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겸 공지사항



로자노프의 대궁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곳 주인장 로자노프는 역사 쪽에 관심이 많으므로 이 블로그 역시 역사 글 위주가 될 것입니다. 이글루스 블로거 여러분. 많이 방문해 주세요. 단 방문 시 다음 사항들은 숙지해주시기 바랍니다.




1. 욕설은 절대 금지입니다

2. 상호 간에 되도록이면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3. 책사풍후,마광팔, 이재율, 정론직필, http://ll2kg.egloos.com 이 주소 쓰는 아이디는 절대 출입금지입니다.

4. 여기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http://khistory.yuku.com/ 여기 한 번 들러주시고 가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사포럼이라고 하는 사이트입니다.

5. 글을 퍼가실 때는 해당 글에 덧글(해당 글에 덧글을 못 단다면 다른 글도 무방)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따로 글에서 언급하지 않는 한은 말이죠.

6. 아. 그리고 글을 봤으면 덧글을 답시다.





지금 와서 하는 역개루 사태에 대한 개인적 추측과 잡담. 공작의 잡담 테이블

*참고로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에 기반한 것이란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진실은 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정황과 몇가지 정보 가지고 진실은 이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 것입니다. 

1. 솔직히 난 작년 역개루 소송 사태의 전말이 된 2013년 사태에 대해선 잘 모르는 입장이다. 그 때 군대에 있었으니 당연한 거지만. 사실 전역한 뒤에 대충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파악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2. 그래서라고 해야되나... 그 뒤에 부흥에서 라우티티아랑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라우는 딱히 역개루에 적대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도 당시까지 라우랑 적대시할 이유도 없었다. 당장 2013년 역개루 사태 일으킨 멤버들 중 한명이 나와 친한 사이기도 했고 난 그때까진 2013년 사태에 대해 잘 몰랐으니까. 라우는 나에게 우호적으로 행동했고 나 역시 라우에게 적대적으로 나올 이유가 전혀 없던 시절이라 그러려니 했다. 다만 확실히 기억하는 건 이때 라우는 딱히 역개루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3. 그 뒤에 라우가 혐중쪽으로 이상하게 맛이 가면서 부흥 내에서 적이 정말 많아졌다. 원체 이상한 혐중 발언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중국사나 동양철학 배울 필요 없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점잖은 편인 신불해님이 공개적으로 저격글을 쓸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당연히 라우로 인해 생긴 분란도 꽤 됬던 모양이고. 근데 라우는 딱히 처벌받지 않다가 2016년 봄경에서야 여론이 워낙 들끓은 나머지 영구활동정지 처분을 받았다. 탈퇴가 아니라. 뭐 실질적으론 탈퇴랑 큰 차이가 없지만. 

4. 그 뒤 라우는 다음 토탈워와 유로파에서 혐중적인 성향 유포 목적의 신문기사들을 계속 올려댔다. 다만 부흥에서의 일 때문인지 절대 논쟁을 벌이진 않았다. 그래서 나도 뒤늦게 그걸 알고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5. 그 와중에 터진게 작년 1월 경의 부흥 카톡방 사태. 사실 이때 난 이것이 단순한 분노의 산물보단 라우 등이 벌인 공작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본진은 다음 토탈워랑 역개루지 부흥카페가 아니므로 공작일수도 있겠지 하고 그 선에서 신경 끄고 그냥 구경만 했다. 이 사태가 가져올 후폭풍이 어떤 것이 될 지 전혀 모른채 말이다. 

