눌 수 있다. 바로 이아지게스, 록솔라니, 아오르시, 시라케 족이다.

 <이아지게스>

 사르마티아의 여러 부족들 중 하나인 이아지게스(Iazyges)는 본래 돈강에서 살고 있었으나 점차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이 과정에서 흑해 북부 지역을 제패하려는 폰토스와 대결하기도 했으며 기원전 16년 경 다뉴브강 하류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곧 이 지역을 거점으로 로마의 영토였던 마케도니아를 기습하였다. 이후 이아지게스 등을 필두로 한 사르마티아의 로마 약탈이 300년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아지게스 족은 얼마 안 가 다뉴브 중류의 판노니아(지금의 헝가리)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동맹인 게르만 계 콰디족의 내분에도 개입했고 서기 92년에는 록솔라니, 다키아인들과 함께 21 라팍스 군단을 전멸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File:032 Conrad Cichorius, Die Reliefs der Traianssäule, Tafel XXXII.jpg
 
 - 트라야누스 원주에 새겨진 로마, 다키아 전쟁 묘사 -

 이후 이들은 록솔라니, 다키아와 함께 오현제 중 한 명인 트라야누스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결국 다키아는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속주가 되었다. 그 뒤 마지막 오현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 때 벌어진 마르코만니 전쟁에서 이아지게스족은 대패하고 로마와 평화협상을 맺었다. 


 - 로마 용병이 된 사르마티아인들. 1번은 2세기 후반~3세기 경의 이아지게스 드라코나리우스 2번은 사르마티아 위병 -

그러나 기병이 허약한 편이었던 로마는 이아지게스 기병들에 눈독을 들여 서기 175년 8천명의 병력을 보조군으로 징집하는 한편 5500명의 사르마티아인 병력을 브리타니아에 주둔시켰다. 킹 아더가 사르마티아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하였다. 덤으로 엑스칼리버 전설 역시 사르마티아인들이 검을 소중히 여기는데 그것이 브리튼 섬에 파견된 사르마티아인들에 의해 전파된 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습니다.
 
 
- 엑스칼리버라던지 아서왕 전설은 어쩌면 사르마티아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

 다만 이후에도 이아지게스는 간혹 가다 로마에게 반항하였다. 이들은 서기 248~250년에 다키아를 침공하고 252년에는 판노니아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282년 카루스 황제의 로마군에게 패배한 이후로 이들은 사라졌다. 다만 몽골에 쫓기던 쿠만족을 따라 헝가리로 피난을 왔다가 정착한 자시크 인(2)들의 명칭은 이아지게스족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있다.

 <록솔라니>

- 다키아 전쟁 당시의 록솔라니족. 1번은 록솔라니 중무장 창기병, 2번은 록솔라니 궁기병 -

 역시 사르마티아에 속한 여러 부족 중 하나였던 록솔라니(Roxolani)족은 이아지게스족과 마찬가지로 본래는 돈강 유역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타시우스란 지도자의 지휘 아래 크림 반도 지역을 두고 기원전 107년 폰토스랑 대결하기도 하였으나 폰토스의 장군 디오판투스에게 패배하였다. 이후 이들은 이아지게스족이 다뉴브 하류를 떠나자 이아지게스 족이 떠난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그 곳을 발판으로 로마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서기 69년 모에시아(현재의 불가리아)에서 9천명의 록솔라니 병력이 로마군에게 대패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서기 92년 이아지게스족 등과 함께 21 라팍스 군단을 전멸시킨 것으로 되갚았지만.

 그렇지만 록솔라니는 트라야누스와의 전쟁에서 다키아를 돕다가 패배, 이후로도 로마와 아웅다웅 다투다가 서기 3세기 경에 이르러서는 로마의 용병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서기 4세기 경 훈족에게 정복당했다.

