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스페인의 순혈주의 공국 문화부 직할 역사연구소

용서받지 못한 자들

 사실 스페인은 원래 유대인들에게 관대한 나라였습니다. 전에 스페인 제국의 몰락에 대해 쓰면서도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이슬람세력과 카톨릭 세력이 아웅다웅하는 특성 덕인지 유태인들은 다른 나라보다 자유롭게 스페인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상류 사회에도 진입하며 간혹 귀족이나 왕실(!!)과도 통혼할 정도 였습니다. 이들에 대한 차별의 강도는 매우 약했고 그들의 입지는 탄탄해져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14~15세기에 뒤바뀌지요. 흑사병 등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반유태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하고 종교적으로도 점차 폐쇄적으로 변하면서 유태인들은 바로 탄압받는 대상이 됩니다. 많은 유태인들이 학살되기도 했고 상당수가 강압에 못 이겨서 개종하기도 했죠. 물론 개종 유태인, 즉 '콘베르소'라고 불리는 이들도 그닥 좋은 대접을 받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이들은 어찌 되었든 1492년. 레콩키스타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간혹 고위직에 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유대교를 고수하는 유대인일지라도.

 물론... 1492년. 레콩키스타가 완료된 직후의 대추방으로 스페인에서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모조리 추방됩니다.(문제는 추방령 내린 페르난도의 고조할머니가 유태인. 더군다나 유태인들은 이 점 때문에 페르난도가 친 유태인 정책을 필거라고 예상. 카스티야 왕위 계승 전쟁 당시 페르난도에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열에서 '콘베르소'들은 어찌어찌해서 제외되었고 나름대로 공직에서 자리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이들에 대한 의심과 차별이 심해지기 시작했지요.

 콘베르소들도 그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의심을 벗어나보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유대교를 고수하고 있는 동족들을 추방시킬 것을 가장 먼저 페르난도와 이사벨라에게 건의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만이라도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질없었습니다. 이미 15세기 말엽부터 대학교 등에서 콘베르소들은 조금씩 배제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6세기 초엽. 이런 콘베르소들에 대한 차별은 톨레도 대주교구에서 발생한 사건들로 말미암아 절정에 달합니다.

 가장 먼저 터진 문제는 16세기 초엽에 톨레도 대주교 자리를 두던 아얄라가와 리베라가의 대립이었습니다. 이 두 가문이 톨레도 대주교 자리를 두고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아얄라가는 순혈성을 무기로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경쟁 가문이었던 리베라 가문을 비롯. 수많은 귀족 가문들은 전반적으로 유태인 조상이 존재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고 이는 일정 정도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아얄라가문은 피가 의심스럽다든지 유태인, 혹은 무어인 조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콘베르소나 무어인들에 대한 경멸감이 자라나고, 황제 카를 5세가 코무네로스 반란의 배후에 콘베르소가 있다고 의심하던 상황(정작 이 반란은 스페인 내부의 민족주의적 감정의 표출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거기에 민족주의가 성장하는 와중을 틈타 이를 무기로 든 거지요.

 하지만 정작 아얄라가문의 이런 시도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540년대에 비천한 가문 출신의 실리세오가 톨레도 대주교가 되면서 순혈주의는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신임 톨레도 대주교 실리세오는 그의 비천한 출신 때문에 고위 사제들이나 대성당의 참사회원들로부터 괄시받았습니다. 고위 사제들이나 대성당의 참사회원들은 거의 대다수가 고귀한 가문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리세오에게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의 혈통은 순수했습니다. 즉 유태인이나 무어인 조상이 없었습니다. 반면 고위 사제들이나 참사회원들. 예를 들어 사제장 페드로 카스티야의 경우는 분명 고귀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피 속에는 약간이라도 유태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무기로 실리세오는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그는 마침 부친이 신앙 문제에 대한 의혹을 받자 해외로 도피한 콘베르소로 확인된 히메네스란 인물이 참사회원 가입 심사를 받게 되자 1547년 성직 및 참사회 회원들은 혈통이 순수해야 한다는 순혈령을 반포해버립니다. 그리고 이는 펠리페 2세에 의해 1556년 승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순혈의 광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제 모든 공직이나 종교 관련 직책에서 피의 순수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4대까지만 따졌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주 먼 조상님까지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조상님 중에 한 분이라도 종교재판 받아서 유죄 판정 받으셨거나 유태인이거나 무어인이면 출세 끝인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사실 이런 흐름은 조금 복합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순혈성은 콘베르소 등에 대한 차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주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이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종교였으니까요. 