6. 뭐 부흥 카톡방 사태가 잠잠해질 무렵... 대충 삼일절 즈음해서 라우는 다음 토탈워랑 유로파에서 민주당 홍모의원이 멍청한 말을 했다는 뉴스기사를 펌해서 올렸다. 근데 정작 뉴스기사 본문에서 홍 의원은 그럴듯한 논리로 충분히 할 수 있는 평범한 발언을 했던 것으로 확인됬다. 라우티티아가 뉴스기사 중간 부분을 의도적으로 잘라서 맨 위와 아랫부분을 짜집기해서 올린 것이었다. 당연히 토탈워나 유로파의 그 어느 누구도 이런 허접한 가짜뉴스에 속지 않았다. 빡친 내가 토탈워에서 해당 글에 대한 공개청문회 분위기를 조성하자 그는 슬그머니 그 홍모의원 글을 삭제했다. 다만 이 이후로 라우에 대한 토탈워나 유로파 회원들의 여론은 굉장히 악화되었다. 유로파에선 온갖 안 좋은 소문이 다 돌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 안 좋은 소문들이 모두 근거 있는 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7. 그 다음에 적당히 신경을 끄고 있었는데... 역개루 소송 사태가 터진 것이었다. 라우티티아가 2013년 분쟁 당시 라이트온님에게서 받아냈던 문서(더 정확히는 사본이라는 모양)을 페가수스에게 넘겼고 페가수스가 그걸 가지고 역개루 운영권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걸어버린 것. 소송이 시작된 시점은 3월이었고 그것이 공표되고 페가수스에게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확인된 건 6월경이었다. 나도 당연히 6월말이 되서야 그 일을 알게 되었다.

8. 당연히 카페는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고 카페 운영진들도 소송이란 초유의 방법으로 카페를 강제로 넘겨줘야한다는 것에 울분이 가득 찼다. 회원들도 마찬가지고. 다만 법적으로 지는 싸움이라 울분이 찬다한들 할 수 있던 건 새 카페를 만들어 이주시키는 것과 동의를 얻은 글 삭제, 몇가지 사보타주 정도였지만. 참고로 이 역덕 바닥이 좁아서 어느 한 카페가 본진이어도 다른 카페 돌아가는 것도 아는데다가 페가수스는 부흥 카톡방 사태로 강탈당한 부흥 운영진, 라우티티아도 한때 로마사, 라틴어로 유명했던 역덕이라 다들 그들에 대해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라우가 얼마나 맛이 갔는지도. 그래서 회원들도 꽤나 분기탱천했다. 이때까진 다들 라우티티아와 페가수스가 힘을 합쳐 카페를 강탈하려는 것이거나 라우티티아가 페가수스를 사주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9. 근데 다들 머리를 조금씩 식히게 되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첫번째로 그 문서를 써준 건 사실이나 그 때는 어찌저찌하다보니 문서대로 라우에게 양도하는 것이 취소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법적인 것과 연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4년전 이래저래 여러 사정으로 취소됬던 문서, 그것도 사본이 아직도 법적 효력을 갖고 있다는 걸 일반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하는 의문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나 역개루와 부흥 모두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사람들이 일관되게 하던 증언이 있었는데 "페가수스는 절대 이런 짓을 꾸밀 역량이 없다"는 것이었다. 슬슬 다들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0. 여기에 난 다른 몇가지 이유때문에 더더욱 의심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건 6번 문단에서 언급했던 일. 초딩도 안 속을 허접한 가짜뉴스를 직접 만든 그 사건때문에 난 라우가 음모를 꾸미는 걸 좋아해도 그럴 역량은 절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음모를 꾸밀 역량이 있었다면 좀 더 제대로 된 가짜뉴스를 만들어서 퍼뜨려 자기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했을테니까. 거기에다가 라우는 예전에 나랑 접촉했을 때 딱히 역개루에 대한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래저래 내가 역개루쪽 인사들과 가깝다는 걸 알고 있는게 분명했음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라우를 싫어하는 자들이 토탈워와 유로파에 잔뜩 쌓여갔는데 당연히 그를 욕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반박하는 덧글들이 달리는 일이 간혹 있었다. 그때 라우는 그걸 모조리 인신공격이라며 발끈하는 덧글을 달았는데 이상하게도 역개루 사태때는 나랑 다른 분이 다음 토탈워에서 공개적으로 라우에게 쌍욕을 퍼부어댔는데도 자긴 할 말이 없다며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의 라우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11. 그래서 든 생각이 뭐냐면 배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배후가 존재해서 배후가 라우와 페가수스를 사주한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부흥 카톡방 사태가 터진 것이 1월이고 한동안 그거로 부흥이 시끄러웠는데 그것이 잠잠해진 3월즈음에 역개루 소송이 개시되었다는 점, 일반인들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법적 지식이 요구되며, 페가수스나 라우티티아가 그런 능력을 갖추었을 리 없는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배후가 있다는 판단이 강하게 들었다. 개인적으론 5번에서 언급한 부흥 카톡방 사태라던지 라우가 부흥에서 혐중짓거리로 문제 많이 일으킨 것 치고 이상할 정도로 질기게 붙어있었다는 점 때문에 부흥의 고위급 인사(단 현 운영진이 아닌)가 배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 이렇게 되니까 생각난 가설이 뭐냐면... 부흥 카톡방 사태는 배후, 페가수스, 라우티티아 등이 라우티티아의 복귀와 현 부흥 운영진을 뒤흔들 목적으로 일으킨 것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사건이 터진 것 자체는 우발적이었고, 저들이 바로 터뜨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여튼 우발적으로 사태가 터지다 보니 부흥 현 운영진들은 좀 타격은 입었으나 멀쩡했고 정작 페가수스와 라우티티아만 강퇴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배후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기에(그리고 카톡방 사태는 그 진행양상을 볼 때 배후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게 더 이상하고. 사실 이 사건에 배후가 있다는 것도 추측에 불과하다.) 멀쩡했지만