  <시라케>

  사르마티아에 속한 여러 부족 중 하나인 시라케(Siraces)족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지역에서 살았다. 기원전 4세기경 이들은 아르파네스 왕의 지휘 하에 보스포로스 왕국을 침공했지만 타테스 강에서 보스포로스 왕국군에게 패배하였다. 이후 이들은 보스포로스에 대한 정책을 바꾸어 보스포로스 왕국과 시종일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들은 카프카스 남부의 아르메니아, 파르티아와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이들과 교역을 하기도 했고 폰토스에 군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들은 반유목 생활을 하며 인구의 과반수 이상은 정착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시라케족의 힘은 점점 약해졌으며 193년 보스포로스 왕국에서 일어난 분쟁에서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아오르시>

- 아오르시인과 사르마티아인. 1번은 사르마티아 중기병, 2번은 아오르시 귀족 -

 시라케족의 거주지 북쪽과 동쪽에는 아오르시(Aorsi)라는 부족이 살고 있었다. 스트라보에 의하면 이들은 20만명의 기병을 보유한 강력한 부족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들은 서기 49년 벌어진 보스포로스 전쟁에도 개입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역시 힘이 점점 쇠약해졌고 결국 중앙아시아에서 이주, 새롭게 사르마티아를 구성하는 일원이 된 알란족에게 흡수당했다. 이 알란족 역시 사르마티아와 관련되어 있지만 이 민족은 나중에 따로 언급할 것이므로 설명은 생략한다.

 <사르마티아의 쇠락>

 서기 3세기 경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스칸다니비아에서 건너온 고트족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당연하겠지만 고트족과 사르마티아는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보병 중심이었던 고트족이(3) 불리해보이는 싸움이었지만 이들은 마갑이 미처 보호하지 못하는 말의 다리로 달려가 힘줄을 베는 방식으로 사르마티아와 싸워 결국 스텝의 패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4)

 그리고 여기에 더해 사르마티아 계 부족들은 로마와의 싸움에서도 패하는 일이 잦았다. 이런 사르마티아의 쇠락에 쐐기를 박은 것이 바로 훈족의 침공이었다.

http://pagesperso-orange.fr/jean-francois.mangin/romains/fenetres_filles/images/huns_gd.jpg

- 모두 공포에 떨어라! 우린 신의 채찍이자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다! -

 물론 훈족은 고트족을 비롯하여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 스텝의 모든 민족들을 정복하였다. 이제 사르마티아 역시 훈족의 부하로써 훈족의 원정에 동행하였다. 사르마티아 기병들은 아틸라의 휘하에서 중기병으로 활약한 듯 하지만 아틸라 사후 훈족이 세운 제국이 공중증발하면서 사르마티아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다만 사르마티아의 일원이었던 알란족만큼은 그 명맥을 이어나갔다.

 <사르마티즘>

- 사르마티즘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17세기 폴란드의 갑옷. 실용성은 별로였다고 한다. -

 한편 사르마티아는 16~17세기 경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6세기경 고대 로마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역을 사르마티아라고 불렀던 것이 알려지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귀족들. 즉 슐라흐타들 사이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인들의 조상은 사르마티아인들이란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르마티즘은 슐라흐타 사이에서 대유행, 슐라흐타 사이의 평등의식, 기마취미, 전통 중시, 평화주의와 함께 오리엔트적 취미를 가지게 하였다. 이런 사르마티즘은 초기에는 독일인,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등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던 연방 내 귀족들을 단합시키고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등의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File:Stanislaw Antoni Szczuka (1652 1654-1710).jpg

- 사르마티즘의 영향을 받은 복장을 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귀족 -

 하지만 애초에 사르마티즘은 지그문트 등 외국인 출신 폴란드 왕들이 추진하는 서구화에 대한 귀족들의 반서구화적 반동의 산물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후기 사르마티즘은 신앙심을 광신시키고, 무지를 불러일으키고, 자유를 무질서로 변모시켰다. 이런 사르마티즘의 부정적 면모때문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멸망해버린뒤 개혁가들에게 사르마티즘은 열심히 공격받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붕괴는 자기 모순에 의한 것이라고 포장하려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에 의해 또다시 비판받게 되었다.

(1) 그래서인지 eb모드에서는 사르마티아에는 궁기병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2)
자시크인들은 알란인들의 후예이며, 알란은 사르마티아의 일원이기도 했다. 어떻게 본다면 자시크인들은 사르마티아의 후예라고도 볼 수 있겠다.