 그리고 신분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 자체가 상대적으로 비천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에서요. 이들은 원래 고귀한 가문의 사람들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지만 적어도 조상님들은 오래전부터 태어날 때부터 카톨릭을 믿어온 사람들로만 구성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귀하신 분들은 거의 대다수가 족보 뒤져보면 혈통이 의심되는. 즉 개종 유태인, 혹은 개종 무어인으로 보이는 조상님들이 하나 둘은 있었습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이들은 "고귀하되 혈통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더 명예로운가? 그렇지 않다. 비천하지만 혈통이 순수한 사람이 명예롭다." 이런 식의 주장을 하면서 이런 순혈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는 고귀한 가문들의 족보가 꽤 잘 팔렸다는데 이것은 고귀한 가문의 혈통에 구린 구석이 있다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혈통 의심스런 조상님들이 있나 없나 귀족 가문 족보를 조사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이렇게 되니 출세길도 보장받기 힘들고 조롱까지 받게 될 것을 염려한 소위 명문가들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혈통에 대해 의심을 받지 않도록 족보를 조작하기 시작했고 종교 재판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 가문과의 혼사를 최대한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순혈주의의 광풍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스페인인들이 이러니 콘베르소들이 어떤 대접을 받게 되었을지는 뻔하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추신: 크핫군님 포스팅 보고 생각나서 해보려고 한 것인데 이제서야 하게 됬네요. 흐흐흐.

 

덧글

  • Cicero 2011/11/22 15:47 #

    잘봤습니다. 이전에 얼핏들어본 이야기인데 이렇게 보니 4세기뒤의 중부유럽의 모습이 심하게 오버랩되는군요;;;
  • 로자노프 2011/11/22 15:48 #

    아.................... 그것은 정말로 지옥도였지요.
  • 크핫군 2011/11/22 15:54 #

    이때부터 혈통에 의한 민족주의가 발현된다고 자크 슨상님이 그러셨죠 'ㅅ'
  • 크핫군 2011/11/22 15:57 #

    그리고 이때부터 소위 말하는 Blue Blood가 나타난다네요 'ㅅ'
  • 로자노프 2011/11/22 16:26 #

    Blue Blood?
  • 메이즈 2011/11/22 16:12 #

    당시 스페인의 순혈주의 운동이 벌어진 배경과 결과를 대충 요약하면

    - 무어인이나 유대인 혈통 혹은 출신이 오랜 기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스페인 지배층의 대부분인데 이들을 밀어내기 위해 평민 혹은 하급귀족들이 혈통 카드를 꺼냅니다. 사실 능력이나 사회적 배경이나 기존 지배층을 당해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선택한 카드라고 볼 수 있죠.

    - 당시 이슬람권 및 소위 '프로테스탄트' 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오랜 식민지배로 인해 민족주의 경향도 강했던(이슬람권만이 아니라 프랑스 등 다른 유럽국가들과도 대립했으니) 스페인에서는 무어인, 유대인, 이단(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반감이 강했고 하급 귀족과 평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은 이런 배경이 원인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짓인 게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 스페인의 엘리트층은 말 그대로 싹 증발해 버렸고, 콘베르소와 무어인 출신들은 그나마 좀 관대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 모조리 도망을 쳐 버립니다. 그렇다고 이전 실무를 맡은 적이 없는 하급 귀족과 평민 출신의 '신지배층' 들이 능력이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어서 결국 야구 기준으로 하면 1급 선수를 팔고 유망주와 2급 선수만 받아온 꼴이 되었죠. 게다가 이들 콘베르소와 무어인들이 해외로 도망가면서 막대한 자산과 인재들이 외국, 그것도 스페인이 증오해 마지않는 프랑스, 오스만 제국 등으로 유출되었고, 결국 스페인은 쇠퇴일로를 걷게 됩니다.

    물론 스페인이 쇠퇴한 원인에는 펠리페 2세의 병크, 이슬람권(오스만 투르크 제국) 및 영국과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견제. 국내산업 육성 소홀(프랑스가 이꼴을 보고 콜베르 등의 주도하에 중상주의 추진)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지만 이 역시 쇠퇴의 한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 메이즈 2011/11/22 16:15 #

    추가 : 스페인의 병크를 보고 유럽국가들이 배운 게 있느냐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장 루이 14세는 1685년 낭트 칙령을 파기하고 국내의 프로테스탄트 인재들을 외국으로 유출시켰고 이들 중 상당수는 프랑스의 적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 결과 프랑스의 국력이 쇠퇴했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죠.