13. 그렇게 되니까 둘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거기다 페가수스는 대형 역사카페를 직접 경영하고 싶어했다. 배후는 그걸 알았고 법적으로 문서가 효력이 있다는 것다 안 뒤 라우티티아가 2013년에 받은 문서를 페가수스에게 넘기게 하고(아마 페가수스 본인이 운영을 하고 싶은 의지가 있기도 했고 이 시기에 이미 라우는 너무 악명이 높았다. 페가수스는 그나마 평이 좋은 편이었고) 페가수스가 소송을 걸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마 배후는 자신의 존재는 끝까지 숨겨서 다들 배후가 있다는 것조차도 생각 못 하게 한 후에 페가수스를 지원, 혹은 조종하면서 역개루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던 것 같다. 

14. 다만 배후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일단 9번에서 언급한 다들 쉽게 생각 못 할 문서의 법적 효력 문제와 6번에서 언급한 라우가 토탈워와 유로파에서 저질렀던 어처구니 없는 가짜뉴스 제조 시도건. 그리고 기타 10번에서 언급한 문제, 카톡방 사태 직후에 역개루 소송이 개시됬다는 점등이 겹쳐서 다들 배후의 존재가 있다는 걸 눈치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정황뿐이기도 하고 누군지에 대해선 결정적 증거가 부족해서 추정을 할 수는 없었지만. 

15. 사실 페가수스의 계획도 어그러졌다. 일단 페가수스는 대형 역사카페를 운영하고 싶어했던 것은 확실했다. 추측이지만 놈은 역개루를 장악해서 나름 그럴듯하게 키워서 역사카페 겸 반부흥 카페, 적어도 부흥에 어느정도 맞설만한 카페로 만들고 싶어앴던 것 같다. 단 페가수스는 삼도 사태 같은 것만 생각했는지 몇몇 고정닉들이 떠나더라도 남은 사람 가지고 적당히 운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확실히 초반행적만 보면 페가수스는 의욕이 있었다. 문제는 역개루는 삼도보다 작은 카페라 그 몇몇 고정닉들의 영향력, 비중이 삼도보다 훨씬 컸고 거기다가 소송이란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강탈한 것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좀 활동한다 싶은 사람들은 모두 역개루를 떠나버렸다. 남은 사람은 딱 두명뿐이었고, 그나마도 길공구님은 신개루에도 글을 올리고 있는 판이었고.

16. 그러다 보니 웬 이상한 옛 역갤 활동자로 보이는 인물을 부매니저라고 앉혀놓고 그 양반보고 카페 활력을 좀 되찾아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양반의 괴상한 짓거리에 되려 남아있던 두 분도 구개루에서 짐을 싸서 신개루로 옮겨버렸다. 페가수스는 이쯤에서 완전히 정신줄 놓고 운영에서 손을 떼버리고 방기한 것 같다. 그 부매니저란 자는 폐개루를 지 놀이터처럼 쓰고 있고... 근데 얼마전에 확인하니 이 짓거리도 질린다는 글이 있더라. 