(3) 다만 고트족은 궁병도 다수 운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4) 그래도 고트족의 피해가 크기는 컸던지 이후 고트족은 사르마티아 중기병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중기병들을 운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덧글

  • 나산 2012/01/07 18:40 #

    근데 혈통적으로 폴란드 - 리투아니아랑 관련이 있긴 한가요?
  • 로자노프 2012/01/07 22:01 #

    전혀. 사르마티아는 슬라브랑 별로 연관이 없으니까요.
  • 크핫군 2012/01/07 18:44 #

    오오오 훈 오오오
  • 로자노프 2012/01/07 22:01 #

    다음 편은 저 친구들이 될 겁니다.
  • 아무것도없어서죄송 2012/01/07 18:47 #

    잘 보고 갑니다. 우오옹
  • 로자노프 2012/01/07 22:01 #

    감사합니다.
  • 대공 2012/01/07 18:49 #

    여자 무서워요 여자
    저 가슴...아니 사슴 왕관 유물 신라왕관하고 한번 비교된 적 있지 않나요?
  • 로자노프 2012/01/07 22:02 #

    저도 그거까지는 잘... 확실한건 스키타이 유물과 신라 유물의 연관성이 지적된 적은 여러번 있습니다만.
  • 대공 2012/01/08 03:28 #

    근데 문제는 저 유물이 스키타이 유물이라고 소개되었던걸로 기억하거든요 =ㅠ=
  • 로자노프 2012/01/08 10:42 #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스키타이랑 헷갈릴수도... 스키타이도 동물 유물로 유명하니까요.
  • 초효 2012/01/07 18:55 #

    사르마티아의 일파인 알란 족은 아직도 남아 있죠.
    민족 대이동 시절에 고트족, 반달족을 따라 유럽을 쑤시고 다니고 북아프리카까지 갔습니다.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방의 명칭 유래가 '고트알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현재 알란족의 후손은 카프카스 지역의 오세티아 인들입니다. 현재는 러시아연방의 북오세티아 공화국의 일원으로 살고 있지요.
  • 하늘 2012/01/07 20:34 #

    몽골제국기에 몽골로 이동한 알란인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 로자노프 2012/01/07 22:02 #

    초효// 알란족은 추후 다룰 예정입니다.

    하늘// 뭐 그때라면야... 헝가리인이 몽골로 끌려간 적도 있던데요.
  • 하늘 2012/01/07 23:22 #

    로자노프 님//

    알란(정확히는 아스)인들의 경우가 헝가리인들의 것들하고 다른게, 얘들은 이후 몽골제국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은 쿠빌라이대에 친위군단 ─ 알란 외에도 킵착계도 존재했다고 합니다마는 ─ 을 이루었습니다. 이 친위군단이 부족들과 관계가 없다는 이유(특히 정통성이 취약한 쿠빌라이로서는;;;)로 카안들이 이들을 우대해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력의 내란이 일어난 뒤에는 꼭두각시 카안을 세우고 제국을 장악해버리죠;; 이후 이들의 정권은 순제 토곤 테무르의 시대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대원 울루스가 북방으로 돌아갈때 동행해 현재까지 그곳에 살고 있구요.
  • chojae 2012/01/08 02:25 #

    알란 중, 몽골군을 따라 동방으로 온 일족을 阿蘭 혹은 阿蘇特이라고 하죠. 북원시절 Horqin(科爾沁)부에 편입되었다가, 청제국 이후는 만주팔기의 일부로 상백기, 상홍기, 상람기 등으로 편입됩니다. 몽골이나 만주족 중에 R1b나 R1a가 제법 높은 비중으로 나오는 데, 이들의 후손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 로자노프 2012/01/08 11:18 #

    하늘,chojae//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행인1 2012/01/07 20:00 #

    1. 로마 용병이 된 사르마티아인들의 재현도는 중세 기사들을 연상시키는군요.(후기 로마로 가면 로마군의 복장과 장비가 저렇게 된다고는 하던데...)

    2. 영화 '킹 아더'에서는 어린 사르마티아인들을 징집해서 기병으로 키운다는 설정이었습니다. 단 아더는 브리타니아에서 태어난 로마 주둔군의 아들이었습니다.(영화에서 가장 깨는 것은 무장하고 싸우는 기네비어와 그의 아버지인 멀린이었지만)
  • 로자노프 2012/01/07 22:02 #

    1. 로마가 갈수록 중장기병들을 운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지요.