    게다가 스페인, 프랑스에 이어 20세기에는 독일이 더 큰 스케일로 나라 자체를 완전히 말아먹었습니다. 이번에는 스페인, 프랑스처럼 국력쇠퇴로 끝나는 게 아니라 냉전 안 벌어졌으면 정말 나라 망할 뻔했죠. 게다가 아직도 이런 주장 하는 인간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걸 보면 인간 정신에는 진보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로자노프 2011/11/22 16:27 #

    뭐. 스페인 지배층 대다수는 유태인이나 무어인 피가 조금 섞인 수준이긴 했는데... 이걸로 말미암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사실 말씀하신게 다 맞습니다. 좀 답이 없었지요. 뭐 스페인의 몰락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만. 그런데 그거 보고도 배운 게 없다는 것도 참.
  • 슈타인호프 2011/11/22 16:30 #

    "블루 블러드"는 서고트 출신의 정통 게르만계 스페인 귀족 계급을 지칭합니다. 피부가 검은 무어인이나 원래는 아랍계에 가까운 유대인 혈통이 섞이면 "흰 피부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죠.

    순수한 서고트 혈통을 가졌다면 당연히 흰 피부를 가졌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정맥의 푸른 핏줄이 비쳐 보이게 됩니다. 검은 피부를 가지면 혈관이 보이지 않으므로 "푸른 피"가 없는 사람인 것이죠.

    또한, 흰 피부를 유지하려면 들판에서 노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실내에서 유유자적 햇빛을 피할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푸른 피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이래저래 타기 마련이라 귀족이라고 해도 남자들은 시커멓게 타기 십상이었지만요(무엇보다도 당장 전장에 나가야 한다능!).
  • 로자노프 2011/11/22 16:38 #

    뭔가 좀 ㅄ같은 이론이군요.....
  • 2011/11/22 18:5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로자노프 2011/11/22 22:12 #

    음.... 일단 스페인 왕실에 유태인의 피도 좀 섞여있죠.
  • Niveus 2011/11/22 21:35 #

    저 뻘짓을 안했으면 스페인의 전성기는 조금 더 길었을지도 모르죠.
    ...정말 근대까지라면 상층부를 싹 뒤집어엎고 나라가 멀쩡하면 그게 더 신기하니;;;
  • 로자노프 2011/11/22 22:13 #

    어차피 스페인 내부의 문제점은 저것뿐만이 아니거든요...
  • 행인1 2011/11/22 23:22 #

    그러고보니 이단 재판이 왕성했던 나라가 바로 스페인이었군요. 배경은 그렇다쳐도 그 결과는 참...;;;
  • 로자노프 2011/11/22 23:28 #

    그러게나 말입니다. 결과가 참...
  • 1 2011/11/23 00:06 # 삭제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로자노프 2011/11/23 13:30 #

    감사합니다.
  • Jes 2011/11/23 00:07 #

    아... 나도 항상 좋은 글 잘 봤다는 덧글 달렸으면 조케따 흑흑
  • 로자노프 2011/11/23 13:30 #

    다음 글에 제가 달아드리죠.
  • 신노스케 2011/11/23 06:07 # 삭제

    사실 유대인 추방은 비단 스페인의 문제는 아니었죠
    그리고 저 시기 유대인 비하는 전 유럽의 일종의 트랜드였죠
    영국에서도 애저녁에 추방되었고
    프랑스에서도 빈번하게 추방 내지는 탄압이 있었죠
    스페인의 문제는
    영국 프랑스는 개종자에 한해서는 봐주었는데..... 노스트라다무스가 개종 유대인이었죠
    스페인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영국 프랑스는 자국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 시키는 선에서 했는데
    스페인은...

    그냥 종교에 미치면 답이 없습니다
  • 로자노프 2011/11/23 13:30 #

    맞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1/11/23 11:04 # 삭제

    '스폐인혁명 : 상놈들의 역습'이군요.
  • 로자노프 2011/11/23 13:30 #

    뭐... 어떻게 보면 비슷한 셈이죠.
  • 누군가의친구 2011/11/24 01:34 #

    순혈주의덕분에 스페인의 경제가...ㄱ-
  • 로자노프 2011/11/24 09:56 #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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