17, 여튼 페가수스의 의도는 그렇다고 치고. 배후의 생각은 솔직히 알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페가수스처럼 생각했다가 생각대로 안 되자 방기했거나 혹은 아예 처음부터 역개루 멸망만을 노리던지라 이 꼴이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18. 하지만 진짜 궁금한 것은 라우티티아의 의도. 일단 난 처음에 6번에서 언급한 일로 토탈워와 유로파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안 좋은 소문까지 퍼진 라우가 역개루로 피신하려고 문서를 페가수스에게 넘기는 것에 동의한 줄 알았다. 실제로 이즈음 되서 라우는 두 카페 운영진들이 특별감시하는 정황도 포착됬고, 개짓거리를 한번만 더 하면 조지려고 눈에 불 킨 사람들도 많이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10월 경즈음에 토탈워와 유로파에서 스스로 탈퇴한 이후로도 딱히 역개루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포착되지 않았다. 되려 블로그에만 짱 박히는 양상. 즉 이건 역개루를 피신처로 쓸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서 자체도 무려 4년전에 받았던 문서고,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라우가 역개루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보인 적도 없었다는 점, 피신처로 카페를 쓰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도대체 이 자가 뭔 생각으로 페가수스에게 문서를 넘겨준 건지 모르겠다. 

19.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10월경에 나무위키에서 부흥 카페 문서에서 현 운영진을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서술을 작성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토론 끝에 무산되긴 했는데(나도 참여했다.) 그 뒤에 추가됬던 이상한 문장도 그렇고 토론 당시 서술을 추가하려던 자를 옹호하던 쪽의 모습도 그렇고 라우가 이 나무위키 부흥 카페 토론 건에 연관이 깊숙하게 되어있거나 본인이 개입한 게 아닌가 하는 냄새가 다분히 났다. 최소한 이상한 문장은 본인이 추가한 게 맞고. 이걸 봤을 때 부흥 운영진에 대한 악감정은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0. 그리고 19번 문단이 길어질까봐 분리한건데 부흥 카톡방 사태-역개루 소송 및 강탈 사태-나무위키 부흥카페 비방서술 시도 이 세가지 사건이 동일선상에 있는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즉 처음에 배후, 라우, 페가수스 등이 부흥을 장악하거나 최소한 라우 자신의 부흥 복귀를 위해 카톡방 사태를 일으켰는데 일이 꼬여서 실패하자, 대체재로 역개루를 강탈한 것이다. 근데 예상과 다르게 기존 인원들이 다 떠나가면서 구개루에 폐허만 남은 형국이 되어버리자 이번엔 이판사판 심정으로 부흥 현 운영진을 비방하는 여론전을 시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팍팍 든다. 물론 이것도 장대하게 실패했지만.

21. 여튼 이렇게 되니 개인적으로 든 생각은 부흥 내에서 암암리에 말이 많던 친목 파벌 문제가 불똥이 이상하게 튀어버린게 역개루 사태 아니었나 싶다. 솔직히 라우나 페가수스나 부흥과 너무 연이 깊고 카톡방 사태 양상이 일종의 친목 파벌 문제 양상을 띄고 있었으니 말이다. 진짜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 참 더럽지만. 왜 남의 카페 문제때문에 역개루가 이 꼴이 된 건지... 

환빠들 타격 좀 입겠네. ㅋㅋㅋㅋ. 공작의 잡담 테이블

http://www.hankookilbo.com/v/ca4b85cc12a24b6d8d93339ea0ed45e5

지난정권때부터 계속 지난정권과 유사역사학의 결탁 가능성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됬고 정황증거들도 넘쳐나던 상황이었는데 잘 됬다. 한번 제대로 파 볼 필요가 있다. 애당초 저것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전두환의 후원 덕도 있었고 이번 기회에 한번 작정하고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뭐... 일단 저것만 판다고 해도 날려버리는 건 복기대 정도가 한계겠지만(이덕일은 의외로 저런 쪽에서 콩고물을 별로 얻지 못 했다. 즉 걸릴 구석이 별로 없다.) 그것만으로도 저들에겐 큰 타격이다. 거기다 저게 확실하게 밝혀지면 적폐가 될테니 이미지도 나락 중의 나락으로 떨어질거고 ㅋㅋㅋㅋㅋㅋ. 환빠들 이제 완전히 맛탱이 가 버려라! 콱! 