    2. 영화 설명 감사합니다.
  • 셔먼 2012/01/07 20:08 #

    그 선머슴 같은 스키타이 남성들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면 아마조네스 여성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 로자노프 2012/01/07 22:03 #

    그러게나 말이죠. 안습의 스키타이 남성들.
  • 萬古獨龍 2012/01/08 03:59 #

    이번 편도 잘보았습니다
    + 모에시아에서 움찔한건 저뿐인가여? ㄲㄲ
  • 로자노프 2012/01/08 10:41 #

    일단은 님뿐인듯요.
  • RuBisCO 2012/01/08 23:28 #

    사르마티아 아줌마들은 정말 ㄷㄷㄷㄷㄷ
  • 로자노프 2012/01/08 23:46 #

    그러게나 말이죠. 무서워요.
  • DeathKira 2012/01/09 00:31 #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나오는 아마존족이 사르마티아족이었군요.
    2C에 로마랑 신나게 치고 받은 종족인 건 알았는데, 좋은 거 많이 알고 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말의 하이라이트 신의 징벌 훈족느님들이 나오시는군요. 오오
  • 로자노프 2012/01/09 12:20 #

    이제 훈족이 어떤 지옥도를 만드는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오스왈드 2012/01/09 12:34 # 삭제

    아더왕은 로마군단 후퇴로 인해 혼란의 도가니가 된 브라타니아의 한 영주가 모델로 했다는 설이 지배적이지요
    더구나 우리가 아는 아더왕은 중세 후반기 로망스 열풍을 타고 만들어진 것이라...
    엑스칼리버 모델 역시 전형적 로마검이었다고 하더군요
  • 로자노프 2012/01/09 18:55 #

    뭐 그렇긴 한데 오스프리에서는 엑스칼리버를 사르마티아와 연관시키는 감이 있더군요.
  • 시바우치 2012/01/09 20:09 #

    스키타이도 여성 무덤의 부장품이나 무덤 주인들의 사인으로 보아 여전사들이 있었다고 받아들여지던데, 사르마티아도 그랬군요...켈트족도 그렇고 여성이 전투에 빈번하게 참가하는 문명이 제법 있었던 것을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 로자노프 2012/01/09 22:17 #

    으음... 사르마티아의 경우는 확실히 여전사들이 존재했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 누군가의친구 2012/01/14 03:14 #

    아, 역관광!!!
  • 기번 2012/01/24 02:35 # 삭제

    오늘 처음 와봤는데 로자노프님의 내공이 대단하시네요. 로마군은 중장 보병이라 유목 민족에게 약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로마군에게는 가공할 위력의 투석기, 발리스타, 궁수대, 같은 원거리 무기에다 기병대까지 보조 전력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유목 기병대로는 당해 낼 수가 없었죠.
  • 기번 2012/01/24 02:36 # 삭제

    그래서, 로마군이 자주 사르마티아 지역을 원정해서 승리를 거뒀다고 합니다.
  • 칼슈레이 2012/02/19 20:39 #

    갑작스레 부탁드려서 죄송하지만... 로자노프님의 유목민 이야기를 읽다가 그 깊이에 감탄하여 한가지 부탁드려봅니다.
    사르마티아에 대해 자세히 서술된 서적이나 논문을 추천해주실수 있으신지요? ^^;;
    번거로우시겠지만 한번 부탁드려봅니다.
  • 로자노프 2012/02/19 22:12 #

    흠냐... 저도 당장은 eb 2 모드 번역된 자료나 영문 위키백과를 참고해서. 정 찾으신다면 오스프리가 좋을 듯 하군요. 그리고 르네 그루셰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도 어느 정도는 참고가 될 겁니다만... 문제는 르네 그루쎼의 책은 워낙 오래전에 써져서 틀린 게 있을 수 있습니다.
  • 칼슈레이 2012/02/19 22:22 #

    그렇군요.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말고는 사르마티아에 대해 딱히 나온 책을 찾기가 힘드네요 ㅜㅜ 오스프리는 맨 엣 암스 말하시는 것인가요? 한번 찾아보아야겠네요 ^^
    답변 감사합니다 ^^
  • 이준형 2014/02/18 10:27 # 삭제

    책을읽다가, <사르마티아주의>가 무엇인지 검색을 해 보다가 이렇게 넘어왔습니다.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글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_^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