나무위키 놈들은 기록병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공작의 잡담 테이블

틀렸다. 정확히는 반쯤 틀렸다. 이 ㅅㄲ들 기록병은 분명 존재하지만 문제는 그 기록이 자기네들 흑역사와 연관됬다 싶으면 없애려고 난리를 친다. 지난 토론에서 분명 살려놓기로 한 선덕여왕 총론 부분을 아주 날려버리려고 난리도 아니다. 아이고야. 말로는 규정을 운운하는데 까놓고 말해서 '나무위키의 흑역사'를 남겨놓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충만해보인다. 

추가: 암만 봐도 이 ㅅㄲ들은 죽음의 상인이다. 지들이 작정하고 분쟁지역 등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팔아 지 돈만 챙기고 거기서 지들이 판 무기 때문에 사람 죽는 건 나몰라라하거나 내 잘못 아니라고 하는 그런 빌어먹을 죽음의 상인들. 

전국~한문제 시기 사기 기록의 난맥상

사마천 사기는 분명 불세출의 명저이며 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대 중국에 대해 분명히 상당히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정확도도 나름 높은 편입니다...

근데 그런 사기도 기원전 300~한문제 시기까지 기록에 모순과 오류, 부족한 점이 꽤나 많이 보입니다. 하필이면 그 이전 시기들에 비해서 이런 기록의 모순, 오류, 의문스런 기록, 부족이 너무 많이 대두됩니다. 대충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소진열전의 사례.

소진열전의 경우 그 기록의 오류가 상당히 많은 거로 유명합니다. 사기의 묘사만 보면 소진이 진나라를 방문한 건 상앙이 처형된 직후인데 거기서 혜문왕 죽기 직전에나 먹은 파촉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심지어 이 부분은 장의열전에서 파촉을 먹을지 중원을 먹을지 논쟁하는 부분으로도 알 수 있음) 초나라 방문때도 아직 진나라 영토가 아닌 파촉이 진나라 영토라고 하는 등의 오류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거기다 사기 소진열전의 묘사만 보면 소진이 활동한 건 기원전 330~320년 경인데 동생이라는 소대의 활동 추정연도가 기원전280~270입니다. 형제라기엔 너무 활동시기의 차이가 큽니다. 

사실 이는 소진과 관련된 기록 자체가 개판이어서 벌어진 참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마천도 소진열전 말미에 '소진의 행적이 아닌데 소진이 한 것이라고 알려진게 너무 많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마왕퇴한묘에서 발굴된 죽간에서 발견된 죽간에서 소진이 연소왕시기의 인물이라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2. 연소왕의 이름

연소왕이 언급된 김에 말하자면 연세가에선 연소왕의 이름을 평이라 했는데 조세가에선 연소왕의 이름이 직으로 나옵니다. 세가에서 왕 이름이 다르게 기록되는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입니다. 현재 이 부분은 출토된 죽간 덕에 직이 맞는 것으로 확정됬습니다. 

3. 전단 이야기

노중련 열전에 의하면 장평대전이 벌어지고 20여년이 지난 무렵, 즉 기원전 240년 무렵에 연나라 군대가 제나라 요성을 취하자 제나라 전단이 요성을 포위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문제는 이 전단인데... 분명 이 전단은 기원전 279년에 연나라 군대를 격파한 그 전단입니다. 이 전단은 264년 경에 조나라 재상이 되었다는 기록이 조세가에 나오는데 240년 무렵까지 전단이 살아있는것도 뭔가 요상하지만 설령 살아있대도 어떻게 제나라로 돌아온건지 중간 설명이 없습니다.

4. 여불위와 춘신군.

아마 유명할 겁니다. 소위 자기 아이 임신한 여자 왕한테 갖다바치고 왕은 그 여자가 낳은 아이를 자기 아들로 여겼다는 이야기.... 근데 말이죠. 거의 동시기 인물 둘에서 거의 비슷한 내용이 나오면 아무리 봐도 의심스럽죠. 거기다가 여불위의 경우 진시황본기와, 춘신군의 경우 초세가와 교차검증하면 기록이 어긋나는게 보입니다. 진시황본기의 경우는 자초의 친아들이다 정도지만 초세가의 경우엔 분명 불임이라던 고열왕의 자식이 2명이 더 튀어나오니까요. 개인적인 추측으론 춘신군 이야기 혹은 여불위 이야기 중 하나가 먼저 생긴 후 다른 한쪽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사마천이 열전에다가 이걸 걍 적어버렸고요. 사마천의 민담채록경향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요.

여기서 언급한 4가지 사례말고도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릅니다. 일단 대강 찾은게 이정도고요. 문제는 이 4가지 사례는 적어도 분서갱유의 후유증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분서갱유 이후 시점... 더 정확히 말하면 분서갱유 이후에도 살아남은 인물들이나 초한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들 기록에서도 기록의 부족이나 손실, 신빙성이 의심되는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1. 공신후연표 7위 해연은 도대체 누구지?

해연이란 인물은 공신후연표에서 그 공이 번쾌에 버금간다고 언급될 정도의 인물입니다. 패에서 처음 거병했을때부터 따라다닌 인물로 전사했다고 하는데 이게 기록이 끝입니다. 하후영보다도 순위가 높고 공이 번쾌에 버금간다는 거 보면 공적을 많이 세운 것 같은데 너무 기록이 없습니다. 사실 공신후연표에 등록된 인물들 중 이런 인물들이 좀 보이긴 합니다만...

2. 계포의 항우 부하시절 행적

계포는 항우의 부하 중 한명인데 항우가 망한 직후 수배되었다가 사면받은 후 유방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한문제시기까지 살았고 유능함으로 이름을 얻었죠. 문제는 그런 인물의 항우 부하 시절 행적이 오리무중입니다. 비슷한 경우인 종리말(혹은 종리매)는 사기를 이리저리 뒤지면 조금이라도 항우 부하시절 기록이 나오는데 계포는 하나도 안 나옵니다. 사면까지 받은 입장이라 항우 부하시절 행적도 말하고 다닐만하고 충분히 오래 살았는데도 항우 부하시절 기록이 완전 오리무중이니 이건 뭐...

3. 장사왕 오예

사실 이 양반이 제일 어이가 없는 경우입니다. 본래 진나라 관리로 파양현령이었는데 월인들의 민심을 샀고, 진승의 난이 터지자 월인, 영포를 끌어들여 거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으로 형산왕이 됬는데 언제인지는 몰라도 항우에게 봉국이 몰수조치(사실 이유와 시기는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지만 이건 현재 연재 중인 초한지 2부작 연재에서 다룰 거라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정황증거에 끼워맞춘 수준이기도 하고요.)됬습니다. 그러다 유방이 이긴 뒤에 장사국의 왕이 되었는데 다른 이성제후국과 달리 5대에 걸쳐 계승되어오다가 한문제 말엽에 직계가 단절되어 봉국이 회수됩니다. 대충 언급한 거만 보시면 알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기록이 남아돌아야 합니다. 정상적이라면요.

근데 기록이 너무 부족합니다. 사기에선 세가는 커녕 열전도 없고 한서에는 이 양반 다룬 기록이 존재하는데 꼴랑 4줄입니다. 4줄요... 어떻게 월인들에게 민심을 얻은 건지, 항우가 왜 봉국을 압수했는지에 대한 건 아예 기록 자체가 없고요. 5대나 존속한 제후국의 시조인데 어떻게 이렇게 기록이 없는건지 희한할 지경입니다. 이정도면 통상적인 중국의 기록문화 생각하면 세가나 열전 하나 만들 수준의 기록은 나와야 정상이거든요.

여튼 그 이외에도 사구의 일도 있고... 묘하게 초한전쟁 시기 기록들도 은근히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손실이 의심되는 구석도 많고요. 진짜 도대체 분서갱유와 초한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문제때까지 이런 기록의 부실, 손실 문제가 나오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분서갱유 이후로도 이런 식으로 은근 기록이 빠지거나 소실되거나 신빙성이 의심되는 일들이 있으니 말이죠.

뭐 웬지 전쟁 후유증이 너무 커서였던게 아닌가 싶은 감은 있습니다. 사마천이 사기에 인용한 가의의 과진론에 전단, 손빈, 염파 등이 동시대인인것처럼 묘사하는 부분이 보이는 등 당대 중국의 전국시대 관련 인식이 판타지 수준이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이 존재할 정도였으니 말이죠. 근데 아무리 그래도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하기 시작한 시점은 초한전쟁 터진지 이제 막 100년 될까말까한 시점인데 이런 당시 기준으로 근현대사에 해당하는 시기의 기록이 이렇게 부족할 수 있는지 참..... 황당할 뿐입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